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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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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daekim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이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 16: 19-33)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끝내시자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돈을 좋아하며 재물을 자신들만을 위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언행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의롭고 경건하고 성스러웠다. 하지만 그들 내면의 생활은 예수님이 “화 있을 진저, 너희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이요!”라 하실 정도로 불의하고 추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재물은 선하고 정의롭고 능력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그들의 생각은 그네들의 물질관을 합리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이어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들려주신 것은 그와 같은 그들의 생각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임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살펴보아야 할 줄 안다.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스럽게 사는 부자가 있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부스럼투성이의 거지가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웠다. 그런 그에게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다. 그 거지는 죽어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죽어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던 부자는 멀리서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보게 되었다. 그는 큰 소리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나사로를 보내 손가락에 물을 찍어다가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십시오.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라 외쳤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들을 마음대로 누렸고,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당했느니라. 그래서 지금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당하느니라. 그리고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서로 왕래할 수가 없느니라.“ 


이 말을 들은 부자는 나사로를 그의 집에 보내어 그의 다섯 형제에게 경고하여 사후에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라 말해준다. 그러자 부자는 죽었던 사람이 가서 말하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며 다시 애원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와서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참으로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가 평소에 입었다는 자색 옷과 베옷은 그 당시 서민들의 삼년 품삯을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싼 것들이었다. 그는 그처럼 비싼 옷을 입고 산해진미로 잔치를 베풀며 나날을 즐겼다. 


이러다 보니 “안식일 준수” 같은 것은 생각 밖의 일이었고, 안식일 이외의 6일은 열심히 일하라는 율법도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엄청난 물질의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사는 이 부잣집 문밖에서 거지 나사로는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이 부스럼이 난 채 부자가 먹다 버리는 빵조각을 주워 먹으며 연명했으니 말이다. 


이 비유의 나사로는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리신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와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어째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나사로라는 이름만이 명시되어 있는가에 대해 성경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는 버림받았지만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산 그였기에 (“나사로”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란 뜻이다.)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생각해도 큰 잘못은 아니라 믿는다. 


부자와 나사로에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날이 찾아왔다. 나사로의 시신은 참으로 쓸쓸하고 초라하게 이름 모를 땅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이에 반해 부자는 성대한 장례예식을 거쳐 특별히 마련된 묘에 안장되었겠지만 그 영혼은 꺼지지 않은 지옥 불속으로 떨어졌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부자와 사람은 물론 개에게까지 멸시받던 나사로의 운명이 생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이처럼 판이하게 바꿔진 것이다. 어째서 이 같은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부자는 지옥에 가야 할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다. 특별한 불법이나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일도 없으며, 그의 집 앞에서 문전걸식하는 나사로를 괴롭히며 핍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불행한 이웃을 돌보아야 할 인간의 기본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를 찬양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산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음은 물론 하나님의 법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살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에게 주어진 물질은 그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나 그의 집 문밖에 누워 신음하는 나사로에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부자 비유” 속의 부자처럼 그에게는 “나”만이 중요했고, “오늘의 삶”만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나사로의 경우는 어떠했던가? 그도 하나님의 일에 힘쓰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서 살지는 못했다. 가진 것도 없고, 몸조차 성하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행하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그 같은 존재는 처다 보지도 않으며 매일 매일을 향락 속에 보내는 부자를 원망하거나 그에 대해 분노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도움이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만을 지니고 살았다. 


이와 같이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다 생의 종말을 맞이한 부자와 나사로의 거처가 천국과 지옥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은 인생이 마감되는 시간이 아니요 영생의 시작임을 말해준다. 그 영원한 삶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지옥의 고통에서 신음하다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바라보는 순간 부자는 큰 소리로 나사로를 시켜 손가락에 물을 찍어다 그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아브라함은 그와 나사로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있어 왕래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선정해 준 사후의 삶의 거처는 결코 변경되지 않음을 알려준 것이다. 인간법정에는 삼심제도가 있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한 번의 판결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나사로가 그에게 건너올 수 없음을 알게 된 부자는 나사로를 그의 집에 보내 그의 다섯 형제들을 구원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을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며 그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부자는 포기하지 않고 죽었던 사람이 가서 말하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며 또다시 간청한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었던 사람이 가서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였다. 


하나님은 죄의 길을 따라 파멸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그의 놀라운 권능과 사랑을 보여주시며, 또 숱한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경고하고, 호소하며, 애원하셨지만 완악한 사람들은 듣지 않았음을 아브라함이 지적한 것이다.


부자는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 영원한 지옥 불 속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았기에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축복 속에 영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재물을 소유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재능과 소유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사용하며 하늘나라의 영화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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