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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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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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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바나나의 시비

 
바나나의 시비  
 

 

 

 

식탁 위에 바나나는 늘 곤혹스러웠지
애매모호한 겉과 안의 시비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지도 위에 떠 있는 나라 코리아에서 이민 온  
노란 소녀가 흰밥에 김치 도시락 먹다, 아뿔싸
또래 친구들 빗자루를 들고 쫓았지
곁에 올까봐 멀리서도 슬슬 피해 다녔지 
흰 바나나가 되기 전에는 곁에 얼씬도 못하게 선을 그었지
동물원에 원숭이 쳐다보듯 놀리곤 했었지

 

새학기 단체사진에서 내가 바나나란 걸 발견했지
과일 사이에 노란 바나나로 앉아있는 나
하지만 아무도 바나나를 희다고 말해주지 않았지

 

하지만 바나나를 원망하며 숨은 적 없었지
그것은 내가 철든 이래 가장 견고한 안쪽이었지
비바람과 곤충의 노략질에도 견뎌낸 껍질임을 알았지
노란 살갗을 벗겨내면 비로소 나의 정체가 드러났지
흠없이 잘 생긴 바나나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아이덴티티라고 했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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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
곰의 혈통

 
곰의 혈통
 

 

 

일찌기 우리는 진화된 곰이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 
암흑천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동굴 속 약초로 연명하며 살아남은 질긴 혈통이다

 

거듭거듭 말하노니 
상처투성이의 큰 짐승은 
심장을 지녔고 혀 깨문 입을 가졌고
간과 쓸개의 배알을 키웠고 똥을 품었다  

 

36년 식민지로 할키고 짓밟힌  
끔찍한 역사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해묵은 의문부호들 앞에
썩어 문드러져도 좋을 이웃 섬나라 
입술이 덜덜 떨리는 치욕이 아니더냐

 

그을린 얼굴을 짓밟는 장화, 저 짐승 
음침한 악을 숭배하는 야수의 피를 가진 야만이여
백년의 피눈물 헐하단 말인가 
그  참혹함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죄 같은 건  없다는 뻔뻔함으로
친절하게도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는 말
그 끔찍한 계시는 앞서간 선열들 
더운피 서늘하게 거르는 분노의 창이 되어   

 

잠자는 흰 옷들 깨어 일어나라  
창마다 불을 켜고 거만한 새치 혀에 저항할   
식어 있던 몸이 다시 뜨거워지는 날
흰 눈을 이글루처럼 뒤집어 쓴 곰
앞 발톱 세워 두 눈 부릅뜨고 
부동자세로 섬나라 노려보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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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상처의 비망

 
상처의 비망 
 

 

 

비탈진 자갈밭에 돌멩이를 골라냈다
호미끝에 묻어나온 흙을 들쳐내니
몸 부쳐먹은 뿌리가 말갛게 나를 올려다 보는 거였다
내 목을 쳐 다오. 어서
던져진 밭둑에 말라가는 질긴 목숨줄
나무밑에 축축한 시름이 뿌리의 살을 밀어 올리면
나를 먹여 살린 돌덩이도 늙어 고부라지면 흙이 될텐데 
묻지 않아도 될 아픔들이 자꾸 커 보이는 시간 
이  말을 듣는날이 많아진 근래에
삽이나 호미에 찍힌 상처들이 참 크고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멩이를 골라낸 밭에 뿌리 내릴 수 없는 
나무들이 제 목숨을 처 내는 슬픔이야 말로 
부쳐 먹고 산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더란 말이다
힘없는 자갈의 몸을 빌어 먹고 사는 뿌리들의
은밀한 유서가 내 이야기인 듯
돌멩이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는 뿌리들

 

몸 붙여 먹는 일이 두려운가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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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9
꼬리에 대한 명상

 
꼬리에 대한 명상  
 

 

 

 

동트는 아침 
턱! 차도를 건너가는 짐승의 몸  
바퀴에 밟혀 광기는 바닥에 깔려 있다   

 

더운 피 낭자한 서늘한  전율
고개 들 수 없었던  창을 열고
파르르 움푹한 눈꺼풀 
몸을 떠는 발가락을 보고 말았다

 

퇴근 후 사고 현장 검증에 나섰다
등과 어깨 심지어 머리털까지
네 발 짐승에게 다 내어주고
달랑 남은 붓 한자루 
화폭 아래 찍을 낙관 한 점
오롯하게 남아 있다 

 

각을 세운  땡볕 아래 
벌레들 우글거리는 일만 남았다
온기 식을 때까지 오물거리고 핥다가
포란한 배 뒤집은 채
깃발 세운 벌레들의 행렬 지켜보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생을 살다가
화폭에 찍을 흔적 하나 남길 수 없는
내 생이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가로등은 
일몰로 돌아온 어둠을 밝히며
여전히 붉게 서 있는데
나는 꼬리에게 묻지 못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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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수국꽃의 유년

 
수국꽃의 유년  
 

 

 

비 내리는 칠월의 저녁
마당에 핀 수국을 바라보다
흰 고봉밥 한 그릇을  생각한다

 

둘러앉은 저녁상 너머 숟가락 부딪히던 날들
투덜대던 밥상 위로 피어나는 저 수국꽃
고슬고슬 갓 퍼온 밥처럼 
한바탕 여름을 피워내고 있다

 

