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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실망-한때 존경했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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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민주주의여…//…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현 77세)의 이 시는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그 시절 이 시를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고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나같은 세대에게 김지하는 영웅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의 시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웬 ‘생명’ 타령을 늘어놓더니 180도 변신(변절)을 시작했다. 한때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사상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반민주세력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날은 그 언제인가?” 1991년 펴낸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에서 김지하는 이런 서문을 남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91년 신공안정국(노태우 정부 시절 시민.대학생의 잇단 분신사망으로 촉발된 공안정국)의 국면에 보수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해 민주진영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이듬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한다. 한 세대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0…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나같은 세대는 아무리 현실을 외면하려 해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운동권은 아니더라도 조국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만큼은 지닌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장래를 접어둔 채 앞장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는 동료 학생들을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응원했다.    

   
 내 또래 운동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심재철이란 사람이다. 그런데 5선 의원에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그의 화려한 변절사는 인간의 근본바탕을 의심케 한다.  


 1980년 5월 15일 전국의 대학생 10만여 명이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전국 대학생 시위 지도부였던 유시민(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역임)은 여기서 물러서지 말고 강력 저항을 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심재철은 이에 반대했다. 학생들은 청와대까지 행진하자고 했으나 심재철은 후퇴를 결정하고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질풍노도 같은 학생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이 ‘서울역 회군'으로 민주화의 절호 기회를 놓치고 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사흘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다.


 당시 심재철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유시민은 같은 학교 대의원회 의장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심재철은 마지막 순간 '회군'을 결정했고 이는 결국 전두환에 대한 항복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수 많은 민주인사들의 삶이 망가질 때 심재철은 오롯이 양지만 쫓으며 승승장구한다. 그의 행보는 도저히 남득하기 어려웠고 나는 실망을 넘어 인간으로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측은함으로 변했다. 본인의 안녕을 위해 김대중 내란음모를 허위로 진술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보장된 시위 및 집회를 금지하는 탈헌법적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대규모 비인가 자료를 불법 열람하고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하자 야당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정부기관의 보안 취약성과 업무추진비를 폭로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떳떳지 못한 자신의 업무추진비 내역이 밝혀지면서 여론전에서 완패했다. 이래서 야당 안에서조차 함량미달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불법을 저지르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이 사람이 한때 민주화를 외치던 그 사람 맞나 싶다.


 심재철과 함께 가장 실망스런 인간이 김문수다. 그 역시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활동가였으나 그 후의 행보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변절할 수 있을까 참 신기할 정도다. 


0…지난 2012년 이동형 작가가 쓴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란 책이 있다. 와주테이란 국회가 있는 여의도 윤중제(輪中堤)의 일본식 발음에서 따온 것인데,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 정치인들의 실체를 박쥐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자로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손학규 등 6명, 그리고 가장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으로 홍준표, 전여옥 등  4명을 꼽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운동권 경력을 가진 자들이 철저히 변절해 보수 꼴통 정치인이 되었거나 이른바 뉴라이트가 된 자들이다. 이들은 애당초 보수 정치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진영 공격에 앞장선다. 


 “한번 돌아선 자는 그 반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법이다. 누구보다도 악독하게 그 자들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더 철저하게 반대편에 서야 입지가 다져지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롯해, 한때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존경받던 김동길과 김지하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 저렇게 될까. 나도 저렇게 노망이 들까… 두렵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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