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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성공했다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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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책 표지 

 

 

 

 화투(고스톱)를 치거나 도박을 할 때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쓴다. 즉, 운(運)이 7할이요 기술은 3할쯤 된다는 말로, 매사엔 행운이 따라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운(luck)이 중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행운이 함께 따르지 않으면 주저앉고 마는 경우를 자주 겪고 본다.    

 
 그런데, 이 운(運)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행운아와 불운아로 나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뱃속에서부터 행운아로 태어난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리된 것으로 착각하며 못사는 사람을 경멸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회풍조인 것이다.        

 
0…한세상 살면서 우리가 바라는 성공을 위해선 노력과 운(運)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H 프랭크 교수의 저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정태영 옮김)는 인생에서 운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수많은 사례와 실험 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는 먼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강조한다.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면 처음부터 희망은 없다. 또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잘 사는 환경에서 지능도 높은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이미 성공의 절반은 다다른 것이다.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난 이건희나, 그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은 이미 성공을 보장받고 태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노력이니 실력 운운하는 자체가 위선이다.


 이런 분석은 특히 성공의 기준이 부(富)의 축적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자 자선기부로 칭송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그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또한 1960년대만 해도 귀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지금같은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특히, 당시 업계 선두주자 IBM이 게이츠에게 컴퓨터 운영체제(MS-DOS) 개발을 맡기는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게이츠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행운이 큰 몫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처럼 수많은 우연과 행운들에 의해 굴러가고 발전해간다. 순전히 노력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라 생각되는 스포츠에도 운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월드컵 축구에서도 그런 경우를 흔히 보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노력과 실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 과잉확신 편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모든 성공이 자신의 실력(노력) 덕에 당연히 그리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때문이라며 경멸한다. 자신의 성공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운은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0…운이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을 자꾸 하면 맥이 빠져 노력을 쏟아붓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경쟁에 무작정 뛰어들어 삶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이는 ‘노력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다’는 뜻이지만 세상엔 분명히 불가능이 존재하고, 그것을 자꾸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다. 어릴적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57년을 살다 타계한 고 장영희 교수는 ‘하면 된다’는 논리가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압감이나 자괴감을 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리한 자기합리화로 오도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층계를 못 올라가 곤혹스러워 하는 장애인에게 아무리 ‘당신은 할 수 있소’라고 외쳐도 벌떡 일어나 올라갈 리 만무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아무리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힘내라", “절망하지 마라"는 말도 그렇다. 그런 말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그런 말조차 언어폭력일 수가 있다. 누군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싶어 빠졌을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럼에도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쉽게 던지는 위로의 말은 자칫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0…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사회가 준 ‘복’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 이를 인정하고 자신도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세상이 더 윤택해진다. 성공한 기업가는 사회가 준 행운이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금내는 걸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위 책 저자의 제안이다.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행운을 준 사회에 보답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오만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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