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시와 오솔길

bh2000
FA289244-8055-4191-84B5-56A2E5E6EBED
56502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33
,
전체: 27,813
정봉희
(시인)
[email protected]

메뉴 열기
bh2000
bh2000
73491
9207
2019-04-15
내 안의 강

 
내 안의 강
 

 

 

18살, 아들을 몇 대 쥐어박고
나선 저녁 강가
해 떨어진 그랜드강에
후둘거리는 다리를 끌고
하루를 다친 상심한 발걸음으로 앉아 
뒤채이는 강물 소리를 듣는다

 

차라리, 이곳에 발걸음 하길 잘했다.

 

내 살로 빚은 자식 두들겨 놓고
저문 강가에 홀로 선 어미는 
저 물새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너 때문에 온 것이여 ! 이눔아
비스듬히 옆으로만 걸어가는 게에게
한 보따리 낙담을 풀어놓고
입 벌어지는 수북한 잔소리에
세상 문 하나 철렁 닫히고
눈가에 밴 얼룩을 어쩌지 못한 채
탯줄처럼 질긴 자식에게
세상에서 부끄러운 어미를 보이고 말았다.

 

남의 땅에서
자식 키우는 일이
겨울볕에 빨래 말리기보다
몇 배 어렵다는 것을
베개 젖어 본 사람은 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3399
9207
2019-04-06
이민 일기(2.글썽이는 곶감 )

 
이민 일기
(2.글썽이는 곶감 )


 

 

 

남도 땅 끝에서 어머니 보내신 
곶감을 펼쳐 놓으면
그녀의 숨결이 내 목을 감싸 온다
달큰한 맛에 목이 메이면
헐렁해진 가늘고 긴 팔로 나를 안고는
두 손으로 언 뺨을 비벼 온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굽은 허리를 펴서
종일 매달린 감을 올려다 봤을 날들을 생각한다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
곶감을 만들었을 손길을 떠올리며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해서 먼 나라 딸에게 보내시는지
그걸 누가 먹는다고 어머니도 참.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 어쩌면 이 곶감도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손이 풀린다

 

펼쳐 놓았던 포장지 위에 곶감을
들었다 놓았다 
한나절 손에 일 잡히지 않고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창 밖엔 어느새 눈보라

 

먼데서 달려온 성긴 눈발 
글썽이며 질펀하게 녹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3326
9207
2019-03-30
이민 일기(1. 저녁 수채화)

 
이민 일기
(1. 저녁 수채화) 


 

 

잠든 남편 머리맡
베개닛을 갈아 끼운다  
끙하고 뒤채일 때마다 달라붙는 코피들 
하루종일 못을 박고 돌아와   
잠든 코골이 곁에 앉아
살며시 벗겨낸 베개닛을 살펴본다

 

홀홀단신 건너온 안개 속  이민
하던 사업이 빚더미에 나앉았을 때
파산만은 막아보자고 힘에 붙인
일용직 묵묵히 참고 견디던 그이

 

툭하면 돌아가자고 투정하던 식구들 위해
손마디가 닳도록 희망으로 버티어 내더니 
마침내 코피까지 쏟아내는구나
땀으로 얼룩진 베개닛에 낭자한 핏덩이가
이민의 꿈을 덧칠하듯 끈적거리고 있다

 

돌부리에 넘어져도 안고 구르던 꿈
그 꿈 하나 건지기 위해 
남의 땅에서 흘린 피, 그리고 땀방울들 
온기 남아 있는 그 위에 손을 얹어본다

 

손끝에 와 닿는 비릿한 꿈
비비고 치대기를 반복하자
대야 속 핏물이 거품 속에 풀리듯 
환해지는 그의 꿈
빨랫줄에 물구나무로 펄럭거린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3228
9207
2019-03-23
감정의 DNA

 
감정의 DNA
 

 

 

그것은 난해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신의 영역이었다      

 

목소리의 고저음에 따라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미간의 흐름에  따라 주눅이 들어 
눈이 깊어지고 목이 길게 늘어나기도 하지만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그녀는 분명
낯선 음표들을 꺼내 건반에 옮기는 멜로디의 달인 같아 보였다 

 

희고 검은 건반 위로  툭툭 떨어지는 고음들        
미묘한 감정의 힘을 이용해 건반을 누른다 

 

목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음계의 높낮이를 받아내는 표정은
현을 두드려주는 해머 같은 것이어서 
내가 데리고 온 차겁고 이글거리는 푸른빛들은
분명한 음을 가진 그녀의 소리 곁에     
반음의  방해자로 지쳐 돌아왔다 

 

다섯 손가락으로 버거운 건반 위에 음계들
뺨을 치듯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간 뒤  
고요하다

 

검은 반음들이 어디에서 불화음을 내는지 
감정의 DNA를 몸 안으로 자꾸 들여놓다 보면 알게 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3137
9207
2019-03-18
봄의 서곡

 
봄의 서곡 
 

 

 

 

