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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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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Hwanghyunsoo

 

나는 부산 서대신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부산’이라고 선뜻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부모님이 함경북도 출신인데다가, 부산 피난살이 중에 만나 결혼해 나를 낳았고, 정작 3살 때 서울로 올라와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산하면 왠지 정다워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았고 그곳 출신이라고 하면 ‘나도’하며 반갑게 인사하게 된다.

 우리 가족처럼 지방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 ‘서울 공화국’을 만들었다. 2019년 통계를 보면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50%를 돌파했다고 한다. 한 나라 수도가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흔한 일이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는 이유는 진학과 취업이다. 명문 대학과 일자리가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문화 예술에 꿈이 있는 청년들이 서울로 모인다. 그래서인지 제 2의 도시인 부산에서 올라온 연예인도 꽤 많다.

 우리가 잘 아는 배우 김태희, 김혜수, 김자옥, 정유미, 최지우, 공유, 강동원, 장혁, 이준기 등이 부산 출신이다. 개그맨 이경규, 정형돈, 신봉선, 안영미, 김숙, 가수로는 나훈아, 문주란, 설운도, 최백호, 강산에, 김건모, 김수미, 이소라, 이승환, 이택림, 장현, 정훈희, 현철, 정용화, 쌈디 등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최근 조사에 의하면 아이돌 가수의 11% 정도가 부산 경남 출신이라고 알려졌다.

한 연예 기획사 대표는 “부산 출신 연예인들은 지역색인지, 대부분 성격이 괄괄하고 쾌활한 것 같다”며 “아무래도 활발한 성격이 연예계 생활에 도움이 되니 부산 출신 연예인이 많은 것 아니겠냐”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다. 하지만, 부산 출신 연예인들은 소위 말하는 ‘끼’는 많지만, 다른 지역 출신처럼 지역을 홍보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수도권에 정착해 생활한다. 물론 인기가 시들어 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1970년대 톱 가수였던 이 가수도 TV에서 볼 수 없더니, 슬그머니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 가수’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꽃밭에서’다. 이 곡을 들으면 ‘나의 20대’로 쉽게 돌아 갈 수 있어 즐겨 듣는다.

이 곡의 작사가는 이종택으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세조 12년 강원도 관찰사로 관직을 마친 최한경의 한시(漢詩)를 풀어 쓴 것이다. 최한경에게는 어릴 적부터 마음에 뒀던 박소저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대상으로 양쪽 아버지끼리 혼삿말이 오간 사이다. 한양에 올라와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고향의 그 이웃집 처녀를 생각하며 지은 애틋한 시다. 최한경이 쓴 ‘花園(화원)’은 세월이 지나 ‘꽃밭에서’라는 음을 달아 훨훨 날게 된다.

坐中花園 膽彼夭葉(좌중화원 담피요엽)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 云何來矣(혜혜미색 운하래의)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何彼(艶)矣(작작기화 하피염의)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 吉日于斯(사우길일 길일우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 云何之樂(군자지래 운하지락)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1967년 여름, 부산에서 올라온 17세의 여고생은 남대문 인근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소녀는 피아니스트였던 작은아버지의 반주에 맞춰, 미 8군 가수들이나 부르던 팝송 ‘러브 레터(Love Letter)’를 유창하게 불렀다. 특유의 미성과 고음에 감탄한 나이트클럽 직원들은 넋을 잃은 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시간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작곡가 이봉조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얘는 누구야?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 이봉조는 자신이 만든 곡 ‘안개’의 색소폰 연주가 담긴 음반을 소녀에게 쥐어 주며 말한다. “이 곡 멜로디를 꼭 외워 놓아야 한다. 알았지?” 여고생 정훈희는 이렇게 이봉조를 만나 ‘안개’로 1967년에 가수로 데뷔한다.

 

 

 

가수 현미의 남편이기도 한 이봉조는 약간의 비음이 섞인 맑은 음색에 음의 떨림이 전혀 없는 정훈희의 순수한 목소리를 높이 평가했다. ‘안개’로 <동경가요제>에서 3위로 입상한 그녀는 ‘무인도’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내며 높은 인기를 누린다. 그렇게 잘 나가던 정훈희는 1975년에 대마초 파동에 걸려 노래 취입 등 가수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꽃밭에서’는 이봉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훈희를 위해 만들어준 곡이다. 다른 가수들도 ‘꽃밭에서’를 서로 받으려고 했지만, 이봉조는 “내가 제일 깨끗한 마음으로 작곡한 이 노래는 훈희 것이다”며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꽃밭에서’를 부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1978년 열린 <칠레 가요제>에 소리 소문 없이 가서 ‘꽃밭에서’를 불러 최고상을 거머쥐었지만, 우리들에게는 들려줄 수 없었다.

1979년 12월에 해금이 되고 나서야 방송을 타게 되지만, 인기는 벌써 70년대 같지는 않았다. 트로트가 점령한 가요판에서 ‘꽃밭에서’는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로 소수 마니아들에 의해서만 조금씩 불려졌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꽃밭에서’는 그로부터 16년 뒤, 조관우가 부르며 크게 히트한다. 소리꾼 조통달을 아버지로 둔 조관우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몽환적인 미성으로 ‘꽃밭에서’를 부활시켰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사는 연인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고 원곡을 부른 정훈희도 덩달아 조명 받는다.

뜻대로 재기를 못한 정훈희는 1980년 ‘라스트 찬스’의 리더인 김태화와 약혼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히 방송을 멀리하게 되었고 공백만큼 대중 또한 그녀를 잊게 된다.

지금, 정훈희는 부산서 카페 ‘꽃밭에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매주 주말에 남편과 자신의 카페에서 공연하며 손님을 맞고 있다. 기장군, 풍광 좋은 아름다운 해변에 있는 정훈희의 라이브 카페에서 ‘꽃밭에서’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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