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추천업소
추천업소 선택:
추천업소 그룹 리스트
  • 식품ㆍ음식점ㆍ쇼핑1
  • 부동산ㆍ건축ㆍ생활2
  • 미용ㆍ건강ㆍ의료3
  • 자동차ㆍ수리ㆍ운송4
  • 관광ㆍ하숙ㆍ스포츠5
  • 이민ㆍ유학ㆍ학교6
  • 금융ㆍ보험ㆍ모기지7
  • 컴퓨터ㆍ인터넷ㆍ전화8
  • 오락ㆍ유흥ㆍPC방9
  • 법률ㆍ회계ㆍ번역10
  • 꽃ㆍ결혼ㆍ사진11
  • 예술ㆍ광고ㆍ인쇄12
  • 도매ㆍ무역ㆍ장비13
  • 종교ㆍ언론ㆍ단체14
winsamo
자동차 엔지니어의 세상 사는 이야기

부제: [캐나다 국경도시 윈저에 살며 미국에서 일하는 자동차 엔지니어의 세상 사는 이야기]

현대자동차 제품개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22년째 오로지 한 길을 걷고있는 자동차 엔지니어입니다.

1995년 봄, 큰 뜻을 품고 캐나다로 독립이민, Toronto에 정착하여 약 1년 동안 살다가, 1996년 봄에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도시 Windsor로 옮겨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캐나다장로교회 소속 윈저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직분: 시무장로), 현재 미국 Michigan주 Metro Detroit 지역에 소재한 닛산자동차 북미연구소에서 Senior Project Engineer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캐나다의 일반적인 생활 뿐만 아니라, 특별히 캐나다나 미국의 자동차 분야에 취업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이나 현직에 계신 분들과 함께, 캐나다와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6 전체: 49,308 )
방랑의 시작을 위한 서곡 1
winsamo

사람들마다 제각각 이민 온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Canada에 이민 와서 살면서, 평생을 몸바쳐 일하고자 했던 직장의 상황변화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직장을 떠나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Canada 이민이라는 이벤트로 국면전환을 시도한 사람, 한국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 중 새로운 변화를 찾아서 스스로 모험을 자초한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이민의 동기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겪은 쓰라림과 아픔을 Canada에서 극적으로 국면전환을 한 사람들을 보면, 人間之事 塞翁之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민에서 Timing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요즈음처럼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 수준의 언어 구사력과 화려한 경력을 갖춘 소위 날고 긴다는 사람들조차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때가 있는 반면에, 잠시 몇 년 동안이었지만, Canada에는 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호시절도 있었던 것을 지켜봤다. 호시절에 정착한 사람들도 취업이 쉽지않았다고 항변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비하면 여건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했던 것은 사실이다. 요즈음 이민 와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사람들 중, 외부의 상황을 한탄하며 너무 쉽게, 자연스럽게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성공이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소득이요 보상일 뿐이다. “Canada에 가면 잘 되겠지”라는 그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특별한 준비 없이 이민을 온 사람들 중에도 성공적인 이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이민 와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기죽일 의도로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왕에 일을 저질렀으니,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필자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다. 필자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지만, 한번 쳐다보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한번 쳐다본다고 돈 드는 일도 아닐 터인데, 때때로 겸손이 지나쳐서 지레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필자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민의 삶은 모험이요 전쟁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도 쳐다보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원론적인 차원의, 구름 잡는 이야기로 흐른 것 같아 궤도수정을 하겠다. 이제부터 필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이야기다. 오래 전부터 막연히 移民病을 앓아오던 필자의 병을 더욱 악화시킨 중대한 사건은 1988년 3월에 발생한다. 업무관계로 미국을 아주 잠깐 둘러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본격적인 방랑의 시작을 위한 서곡이 울려 퍼진 셈이다. 1983년 3월 현대자동차 연구소에서 사회생활 시작 후 5년 동안, 직장의 업무관계로 일본을 비교적 자주 드나들며, 일본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언어, 풍습 뿐 아니라 일본의 역사책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일본 출장 때마다 주말을 이용하여 역사 유적지 등을 답사하며 일본역사를 탐구하는 열의를 가졌으니, 도가 약간 지나쳤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인들의 영어발음이 나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인들과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영어발음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극성도 보였다. 이 때문에 필자의 영어발음은 일본인 수준으로 엉망이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아무튼, 여러가지 면에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 업무관계를 떠나서도 많은 일본인들과 터놓고 지내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당시에는 이러한 것들이 필자가 Canada 이민 와서 살아가는데 큰 재산이 될 줄을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대가 일본말, 일본놈들, 왜색문화 약간 아는 것이 Canada 이민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독자제현은 필자가 이야기 보따리를 다 풀어놓기 전까지 너무 성급해 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이쯤에서는 그저 시시콜콜한 인생경험도 써먹기 나름이라는 것 정도로 이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