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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폴리(Na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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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섬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여객선을 타고 나폴리로 떠날 때는 대개 오후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가 된다. 선수를 북쪽으로 파도를 가르며 쾌속하는 여객선이 만드는 파도와 물보라가 파란 지중해를 하얗게 갈라 놓았다. 


사라지는 항로를 바라보는 것도 즐겁고, 동쪽을 바라보면 “내가 언제 용암을 뿜어 냈었냐?” 는 듯 다소곳이 늦은 오후의 햇볕에 젖어 있는 베스비우스 산과 해안선 따라 보이는 하얀 집들이 파란 바다 너머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가 한참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14세기부터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로 꼽히는 나폴리.


요즈음에도 습관에 따라 미항이라고 불리우지만, 태양이 항구 바로 앞에 우뚝 선 누오보성 뒤로 기우는 즈음에 바다에서 바라보는 나폴리는 무엇 때문에 미항이라고 불리는지 모르겠다. 나폴리만 전체의 아름다움 때문일까?


아마도 나폴리가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노래가 몸에 배인 이태리 사람들 중에서도 뱃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나폴리 항구에서부터 시작된 가요제를 통해서 하층민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가요가 칸초네(canzone)라는 음악 장르에 들도록 유명해진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탱고” 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상하듯이….

 

 

 

 


흔히 칸초네의 왕으로 불리는 “오, 나의 태양(O solo Mio)”는 1898년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우승한 노래다. 칸초네의 여왕으로 불리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전에 설명한 대로 1902년에 우승한 곡으로 소렌토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고….(칸초네의 역사에는 성악과 더불어 기악도 있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음악 연구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자.)


나폴리에는 또 한가지 유명한 것이 있다. 이태리 하면 피자를 생각하게 되고, 피자 하면 이태리를 생각하는 대명사가 되었는데 그 피자로 유명한 곳이 바로 나폴리인 것이다.

 

 

 

 


이 또한 어찌 보면 짜장면이 인천에 자리잡은 화교의 음식점에서부터 시작되어 서민들이 즐겨 먹는 중국음식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피자 역시 부둣가의 노동자들이 쉽게, 부담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지도 모르겠다. 


1830년경부터 나폴리 피자가 대중화되면서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는데, 칸초네가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 망향가로 인기를 얻으면서 노래와 더불어 피자 역시 미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피자가 이렇게 세계화되다 보니 나폴리 사람들은 1984년 정통 나폴리피자협회를 설립하면서 나폴리 피자를 보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나폴리 피자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조건, 8가지가 명시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피자를 굽는 화덕을 보면 오래전, 피자가 무엇이었던 지도 모르던 시절, 한국에서 중국 호빵을 귀한 간식으로 먹을 때 본 중국집의 화덕과 너무나도 같은 모습이다.

 

 

 

 


또 하나의 이태리를 대표하는 음식이 스파게티인데 이 또한 짜장면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은가? 중국에서도 개방 이래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하자 이를 '이따리멘(意大利麵)'이라 부르면서도 이 스파케티의 원조가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근거로 들고 있는 4000년 역사의 국수는 칭하이(靑海)성의 라자(拉加) 유적지에서 면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 면은 매우 가늘어 직경이 대략 0.3cm, 길이 50cm로 색이 누렇고, 오늘의 면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스파게티의 역사는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번영을 누리며 중동, 유럽의 사람들이 모여 성시를 이뤘던 고대의 '글로벌 시티'였던 란저우(蘭州)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젖줄 황허(黃河)를 끼고 있는 란저우에는 유명한 “란저우 라면”이 있어 요즈음에도 란저우 시가 전문 사부를 미국, 영국 등 세계 각지로 보내 기술을 전파시킬 정도라니까! 


하긴 마르코 폴로의 구술로 작가 루스티켈로에 의해 “동방견문록”이 발표된 것이 1292년이었고, 1434년에는 명나라의 정화가 그 당시 존재하였던 이집트 운하를 통해 베니스까지 갔었다고 하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비단길까지 통한 동서의 문물과 문화교류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 같다.


밀을 재배하고, 곡식으로 사용한 역사야 인류의 역사와 거의 비슷한 연륜을 가졌지만 기계로 면발을 뽑을 수가 없었던 그 옛날에 면발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우리가 중국집에서 보아 오던 “수타국수(手打麵)”가 아니었을까? 


돌아다니다 보면 참 재미있게 엮이는 사물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니 이 또한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금융중심지이자 나폴리 왕국과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었기에 볼만한 고적들도 많이 있으련만 워낙 아침 일찍부터 폼페이를 돌고 카프리 섬을 오르내리고 난 후에 또 내일 들려야 할 다른 지역들의 볼 것이 많은 이탈리아 이기에 나폴리에서는 저녁으로 유명한 나폴리 피자를 먹고는 대부분 숙소인 로마로 돌아가는 일정들이다. 


이를 보상할 요량이어서인지 슬쩍 “이 곳의 치안이 좀 불안 하기에 관광지에서는 특히 조심을 하여야 한다”며 겁을 준다. 하긴 관광지에서 소지품 조심하지 않고 다닐 만한 곳이 세상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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