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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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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18절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래서일까? 초대 교회에서는 베드로를 제 1대 교황으로 추대한 후 뒤를 이은 지도자들을 교황이라고 부르며 지하교회를 이끌어 오던 중, 실베스테르 1세가 제33대 교황으로 즉위하기 직전인 313년 공표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덕분에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고 세상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 초기에 라테라누스 가문의 저택을 교황에게 기증하여 교황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바꾸었고, 궁전 곁에는 대성당이 세워져 324년 교황 성 실베스테르 1세가 '하느님의 집(Domus Dei)'을 선포하며 봉헌했다. 


이 성당이 바로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로마의 공식 주교좌(교황의 성좌)로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으뜸'이라는 지위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성지순례와 관광으로 항상 성황을 이루고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도 카톨릭 내에서는 지위가 더 높은 성당이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온 초대교인들이 전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교황의 선포보다도 바티칸 언덕에 묻혀 있다고 전승되는 베드로가 더 절실히 필요하였는지도 모르겠다.


326 년 11월 18, 베드로의 시신이 버려졌다는 바티칸 언덕 위에 ‘베드로 대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물론 대성당의 제대는 시신이 버려졌다는 바로 그 위에 설치되었고, 이 후 대부분의 교황이 선종하면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었다. 


그 후 1000여 년 동안의 여차여차한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부서지면, 보수하며 지내 오던 중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였고, 또 교회의 권력과 부가 바티칸으로 모이게 되자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던 교황 율리오 2세는 설계 공모를 시행했는데, 이 공모의 출품작들은 아직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남아 있다. 
최종적으로 브라만테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1506년4월 18일에 공사를 시작했다


율리오 2세 교황이 1513년에 선종하고, 브라만테 역시 1514년에 사망하자 후계자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프라 조콘도, 라파엘로 교체되었다. 


1520년 라파엘마저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죽자 뒤를 이은 대(大)안토니오 다 상갈로와 발다사레 페루치, 안드레아 산소비노가 작업을 맡았으나 40여 년간 작업은 조금밖에 진척되지 못하자 1547년 1월 1일, 바오로 3세는 70대에 접어든 미켈란젤로에게 안토니오 다 상갈로의 수석 책임자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 자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설을 총 감독, 지휘하는 자리였다.


미켈란젤로는 앞선 건축가들의 발상들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위하여 부분적인 설계를 변경하며 대성당의 바닥에서 바깥에 있는 십자가의 끝까지 136.57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을 만들었다.


돔의 안쪽 지름은 41.47m로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돔(43.3m)이나, 초기 르네상스의 피렌체 대성당의 돔(벽체 42m)보다 조금 작지만 서기 537년 완공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돔보다는 지름이 약 9.1m 정도 더 크다.


작업은 착착 잘 진행이 되었으나 워낙 큰 공사이다 보니 미켈란젤로 이 후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인재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가며 120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626년 11월 18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 때에 봉헌되었다.


성 실베스테르 1세가 옛 대성당의 정초식을 거행한 326 년 11월 18일로부터 정확히 1300년 뒤였다. 그럼 그 동안 사용해 오던 달력이 율리우스력에서부터 그레고리력으로 바뀌면서 사라진 10일은 어찌 계산하여야 할까? 


그 옛날에, 최대 6만 명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이 있고, 따로 분리된 44개의 제대와 10개의 돔이 있으며,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로 벽면을 장식하였다. 


이런 엄청난 규모와 헤아릴 수도 없는 예술작품들로 가득 찬 성당이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사진 몇 장으로 넘어 가기로 하자.


전승으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는 성당 가운데에는 거대한 발다키노(baldacchino : 옥좌(玉座)•제단•묘비 등의 장식적 덮개. 일명 천개라고도 한다)가 있어 성당의 중심역할을 한다. 


제단 아래에는 은으로 된 작은 상자가 있는데 성 베드로의 유골함이라고 한다. (확인을 하는 방법이 없다.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에 가면 예수님 처형 당시 머리에 쓰고 있던 가시관의 가시 하나가 성물로 보관 되어있기도 하다.)

(혹자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 맞는 명칭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사용하였다.)

 

 

 

 

 

  

 

 
 

 

  

 


열 받은 미켈란젤로가 밤에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듦” 이라고 성모의 가슴에 두른 띠에 새기고 나왔다고 한다. 아침에 밖으로 나오니 찬란한 아침 해가 온 세상을 비추는 것을 보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세상 어디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크게 반성하며 그 후 어디에도 이름을 써넣지 않았단다. 산타 페트로넬라 성당에 있다가 18세기에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 오른쪽 경당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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