앙앙, 흰밥 달라 보채던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열 살 계집의 유년
물기어린 그 기억으로
이방의 화단에 꽃을 피우려
수국 핀 그 길을 얼마나 서성거렸나

 

질긴 가난의 흔적은   
유년의 흉터를 다림질 못해
가족들 저녁상에 왁자한 하얀 웃음꽃 
꽃물 들지 못하는 밥상 위로
통증이 옆구리를 쑤셔댄다

 

수국이 다녀간 자리마다
세월에도 마멸되지 않은 
유년의 하얀 기억이  
오늘은 비에 젖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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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부추꽃

 
부추꽃
 

 

 

붙들고 싶은 것이 많은 날
나는 당신을 따야겠어요
하얘- 라고 발음할 때 누군가 왔다 간 오후
나는 꽃을 버리고 떨어지지 않은 꽃잎을 쥐고 있다

 

흰 물이 몸 속으로 흘러 들었다
언젠가 내게 살을 떠먹여준 적 있는
저 하얀손에 마지막 입맞춤을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름을 가져 보지 못한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번지는 꽃비린내
벌이 손을 핥았고 꽃이 거품으로 날아오르던
그런 날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진물을 긁어내고 환하게 약을 발라주던 
최초의 손을 꽃은 기억한다

 

그것은 희고 아파서 꽃잎밖에는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다는데
총총히 달린 당신 손 잡고 
하얀 세상을 마냥 걷고 싶어지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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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담쟁이의 기억

 
담쟁이의 기억
 

 

 

어머니는 나를  유독 혹독하게 키웠다.
늙으막에 낳은 자식 당신 먼저 가면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냉장고안 찬밥신세 될까봐 
일부러 스파르타식 훈련을 강행했다
돌담 속 곤충이나 벌레를 피해가는 일이며
심지어는 세상 절벽에 관한  이론과 실기를 병행해 주었다.

 

삶이란 절벽을 기어 오르는 일이다.
잔소리로 듣던 어머니 생전의  말씀처럼 
덩굴손 뻗어 악착같이 기어 오른다 
거미가 앉았다 간 자리 눈길 거두고
바람과 이슬 온기 붙잡은 절벽 끝에서 
여린 손을 뻗어 푸르게 오르는 건 
이방에서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포복에 이골난  몸으로 살아온 30년 
넝쿨은 아래로 뻗지 않고 기어오르는  습성을 지녔다
기어오르지 않고 담장을  건너는 넝쿨은 없다.
차디찬 벽에 손을 뻗을 때마다 두 발을 받쳐주던 어머니
가르침이 이렇게 생의 나침판이 된다는 것을
곤고한 변방의 기록을 콘크리트벽에  점자로 남기고
그 기억으로 떨어지지 않고 견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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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라일락 꽃

 
라일락 꽃
 

 

 

 

향기를 품고 있는 것들이 어찌 꽃 뿐이랴 

 

꽃과 사람
마주 보고 있어도
한발짝 
더 가까이 의자를 당기고 싶은

 

그녀의 존재는 늘
홑겹 꽃잎을 지키기 위해     
바람이 풀어낸 점쾌를  따라
순간마다 보랏빛 향기를 지녔다

 

처음부터 지금껏 
굴곡없는 표정이며 그 넉넉한 품새
보탰줄도 모르고 밀당도 할 줄 몰라
그저 꽃의 중심에 서서
바람 따라 향기 날리는 일이면 족하다고

 

앞 뜨락에
마지막 꽃물 거두는 꽃의 후생 바라보며  
말이 향기가 되는 
그녀에게 안부 카톡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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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거미의 연가

 
거미의 연가 
 

 

 

날이 저무네 
시나브로 걸어오는 어둠을 헤치며 사방을 살피네
날선 사각의 모서리마다
낮은 음계들이 거미줄처럼 걸려 있네

 

어둠을 기다리며
거미 혼자 밥을 먹네 
밥알 담긴 숟가락을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네
순간 검은 문장들 후둑 떨어지네
그러면 별이 거미를 안아주네
거미와 별 나란히 저무는 것들에 대하여 의논하네
거미가 별을 보며 가만 웃네 

 

밥상을 치우는 거미가 어둠 속에 달그락거리네
어둔 밥상 위로 후두둑 별 떨어지네
그러면 거미가 별에게 달려가네 
숨찬 별이 거미에게 무릎 꿇어 인사하네
숙인 고개가 별빛으로 빛나면 등 낮춘 어둠이 저물어가네
저문 집에  거미 혼자  잠이 드네 
저무는 건 집만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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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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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
저무는 것에 대하여

 
저무는 것에 대하여
 

 

 

생각은 뒤죽박죽
풀어놓은 실타래처럼 엉키고
뿌리째 뽑혀나간 달음질하는 마음의 꽁무니

 

닫혔다 열렸다
몸보다 무거운 마음 털어낼 수 없어 
그늘이 깊고 둥근 숲 
떠나려는 봄 목덜미 붙잡으려고
애쓴 몸짓 저리 아프다 

 

첨삭도 하지 않은 말들 풀어놓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시간들  
침묵보다 더 낮게 흐르는 시간 나눠 마시며
몇 살이세요?
꿀꺽 나를 먹고 사는 일 
거듭거듭 날 먹고 있으니
부채살처럼 퍼져가는 주름 웃음살들   
이제는 저물 일밖에 없다고

 


서로에게  주저주저하는 사이 
안으로 단단한 것들은 저마다
뒷모습이 헐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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