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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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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빌라도
daekim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하되 ‘네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요 18: 33-38)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롯 유다를 앞장세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안네스의 집으로 끌려가신다. 안네스는 대제사장 직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아무 공직도 맡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예수님을 예비심문 한 그는 그의 사위이며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에게 보낸다. 거기 모여 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한 후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보낸다.


빌라도는 주후 26년에 로마황제 티베리우스가 임명한 제5대 유대총독이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해 주었다. 방대한 지역을 통치하다 보니 되도록 피지배 민족들을 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시로 폭동을 일으키는 유대지방에서는 강경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거기 적합한 인물로 낙점된 총독이 빌라도였다.


빌라도는 임지인 유대로 떠나면서 유대인들의 열광적인 유일신 신앙을 멸절시키라는 특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사명 때문인지 빌라도는 로마황제의 상이 그려진 깃발을 앞세우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로마정부가 식민지에 군대를 파견할 때는 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황제의 상이나 로마군의 상징인 독수리가 없는 깃발을 드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힘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황제의 깃발을 들도록 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가이사라에 주둔하던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이동 배치하면서 독수리와 황제의 상이 그려진 군기들을 함께 들여왔다. 하지만 그런 군기를 예루살렘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유대인들이 결사적으로 반발하며 항의하는 통에 가져왔던 군기들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그 후에도 야전군 장교 출신인 빌라도는 매사에 유대인의 정서와 종교적 전통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다. 때문에 그가 유대인들을 멸시하며 그들의 종교까지 경멸한 것처럼 유대인들도 빌라도를 배척하며 증오하게 되었다. 


이를 알지 못할 리 없는 빌라도는 멀어지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하여 고원지대이기에 물이 부족한 예루살렘에 상수도 시설을 갖추어 주겠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그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드렸다. 그러나 빌라도가 그 공사비를 로마정부의 지원금 아닌 성전금고로 충당하겠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또다시 들고 일어났고, 그가 이 같은 민중들의 항거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유대인들의 원망과 증오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 세운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기소한 내용은 “신성 모독죄”, “민중 선동죄“, “국가 반역죄” 셋 이었다. 하나만 유죄로 판명되어도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들이었다. 그러나 기소내용을 묻는 빌라도에게 그들은 “이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라면 총독 앞에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라 간단하게 답한다. 


예수님에 대한 기소 자체가 불법과 허위로 된 것이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이 “범법을 행한 자”라는 것만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체적으로 처벌하면 되지 않느냐는 빌라도의 말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그네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빌라도는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임을 간파한다.


예수님을 직접 심문하면서도 빌라도는 주님은 그들의 희생양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가 빌라도가 예수님께 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렇다.”고 답변하신 후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설명해주신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렇다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고 다시 묻는다. 빌라도가 이 같이 물은 것은 예수님이 로마정부에 반역할 인물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온 유대인의 왕이라 하시자 빌라도는 예수님은 로마정부에 항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거기다 재판 도중 빌라도는 아내가 보낸 사람에게서 그녀가 꾼 꿈 이야기와 더불어 예수님의 일에서 손을 떼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전갈이 없었더라도 예수님은 결백하심을 믿었던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노라.”고 공포한다.


그의 결정에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 왕에게 보낸다. 유대인인 예수님의 재판을 유대 왕이 담당하는 것이 좋겠다는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말썽의 소지가 농후한 이 재판에서 빠지기 위해서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주시하는 이 재판을 그에게 담당시키는 아량을 보이면 헤롯과의 관계도 좋아지리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빌라도는 예수님 건을 헤롯에게 이첩하는 것이 주님을 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헤롯에게도 사형을 선고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헤롯이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헤롯이 이 사건은 로마총독이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과 함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기 때문이다.


지조 없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이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살리고 싶었던 빌라도는 유월절 특사 카드를 꺼내 든다.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방면하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석방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군중들이 예수님 대신 살인범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쳐대자 빌라도는 결단의 시간이 온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빌라도가 여전히 망설이자 군중들은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닙니다.”라 소리친다. 빌라도가 가장 두려워하던 협박이었다. 


그에 대한 계속적인 부정적인 보고로 로마정부가 그를 주시하는 시점에서 또 하나의 그를 규탄하는 탄원서가 황제에게 전달되면 끝장임을 빌라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병사들에게 내어준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를 석방했어야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의 정치적 야망 앞에 무릎 꿇었다. 사악한 무리들의 협박과 위협에 굴복했다.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를 두둔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아니었느냐며, 또는 그가 나름대로 예수님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빌라도가 얕은꾀와 편법으로 군중들을 달래며, 그의 양심을 잠재우려 시도한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을 처형한 후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예수께서 그의 법정에 서기 전부터 주께서 무죄하심을 알고 있었다. 그는 로마총독으로서 그의 행보를 주의 깊게 살피며, 주님의 행적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받기도 했으며, 예수님과 만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빌라도는 예수님이 로마정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길고도 상세하게 쓰인 이 보고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 존경했으며, 예수님을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유대지도자들에게서 구원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가 무죄라고 선고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포한 기이한 재판관이 되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해 뜨면 사라질 아침 안개 같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사악한 무리의 악독한 요구를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갈보리 언덕으로 보내면서 심히 괴로워했으며, 또 두려워했다. 대야에 물을 담아오라 하여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빌라도가 몰랐던 것은 천만 번 손을 씻을 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죄로부터 그는 결코 해방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다.”(마 27:25)라 장담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흘리신 피의 대가를 그들은 물론 그들의 자자손손이 지불해야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도 좋겠느냐?”라 물었을 때 대제사장들은 “로마황제 외에 우리에게 왕은 없습니다.”(요 19:15)라 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선언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으심을 알면서도 사탄에게 사주 받은 무리의 저항을 무마하고, 그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왕의 왕을 죽이는 인류역사 상 최대의 살인죄를 범했다. 그는 몇 년 후에 로마로 송환되어 사형선고를 받고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부귀영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려다 비참하게 죽어간 빌라도의 일생을 보며 우리는 배워야 할 줄 안다. 선하고, 올바르고, 정의롭게 살아야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생의 사명을 완수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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