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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의 진주들-한인상 받은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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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6회 캐나다한인상 시상식이 지난 7일 토론토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근래들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동포들이 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워 좌석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것은 올해 한인상 수상자가 많기 때문(개인 5명, 단체 2곳)이기도 하거니와 이 상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도 그만큼 컸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훌륭하신 많은 동포들이 한인상을 탔고, 다 그만한 자격이 있기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을 터이다. 이민 연륜도 길지 않은 본인은 어쩌다가 한인상위원회 이사로 참여하게 됐는데 벌써 10여년 째 수상자 선정에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점은, 각박한 이민사회에 이처럼 마음이 여유롭고 따사로운 분들이 많이 계시구나 하는 것이다. 


 수상자 중에는 사업적으로 성공함으로써 경제적 여유가 있어 동포사회에 기여한 분도 있거니와, 반면에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마음과 실천으로 헌신적 선행을, 그것도 남모르게 숨어서 사랑의 손길을 뻗친 분도 많다. 올해 수상자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두 분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올해 나란히 73세를 맞은 중년의 두 해방둥이 여성, 김주옥 여사와 나옥녀 여사. 이 분들 사연이 동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0…김주옥 여사는 한인사회에 ‘봉사의 여왕’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웬만한 한인 치고 그녀로부터 설날 떡국 한그릇 대접받아보지 않았다면 그는 한인사회를 잘 모르는 것이다. 매년 새해 첫날 신년하례식 후 나오는 떡국 한 그릇의 기막힌 맛은 모두 김 여사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었다. 남들은 인사 나누느라 바쁠 때 그녀는 주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떡국을 담고 있었다.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꼬박 사나흘을 소비했다. 그런 일을 무려 30여 년간 계속해왔다. 


 김 여사는 음식만 잘한 것이 아니다. 한인사회가, 이웃이 어려울 때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러면서 어떠한 불평이나 군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의 아니게 직함도 많이 맡았다. 그러나 이 분이 직함을 많이 맡은 것은 명예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녀는 누가 무엇을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도맡아 떠안은 것이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한인사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여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나마 서서히 회복이 되던 차에 올해는 부군마져 돌아가시는 불운을 겪었다. 진작에 한인상 수상감이었던 그녀는 올해 후보자로 추천됐고 심사 때 거의 전원일치로 표를 받았다. 


 김 여사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수상소감에서 그녀는 어눌한 발음으로 “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대가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일을 했고 동포들이 좋아하면 그것으로 행복했습니다. 궂은 일이라 생각 않고 뒤에서 조용히 일했을 뿐인데 큰 상을 받아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앞으로 어느 설날에 그녀의 손맛이 밴 떡국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0…블루어 한인타운의 터줏대감인 나옥녀 여사. '착한 사장님', ‘기부천사’로 불리는 그녀는 한인사회에 딱한 사정이 전해질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랑의 메신저다.

1980년 이민 와서부터 38년째 블루어 한곳에서 식당을 개점,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 한인타운에선 그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다 학업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에게는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고, 그래서 한번 그 식당에서 일한 종업원은 끝까지 함께 한다. 


 한인사회의 마당발 김병선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10여년 전, 삶에 지쳐 스스로 생을 마친 어느 동포의 사연을 들은 나 여사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장례비로 전하면서 절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어느 신부님이 위암수술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술비에 보태 쓰라며 거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고생 모르고 살 것처럼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약국집 딸로 부유하게 자랐고 한때 TV 탈렌트로 드라마 주연까지 맡았으나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떠나온 이민살이는 결코 녹록지가 않았다. 그녀가 거쳐온 역경과 인고의 세월은 가슴 속에 숯가마처럼 쌓여 있다. 38년 세월을 함께한 주방장, 반장 아줌마, 두 아들… 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직 집도 없이 식당 2충에 기거하면서 남을 돕고 있다.


 그녀의 수상소감이 청중들의 가슴을 적셨다. “그동안 살아온 내 삶에 좋은 이웃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쓰러졌을 겁니다. /캐나다에 와서부터 한국관을 운영하며 살아왔고 한인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오늘날까지 살아왔으니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얼마를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옥녀 여사. 세기의 천사 배우 오드리 햅번이 롤모델이라는 그녀. 힘들고 어렵게 살면서도 남을 돕고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진정한 천사다.  


 각박한 이민사회에 살아 숨쉬는 진주들. 이런 분들이 있기에 타국살이는 그런대로 살아갈만하다 하겠다. 앞으로 보다 많은 숨은 진주들이 발굴돼 동포사회를 빛내주기를 기대한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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