눈을 치우다
쓰러진 눈삽 팽개치고 봄을 생각했다
보관할 곳 조차 없는 눈, 눈치봐가며
삼월의 수선화
사월의 목련
오월의 튤립
얼음장 속에서 뿌리 털어내는 푸른 싹 하나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발목이 푹푹 빠지는데 너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니
눈 덮인  대지에  코를 박고
가혹한 시간을 견뎌내는 저들의 고통을
눈삽이 먼저 염려했다
그럴수록 눈 치우는 손길은 가벼워지고 
누구는 봄이 온다는 기별을  받았다는 둥
누구는 봄바람이 다녀간 흔적을 보았다는 둥
양지쪽 담장 아래 심장이 쿵쿵 뛰는    
흰 눈을 이불처럼 뒤집어 쓴 노란 싹 하나  
두 눈을 끔벅이며 흙을 털어내고 있다 
대지를 잃어버린 캄캄한 저 안쪽 왁자한 걸 보니  
곧 봄 오시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3050
9207
2019-03-07
홀로 잠드는 집

 
홀로 잠드는 집 
 

 

 

창백한 야근을 마치고 
퇴근 가방에 온수 물통을 꺼내는 여자가 
한기에 온몸을 떨며 무릎이 꺾였을 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단잠에 빠진 여자를 위해 
냄비 위로 흘러 넘치는 육수를 온몸으로 받아
한나절 내내 마른 행주를 가만 덮어주는 일이거나 

 

어디로 가야 하나
고개 떨구고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을 때
생존을 위해 닳은 신발 뒤축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고 격려하며 홀로 잠들 줄 아는 집 

 

때론 지붕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잠재우고
흔들리는 창문을 애써 다독이며
주인 행세를 자처하며 뜬눈으로 홀로 잠들었을 집 

 

길 모퉁이 멀어질때까지 
숨이 막힐 듯 차올랐던 그곳은 나의 광장 
고개를 천천히 들어 발음했을 때
언제나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늦게 귀가하는 그녀의 빈집처럼 
내가 그를 생각하는 일이
그 어둠과 고요만큼 아프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혼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948
9207
2019-03-02
겨울강

 
겨울강
 

 

 

풀어야지요
살아갈 날 길지 않은 당신과 나
무거운 침묵 바라다 보다
어느 세월에 풀려 강물 되나요

 

그만한 일 두고 마음 상해서
폭설 뒤집어 쓴 채 눕는다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에게 부끄러울 거라고

 

밉다 곱다 내색않는 독한 사람
그런 당신을 갖고 싶지 않지만
언 강에 햇살을 들이고 싶은 나는 
뒤척이는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얼음 강 풀리면 우리도 풀고 살아야지요
어떤 강물은 흐르는 일에 지쳐
그만 멈추어 버리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리없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강물이
먼 강을 간다지요 

 

뒤따라갈게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871
9207
2019-02-23
사모곡

 
사모곡
 

 

 

까르르 별이 뜨고
산벚꽃 날아드는 꽃길이었던 것 같다
움푹한 팔짱 끼고 잠깐이지만 걸었던 봄길
한밤중 깨어나 비릿한 꽃잎 깨물며 당신을 생각한다.

 

어느 순간 풀려날지 모르는 팔뚝 사이로 
운명처럼 당신을 보내야 하는 시간
별이 지고 하르르 꽃이 진다
그렇다고 불행한 이별이라 말할 수 없다

 

산벚꽃 하강하는 이별의 감정은 애초에 멀리 두고자 했으므로
모를 일이지만 힘든 이별을 준비해야 할 순간이
꽃잎처럼 내게 오리란 말처럼 들린다

 

이런 밤에는 어떤 위로도 무책임하다
발등에 떨어진 꽃잎의 순리처럼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도 내 안의 슬픔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 눕는다

 


*이 시는 지난 14일 향년 90세로 한국에서 타계하신 필자의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시입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797
9207
2019-02-19
겨울 그네

 
겨울  그네
 

 

 

텅 빈 공원 놀이터
그네와 나란히 서 있다 
말뚝처럼 서서 바라보는 일몰의 겨울끝
비상하는 일만 남았다

 

흔들리는 일이 전부인 그네는  
바람이 밀면 가뿐하게 오를 테지만
날개 잘린 몸을 바람 혼자서
밀어 올리는 일은 쉽지 않을테지요

 

철조망에 매달린 삶의 무게가  
바람의 얼굴로  허공에 오르면 
어느새  몸도 가벼워져서
그네는 바람 앞에 혼절하고 말겠지만

 

바람이 그네를 타고 가는지
그네가 바람을 밀고 오는지 
가벼워진 내 몸도 웬만하면
허공에 높이 오를 수 있겠다고

 

적막처럼 다가오는 헐한 저녁이 
그네로 흔들리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705
9207
2019-02-11
폭설 그 후

 
폭설 그 후
 

 

 

 

큰 눈 내린  숲 속  
폭설이 편백나무 가지를 허무는 것을  보았다.
툭, 어깨를 치듯
고요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상처는 추상 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일까, 얼굴 속 두개의 눈동자
질끈 한쪽 눈을 감고 
어깨를 툭 툭 치는 이 사람
어쩌면 오래 전 왼쪽이거나 오른쪽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나무는 몸을  어디로 세울 것인가

 

찢어진  어깨의 상처가 눈속에 묻혀 
녹기 쉬운 시간으로 내려 앉는다 
비록 상처를 가졌다 해도 
나무는 자신의 절반을 땅속에  묻고 서 있으므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   
이제 놀라지 않는다

 

밤새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누운 나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폭설 후에 다시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 
상처로 눈을 씻는 허공 위로 새들이 날아 올랐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