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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일기(1. 저녁 수채화)
bh2000

 
이민 일기
(1. 저녁 수채화) 


 

 

잠든 남편 머리맡
베개닛을 갈아 끼운다  
끙하고 뒤채일 때마다 달라붙는 코피들 
하루종일 못을 박고 돌아와   
잠든 코골이 곁에 앉아
살며시 벗겨낸 베개닛을 살펴본다

 

홀홀단신 건너온 안개 속  이민
하던 사업이 빚더미에 나앉았을 때
파산만은 막아보자고 힘에 붙인
일용직 묵묵히 참고 견디던 그이

 

툭하면 돌아가자고 투정하던 식구들 위해
손마디가 닳도록 희망으로 버티어 내더니 
마침내 코피까지 쏟아내는구나
땀으로 얼룩진 베개닛에 낭자한 핏덩이가
이민의 꿈을 덧칠하듯 끈적거리고 있다

 

돌부리에 넘어져도 안고 구르던 꿈
그 꿈 하나 건지기 위해 
남의 땅에서 흘린 피, 그리고 땀방울들 
온기 남아 있는 그 위에 손을 얹어본다

 

손끝에 와 닿는 비릿한 꿈
비비고 치대기를 반복하자
대야 속 핏물이 거품 속에 풀리듯 
환해지는 그의 꿈
빨랫줄에 물구나무로 펄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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