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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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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뒤에서 불고…
Hwanghyunsoo

 

 

손석희 앵커의 마지막 메시지다. 그의 하차는 홍석현 회장 등 JTBC 최대 주주인 중앙 홀딩스 경영진의 판단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손석희 행보에 관심들이 많다. 


 그가 몇 년 전 앵커브리핑에서 직접 한 말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당시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저희들의 뉴스를 바꾸라고 바로 그 기업, 삼성의 수장에게 압박을 넣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결과로 나타난 그대로… 그 기업의 수장이든 누구든, 그 기업 자체든, 저희들에게 그 어떠한 압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중략>…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성에도 방송사 하나쯤은 있어야지 하며 1964년 TBC를 세운, 고 이병철 회장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뉴스가 JTBC의 전파를 타고 나갔다.


시간을 좀 돌려보자. 1984년 손석희가 문화방송에 아나운서로 입사한다. 그 후 빠른 속도로 인정을 받아 입사 2년 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기자를 하고 싶어서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해 1986년에 보도국 기자가 된다. 


그 시절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했으나, 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1년 만에 아나운서로 돌아간다.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한 후, 1987년 2월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며 이득렬, 차인태, 변웅전을 잇는 MBC의 간판 스타로 자리를 굳힌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 바람으로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노조가 방송 관련법에 맞서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 방송 리본을 달기로 한다. 하지만, 사측은 “리본을 다는 노조원들은 모두 프로그램을 출연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손석희는 이것을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다음날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고 한다.


 이후, 1992년 가을에는 MBC 노동조합 활동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게 된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여당에게 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 보도를 금지하면서 노조가 반발을 해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52일 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는 이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 동료 몇 명과 함께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다.


그 뒤 여러 보도와 예능 프로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다가 1997년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국제 민간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사측에서 1년 갔다 오라는 것을 "쉴 바에야 확실히 쉬자"고 2년을 고집해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1999년 귀국하여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 집중>의 진행자가 된다. <시선 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 보도의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는다 


2006년 MBC를 퇴사하며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간다. 퇴직 후에도 객원으로 2002년부터 진행하던 <100분 토론>을 2009년까지 하다, 결국 10주년 방송 후 하차한다. 당시 그의 프로그램 하차는 보수세력이 원했다는 설이 있는데,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MBC에서의 존재감은 당시에 엄청났다. 


그렇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김재철 사장이 ‘효자동’의 눈치를 보며 자르고 싶은 진행자였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타격이 커서 칼바람을 휘두르지 못했다.  손석희 사장이 2013년JTBC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아나운서만 해보고 토론 사회자와 라디오 진행자만 해봐서 조직을 지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자들처럼 보도국에서 상하 위계를 배운 것도 아닌데 저런 사람이 무슨 리더십이 있겠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삼성그룹이 모태가 되는 JTBC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관련 사건도 서슴없이 내보내며 기우를 날려보냈다.  손석희는 ‘최순실 사건’을 보도하면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나타낸다. 2019년 10월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과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지만, 좌편향된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한편으로 본인의 성향을 살짝 비춘 적도 있긴 한데, 2000년대 진행된 <MBC 100분 토론 특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좌우 대립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 생각을 살짝 말씀 드리자면 저는 참여 정부를 별로 좌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일부 보수 세력들이 '손석희도 좌빨이다' 라고 한동안 트집을 잡자, <100분 토론>에서 "저에 대해서 한두 분이 말씀을 하시는 데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중립,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일 뿐"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보수 쪽 출연자인 전원책 변호사가 농담식으로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표현해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하지의 그림자가 가장 길 듯, 많은 사람의 눈에 많이 띄니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것이 세상이치다. 요즘 그는 JTBC사장으로서 낮은 경영 수지와 시청률이 떨어져 경영자로 평이 안 좋다. 그동안 높은 시청률 때문에 간섭을 못하던 오너 경영진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길들이기’를 하는 것 같다.


 그가 ‘효자동’의 눈치를 이겨냈듯, ‘삼성’의 길들이기도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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