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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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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할아버지께서 건네주신 엽서들

 

 


“귀지(貴紙)의 번영과 일로매진(一路邁進)을 기원합니다. 매주 금요일 신문을 각 한인식품점에 비치해놓아 여러 동포들이 좋은 글을 읽게 해주시는 귀지에 감사합니다. 무술년 7월 초하루, 캐나다데이에, 독일 채탄부(採炭夫) 000 합장 배(合掌 拜)…”


 구부정한 허리에 곧 쓰러질 듯 불안한 지팡이, 떨리듯 가냘픈 어깨엔 허름한 배낭 하나. 다 헤진 베레모 사이로 삐져나온 흐트러진 백발들… 남루하고 초라한 행색의 노인 한 분이 힘겹게 신문사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거동도 불편하실텐데 어떻게 또 오셨어요?” 잊을만 하면 가끔씩 들르시는 그 분. K 할아버지께서 올해도 캐나다데이 전날에 들르셨다. 바깥 온도가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날씨에 굳이 여기까지 오시다니.   


 1933년생으로 올해 만 85세가 되시는 이 분과의 인연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칼바람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이었고, 그때도 불안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벙거지를 쓰셨는데, 혹한의 날씨에 왜 외출을 하셨을까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의자에 앉으시며 “이렇게 좋은 신문을 만들어주시는 분의 얼굴이나 보려고 왔다.”고 하셨다. 먼저, 어디 사시느냐고 여쭈니 신문사에서 꽤 먼 다운타운 인근이셨다. 가깝지도 않은 곳까지 어떻게 오셨느냐고 하니 버스를 타고 왔다 하신다. 


 그러면서 하얀 작은 봉투를 내미셨다. 그 자리에서 열어보니 작은 엽서에 촘촘히 쓰신 글이 들어 있었다. 붓글씨체로 한자가 많이 섞인 정갈한 편지에는 “동포사회에 유익한 신문을 만들어 주어 너무도 감사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엽서 사이에 빨간 지폐 한 장이 들어있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이게 무언가요?”라고 여쭈니 “약소하지만 직원들과 식사나 한끼 하시라.”고 하셨다. 나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다시 돌려 드리려 했으나 할아버지는 매주 우리 신문을 읽으면서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000씨의 글이 참 좋고, 000씨도 마음이 따스한 거 같애요. 이렇게 좋은 글들을 실어주는 신문을 공짜로 읽으니 미안해서…”라며 극구 돌려받기를 사양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너무도 완강하신데다, 그 추운 날씨에 먼길을 오신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지폐를 돌려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단 받아서 나중에 직원들과 간식이라도 사 먹기로 했다.  


0…그때도 그랬거니와,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나는 엽서를 벽에 붙여두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과연 이런 감사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그 겨울 이후로 할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나타나셨다. 특히 캐나다데이와 연말연시에 오시는데 올해 캐나다데이도 잊지 않으시고 오신 것이다. 


 한편으로, 할아버지는 나름 이날을 생각해두셨다가 특별히 먼 길을 방문하셨을텐데 나는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했는지,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올해 뵌 할아버지는 작년보다 부쩍 쇠약해지신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내년 이맘 때 이곳에 들르지 못하면 그냥 (저 세상으로) 간 줄 아세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엽서를 새삼 다시 들여다 본다. 글씨체가 보통 수준이 아니시다. 한학(漢學)과 서예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이런 글씨가 나올 수가 없다. 엽서에 정성들여 쓰신 문구가 지금도 내 벽에 붙여져 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5년 전부터 꼬박꼬박 모아놓은 것이 대여섯 장이나 된다. 이것들을 버리면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부동산캐나다 신문을 보고 다양한 동포사회 소식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습니다. 매주 이 신문이 기다려집니다. 정성을 다해 알차고 유익한 신문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면 할아버지의 엽서 문구들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제가 어떤 일을 좀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으니 할아버지는“이렇게 노인네 말이라도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데요…”라며 쓸쓸히 웃으시는데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전에도 가족사항을 여쭈었으나 독일에서 광부생활을 하신 것 외에는 별로 말씀을 안하셨다. 누가 돌보아 드리는 사람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 역시 조용히 웃으시기만 한다. 


 노인아파트에 사시면서 그동안 혼자 식사를 해드셨는데, 그나마 요즘은 귀찮아서 주로 ‘매식(買食)’을 하신다 하셨다. 이런 분들이 거리에 나가시면 버스는 제대로 서 줄 것인지, 목적지라도 지나치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0…토론토의 한인거리를 지나치노라면 한인노인들이 커피점 같은 곳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슨 낙(樂)과 희망으로 살아가실까. 이민사회는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지만 노인들을 위한 시설은 별로 없고 동족끼리 함께 어울릴 공간도 태부족이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식을 길러내고 겨우 살만해진 지금, 얼굴엔 주름만 가득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 한국처럼 무료 전철이라도 타면 어디든 떠날텐데 그것도 아니다. 마땅히 시간 보낼 곳이 없으니 맥도날드에 모여 담소하는게 유일한 소일거리인 노인들… 이들에 대한 노후문제를 동포사회 전체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때다.  


 한인노인요양시설을 위해 지난해 350만 달러의 거액을 모금한 동포사회, 이제 한인 노인담당 주장관도 탄생했으니 소중한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한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의 ‘탄로가(歎盧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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