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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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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는 우리 후손의 큰 유산
Hwanghyunsoo

 

   반야월은 박시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일컬어진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꽃마차> <울고 넘는 박달재> <산장의 여인> <산유화> <찔레꽃> <무너진 사랑탑> <열아홉 순정> <아빠의 청춘> <소양강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 반야월.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고향만리> 등을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수 진방남.


 반야월, 진방남, 이 둘은 사실 한 사람이다. 반야월과 진방남은 예명이며 본명은 박창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반야월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반야월은 1917년 경남 마산 반월동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노래와 글이 뛰어났다. 그가 태어난 때는 불행히도 일제 강점기여서 학교에서 우리말과 글을 배우지 못하였고,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기엔 모든 게 척박했던 시절이었다.


 반야월은 1933년 진해농산학교를 졸업했다. 가세가 기울어 한동안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반야월은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마산을 떠난다. 그는 청주에서 양복점을 하는 숙부집을 찾아가 양복일을 배우며 생활한다. 재단사 보조로 일하던 중,1937년 조선일보-태평레코드사가 공동 주최한 콩쿠르대회가 김천에서 열렸다. 당시 콩쿠르대회는 흔치 않아 전국에서 참가자들이 몰렸다. 대회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반야월이 참가해 1등을 했다. 


    
 콩쿠르대회 1등 입상을 계기로 1939년 태평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태평레코드사는 대일본 축음기 주식회사의 조선 영업소였다. 당시 받은 전속료는 40원인데  커피 한 잔 5전, 전차비 5전, 냉면 15전, 2인1실 하루 세 끼 제공하는 월  하숙비가 13원이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음반을 내려면 일본으로 건너가 노래를 취입하고 음반을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반을 상선에 싣고 와서 경성, 부산, 인천 등지에서 팔았다. 대일본 축음기 주식회사는 오사카에 있었다. 전속 계약을 맺은 뒤 반야월은 <불효자는 웁니다>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끌었다. 


 광복 직후 1945년 <남대문 악극단>을 창설하였고 1948년 방송 희곡 ‘허생원전’이 입선 돼 희곡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몇 년 뒤 악극단이 망하면서 당시 공동묘지가 있던 미아리로 이사를 가야만 했는데, 그때 6•25가 터졌고 그는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때를 회상하며 쓴 곡인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나왔다. 


 반야월 작사•이재호 작곡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이해연이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그는 5천여 대중가요 가사를 남기고 2012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반야월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랑받고 있고 이곳 토론토에서도 그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반야월 선생이 남긴 흔적이 바로 우리 문화 컨텐츠이고 우리 후손의 큰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번 10월 15일, 16일에 하는 악극 <불효자를 웁니다>는 그래서 우리 동포들에겐 더욱 뜻 깊은 공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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