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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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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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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야근일기

 
야근일기
 

 

 

햇빛에 등 돌린 채 
어둠을  기다리는 일이 습관이었다 

 

칠흑 위에 캄캄한 그림자가 눕고
어둠 속으로 길이 지워질 때
비로소 출근을 서두르는 여자
야심한 밤에 집을 나서는 여자 

 

그녀가 자처한 생의  주문은  
올빼미로 숲을 지키는 일  
그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밤공기에 데인 것처럼
발가락이 붓고
날개 젖어가는 밤이 있었지만

 

그녀가 들어간  밤은 아직 진행 중

 

모두가 잠든 사이  
숲은 부풀어 
콧노래는 어둠을 쓰다듬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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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막걸리 단상

 
막걸리 단상  
 

 

 

-야가 왜 이리 늦다냐 
채근하시는 아버지 안달에
발 벗은 어머니 담장 너머로
깨금발하는 어스름 저녁

 

밭일 마친 저녁상 위로 뭇국 식어가고
어머니 동구밖 어귀에 눈 달고 계시는데
열살 계집  주전자에 목 축이며 재 넘어 오는 길 
걸음이 비틀거릴 때마다 사발 목 길어진다

 

붉은 담쟁이 넝쿨
담을 넘는 11월 이즈음
주막집은 5리쯤 떨어진 사거리 골목길에 있다
-누구 아부지는 단골잉께 한 사발 더 간다
주모의 싸구려 립스틱이 주전자의 몸을 핥았다

 

계집의 벌건 이마를 바람이 스쳐 지나고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전자의 홀쭉한 뱃살을 눈치 챈 당신이
말없이 막걸리잔을 채운다
지구 반대편에서 
불현듯 아버지를 마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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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
그는 지금 정사 중

 
그는 지금 정사 중
 

 

 

밤새 품었던 붉은 정염
토해내느라 저리 숨가쁘다
단 한번의 그것을 위하여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바꾸는 노련한 계집처럼
서로의 몸을 비벼 달아 오르는 불의 침대 속
푸른 잎사귀마다 격정의 숨결을 넘나든
이글거리는 계곡은 불타고
                                                                           단물을 밀어올린 농익은 입술 위로                                                                             
꾸물거리며 옷을 벗는 사내는
필사의 체위를 바꾸어가며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푸르스름한 혈액에  피빛 멍이 들었다
하혈 쏟은 몸 안에 붉은 상처의 흔적
어깨 등 온몸이 불 덴 자국이다
구석구석 색정 오른  관능의 자태 앞에
눈은 가늘어지고 입 딱 벌어진 희열이라
목덜미 물어 뜯고 싶게 요염한 사랑놀음
수군거리는 소문을 타고
그를 엿 보러 오는 사람들 많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구경꾼들의 긴 행렬

 

가을산은 지금  정사 중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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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로라의 가을

 


로라의 가을

 

 
 

뒤태가 다르다
앞선 마음
적막한 몸 
성한 곳이라곤 저 쪼글쪼글한 눈빛


 

텅빈 버스에 올라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
로라 처럼 부엌을 뛰쳐 나왔지만
혼자라는 생각에
왔던 길 뒤돌아 보며
걷다가 쉬고

 


바람은 내 등뒤를 지나 갔으나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잠시 바라보는 강 언덕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하늘을 받쳐들었다 

 

시월, 바람 몹시 부는 날
잎사귀들이 땅에 얼굴을 묻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끝내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시간의 끝자리에 선 듯
오늘은 내가 보인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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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억새꽃

 
억새꽃
 

 

 

허연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
제 속을 털어내는 일이 흉이 될까봐
저리 눕기도 하고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사람도 억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는 일 팍팍할 때 눕기도 하고
불붙는 외로움이 가슴을 치는 날이면
우리도 소리내어 울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니까 더 한 것이다

 

몸이 안으로 젖어서
내 안에 슬픔 하나 들이는 일이
서로를  다치는 일이어도
빈 들녘에 홀로 서 있는 것보다
마주 보고 흔들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억새라 말하지 못한다


 
이맘쯤, 멀쩡한 사람도
움푹한 상처 하나 앞세우고
네게로 가면
솜뭉치 뽑아 올린 슬픈 몸짓
저 장엄한 행렬 앞에
죄다 눈물 글썽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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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가을 부부

 

가을 부부
 

 

 

 떨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낮게 앉았거나
서 있는 두 사람
말없이 서로를 챙겨주는
익숙함에 길들어져 있다

 

거칠고 뭉턱한 손으로
발등에 벌레를 잡아주기도 하고
가녀린  허리가  바람에
쓰러질 때는 두 팔로 안기도 한다

 

금 간 화분에 물이 새면
흙을 채워서 틈새를 막아주고
종일  서있는 아픈 다리를
오래도록 주물러 주며
이따금씩 가려운 이마를  긁어주기도 한다

 

한 사람곁에
또 한 사람
둘이서 지키는 가을은 따뜻하다

 

숲속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국화곁에 억새
한 평생 잘 살아온 부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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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어머니의 릴레이

마늘 한 접에 구십불이면

키운 공력에 비해 속이 쓰리다가도

 

딸 책 한 권 값이라 생각하면

그만 입맛이 돌고 배가 불러오는 거라

 

마늘쫑 한봉다리에 오불이면

뽑은 수공으로 치면 야박하다 싶다가도

 

아들에게 통화 할 전화카드 한 장 값인데 생각하면 

손톱에 배인 독한 마늘 냄새가

수화기를 든 순간 향긋해지는거라

 

내 어머니가 그렇듯

나도 영락없이  어머니를 닮은 어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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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내려놓는 가을

2.25g의 칼슘, 550g의 인산염, 252g의 칼륨

168g의 나트륨, 28g의 마그네슘, 철, 동

체중 중, 산소 65%, 수소18%, 탄소10%, 질소 3%,

가격으로 따지자면 1 달러에 함량 미달.

 

내 몸의 가치 평가서입니다.

 

알사탕 한 개, 연필 한 자루, 도넛 하나의 값

1 달러 루니로 살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커피 한 잔 살 수 없는

욕심으로 포장된 육신이

왜 이리 천근만근 무거운지요.

 

있는 것 다 내려 놓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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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어떤 투정

 
어떤 투정
 

 

 

 

햇빛 광광 내리쬐는 주말 오후
게임기를 든 11살 아들이
일하는 아빠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아빠 ! 주말 하루 문 닫고 쉬어요"
-놀면 누가 밥 준다드냐?
"왜 우리는 맨날 일만 해야 돼요"?
-헛튼 소리 말아라.
남의 땅에 얹혀 사는 우리는.

 

먼지 묻은  장갑을 털어 뒷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아빠는 늘 그랬다

 

아들의 투정은 아빠에겐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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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9월에 읽는 경전

 
9월에 읽는 경전 
 

 

 

9월은 유독 생이 가볍다
곡식 익어가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업고
앉아 있노라면 성자가 따로 없다
죄다 숙연해진다
그래서 9월의 오후는 고독하다
둥그런 저녁이 남아있는 몽상의 시간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편의점처럼 가까이에 있다
그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무한의 풍경이 이파리 끝에서 열리는
상수리나무 아래서 바라본 생의 단출함
내 기억에 유일하게 남은 건
나무도 사람처럼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빛의 생살 앞에
고요를 보는 눈
말을 듣는 귀
정말이지 9월의 오후는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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