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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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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나다니엘
daekim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예수니라.’ 나다니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니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니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니엘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 1:43-51)

 

부르심에 응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이 친구 나다니엘을 찾아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고 말하자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며 부정적으로 받아드린다. 나다니엘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 예언되어 있는데(미 5:2) 빌립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인 것처럼 말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나다니엘에게 나사렛을 좋아할 수 없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거나 그의 고향인 가나가 아닌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출현하는데 대한 일종의 질투심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찌되었던지 나다니엘이 예수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빌립은 “와서 보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빌립의 대응은 당시의 상황에서 참으로 현명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이 유령을 보는 것처럼 놀랐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째서 놀라고 의심하느냐?”고 그들을 꾸짖으시며 “와서 나를 만져보라.”(눅 24:39)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에 제자들의 놀라움과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Bruce Milne는 그의 요한복음 주석 “The Message of John”에서 빌립이 나다니엘의 부정적인 반응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놀라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와서 만져보라.”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 지혜롭고 현명한 처신이었다고 말해준다. 


빌립과 함께 그에게 다가오는 나다니엘를 보고 예수님은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 말씀하신다. 안드레에게 이끌려 그에게 온 베드로에게 “너는 장차 게바(반석)라 할 것이라.”(요 1:42) 하시며 베드로가 충성스런 사도가 될 것이라 판단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나다니엘을 보는 순간 그가 진실한 사람임을 알아보신 것이다. 


예수께서 나다니엘을 거짓이 없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신 의미는 참으로 크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일러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삼대 족장 중의 하나인 야곱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형 에서를 속여 그의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 이삭을 비겁하고 간교한 수법으로 기만하여 에서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었던 것이다. 


사기와 속임수로 형이 받아야 할 아버지의 축복을 도적질한 야곱은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범한 죄 값을 혹독하게 지불해야 했다.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분노한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 간 야곱은 속임수에 있어 그보다 한 수 위인 라반에게 속아 20년간 온갖 고난과 슬픔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야곱이 고단수 사기꾼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에게 장자권을 박탈당한 형 에서가 400여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음을 알게 되자 혼비백산한다.


에서와의 만남을 앞 둔 날 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천사를 붙들고 그를 축복해 달라고 매달린다. 그러자 천사는 “너는 지금부터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다.”(창 32:28)라 말하고 떠나간다. 


극도의 이기주의자이고, 속임수의 명수인 야곱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진정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이 나다니엘에게 거짓이 없는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 들려주신 사실로부터 우리는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사기꾼 야곱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처럼 세상길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거짓과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본 일도 없는 그를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묻는 나다니엘에게 예수님을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다니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 말한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아로 받아드렸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말씀하신다. 나다니엘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야곱이 에서와 아버지를 속인 후 형의 복수가 두려워서 외삼촌 라반에게로 가는 도중 들에서 밤을 지내며 꾼 꿈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나타난다. 그때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던 천사들처럼 그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시게 될 것임을 예수님은 진실한 사람 나다니엘에게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해 나다니엘은 예수님을 통해 하늘나라를 땅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라 들려주신 것이다. 이날 열두 제자의 일원이 된 나다니엘이 또다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디베라 호수로 베드로와 도마 등 일곱 제자들을 찾으셨을 때다(요 21:1-2).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나다니엘” 대신 “바돌로매”라 명시되고 있다(마 10:3; 막 3:8; 눅 6:14). 이로부터 나다니엘과 바돌로매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수행하면서 나다니엘이 구체적으로 담당한 역할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고(행 1:6-11),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행 1:12-14).


뿐만 아니라 그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초대교회의 운영과 조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으며(행 2:43-47), 어학적 능력을 발휘하여 마태복음을 이방언어로 번역하는데도 기여한바 크다고 전해진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제롬과 크라이소스톰에 의하면 나다니엘은 주후 바울과 바나바가 더베, 루스드라, 니고이온에 설립한 교회들을 찾아가서 교인들을 격려하고 양육하는 일에도 헌신했다고 한다.

 

나다니엘은 아메니아에도 복음을 전파했으며, 주후 58년경에는 히에라폴리스로 가서 그의 오랜 친구인 사도 빌립과 함께 선교활동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나다니엘이 오래 동안 집중적으로 활동한 곳은 인도였다. 유세비우스와 제롬은 나다니엘의 인도선교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체구를 지닌 나다니엘은 26년 간 언제나 같은 신발을 신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으며 하루에 백 번 이상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서 괴상한 정신질환으로 철창 속에서 지내던 Polymius 왕의 딸을 고쳐준 후로 그 지역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Astaroth 신을 오랫동안 섬겨온 그곳 원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그 여신상 앞에서 그들과 대결하게 되었다. 그 옛날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과 승부를 가지던 것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다니엘이 Astaroth 신상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자 그 신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면서 사방에 십자가가 나타났다. 그러자 악령이 나타나 십자가들을 제거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악령을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한 Polymius 왕과 수많은 사람들이 나다니엘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Polumius 왕의 동생 Astriagis가 왕위에 오르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자 나다니엘은 주후 62년 8월 24일에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였다(C. Bernard Ruffin, P 117-119).


처음 보는 순간에 예수께서 “거짓이 없는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 인정한 나다니엘은 숨지는 순간까지 생명의 복음을 외친 충성스런 하나님의 사도였다. 나다니엘이 이같이 귀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거짓에서 떠난 진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다니엘 같이 진실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거짓과 위선에 밀려 진리와 진실이 설 곳을 잃은 슬픈 현상이 사회는 물론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정직하고 진실하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만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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