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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21) 예루살렘-거룩한 성의 애가(3)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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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성벽을 꼽으라면 아마도 중국에 있는 “만리장성”과 길이가 57m밖에 안되는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일 것입니다. 통곡의 벽 사진을 보면 돌의 색깔도 3가지이고, 성벽을 쌓은 모양도 3가지가 서로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아랫부분은 헤롯 대왕이 자신의 건축 재능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엄청 크고 화려하게 재건한 헤롯 성전의 서쪽 벽 윗부분으로, 처음 축성되었을 때에는 약 485m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벽이었으나, 73년, 로마의 티투스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며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성전을 깨끗하게 헐어버리고, 로마 군대는 “우리가 이렇게 견고한 성을 헐어 버렸다”고 조롱하듯이 성전의 서쪽 벽을 57m 정도만 남겨두었습니다.

 

요즈음에도 계속되는 발굴에 의하면 지금 보이는 지상에 있는 아랫부분의 하얀 돌 부분은 원래 벽의 상부이고, 이 벽의 가장 밑 부분은 지금 사람들이 서 있는 아래로 13m 깊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통곡의 벽은 아래로 갈수록 큰 돌로 쌓여 있는데 이 돌의 무게는 큰 게 7.3t, 작은 게 1.8t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위로 보이는 조금 적은 돌로 쌓은 성은 움마야드 왕조 시대에 “솔로몬의 성전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바위의 돔”을, 그리고 “성전의 뜰 자리”에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으며 쌓은 성벽이고, 그 위로 조금 더 작은 돌들로 쌓은 성벽은 1319년 맘루크 칼리프가 무너진 모스크를 재건축할 때 쌓은 성벽입니다.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승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서야(313년) 비로소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일년에 한번, 성전 멸망 추모일(아브월 9일)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기도하는 것을 허락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드릴 성전도 없는 폐허로 남은 예루살렘에서 그나마 성전이 서있었던 흔적으로 가장 잘 남아있는 이곳, 짧은 벽 앞에서, 벽이라도 만져보며 함께 모여 기도하다 보니 자연히 통곡이 시작되었겠지요. 이렇게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보며, 유럽 사람들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습니다.

 

본래의 이름은 서벽(West Wall) 입니다.

현재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벽에 '신이 임한다'고 믿어 바위틈에 기도문 쪽지를 꽂고 머리를 벽에 대며, 혹은 몸을 앞 뒤로 흔들며 메시아가 빨리 오기를 기도합니다.

 

2018년 미국의 펜스 부통령도 이 관습에 따라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구약성경 시편의 한 구절을 읽고, 기도문 쪽지를 바위틈에 꽂았습니다. "나는 공화당원이기 이전에 보수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다.”라고 선언한 정치인이지만, 정치인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겠지요.

 

유대인의 성지인 만큼 복장 규정을 지켜야 하고, 또 까다로운 소지품 검사를 마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바지, 민소매 차림은 들어갈 수 없고, 남자는 모자를 써야 합니다.

 

사진 촬영은 어느 정도 허용된다고 하였지만 제가 갔을 때에는 웬일인지 경비가 삼엄하고, 카메라도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해서 결국 사진은 빌려 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경전을 갖다 놓고 서서 또는 앉아서 열심히 읽고 또 기도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검은 것과 흰 것으로 구분이 되는데, 대개 키파를 쓴 사람들은 흰 천을 걸쳤고, 더 정통 유대인들은 검은색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머리를 귀 양옆으로 따서 늘어뜨렸습니다.

 

모계혈통을 따르는 유대사회이면서도 이 성벽 앞에서는 요즈음에도 남녀가 유별하여 벽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남자가 기도하는 곳이고, 오른쪽의 일부가 여자가 기도하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돌과 돌 사이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식물로 여겨진다는 “아비오나”라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틈새에는 수없이 많은 기도문이 적힌 종이쪽지들이 꼽혀 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어떻게 이 식물에 “아비오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우리 말로 ‘아버지 오세요” 하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유대말과 우리 말 사이에는 비슷한 발음에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이 참 많이 있다고 합니다.

“통곡의 벽”을 관리하는 유대교 당국은 한 해 100만건이 넘는 이 기도문 쪽지를 연간 두 차례 수거해 '성전 산' 근처에 있는 감람산에 매립한다고 합니다. 왜 모든 고고학적 발굴은 땅 밑에서 발견되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옛날 도시들이 전쟁으로 허물어졌을 때, 정복한 사람들이 공들여 흙을 퍼 날러 덮어 놓고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흙이 쌓이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며 도시가 이루어졌다가는 또 무너지고, 흙이 쌓이고…켜켜이 쌓이는 이런 연속이 우리 인간들의 역사인가 봅니다. 그 것을 파헤치며 과거를 유추하는 것이 고고학일 것이고….

 

요즈음에도 하레디(Haredi)라고 불리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옛 성전 자리에 세워진 “바위의 돔”을 허물고 ‘제3성전’을 지어야 메시아가 도래한다고 믿어 새 성전을 지으려 하는데, 바로 그 자리에 대적하기에 버거운 모슬렘 사원이 버티고 있으니 속이 타는 모양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우리들이 지금 보고 있는 예루살렘은 예수님 시대로부터 약 33m 더 높은 땅 위에 건설된 예루살렘이기에 지금도 계속 발굴을 하며, 지금까지의 발굴로 기록되었던 역사가 조금씩 수정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약 3000전에 처음 솔로몬성전이 지어진 후, 완전히 허물어진 폐허에 다시 축소된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고, 그 마저 허물어진 폐허 위에 훨씬 더 큰 헤롯 성전을 지었으니, 그 바위자리가 과연 정확하게 지켜졌는지, 또 그 바위가 그 옛날의 바위인지 증명하기가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기도 합니다.

 

2007년 8월 30일에, 주택단지에 파이프를 설비하다가 제2성전의 유적이 발견되었고, 2007년 10월에 고고학자들이 제1성전 유적을 확인하였다고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즈음, 지금의 황금 돔 위치가 원래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졌던 자리에서 좀 떨어진 곳이 되었다는 발표도 솔솔 나오고, 바위의 돔 아래가 실로암 샘이 있었던 자리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언제인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한 요즈음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유적들이 지금도 지하에 많이 남아있기에 중동의 화약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요? 머리 아픈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둘러보기로 하지요.

 

▲사람들이 서있는 바로 앞, 제일 낮은 부분이 통곡의 벽입니다. 벽에 걸려 있는 것 같은 식물이 돌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아비오나”입니다.

 

▲헤롯 성전의 가상도. 서쪽 벽 485m 북쪽 벽 315m 동쪽 벽 450m 남쪽 벽 280m

 

▲통곡의 벽을 높은 곳에서 본 조감도. 황금 돔과의 땅 높이를 비교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 지점 이후로는 사진을 못 찍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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