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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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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국회에서 3김씨가 함께 찍은 사진(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풍운아(風雲兒)의 사전적 의미는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 ‘좋은 기회를 타고 활약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등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풍운아의 일생은 사전적 기술(記述)처럼 순탄하게 승승장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세상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이며 좀더 미화시키면 ‘영웅’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한국의 이성계, 정도전, 이순신, 김구, 김옥균, 중국의 모택동과 장개석,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서양의 알렉산더, 나폴레옹, 드골, 갈수록 더 각광받는 체 게바라…      


0…“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남겼다는 말이다. 1997년 5월, 당시 자민련 총재 시절이었다. 


 운정(雲庭) 김종필, 흔히 JP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현대사에 회자될 빼어난 어록(語錄)을 많이 남겼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시대를 이끈 주역이었고, 역사적 순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면서 ‘정치9단’으로 불렸다. 9단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 경지를 뜻한다. 젊어서부터 남다른 재치와 총기로 유명했고, 오랜 정치경험을 통해 한마디로 정곡을 찌를 줄 아는 촌철살인의 능변가(能辯家) 김종필.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자의 반, 타의 반 외유”,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생을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욕심이 남았을 뿐”,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김종필 어록 중)


 ‘몽니' 등 낯선 단어를 사용해 유행시키는가 하면, 순우리말과 고사성어 등 어휘구사력이 종횡무진으로 뛰어난 그는 특히 수준급의 그림(수채화) 실력을 비롯해 문학, 골프, 피아노, 바둑 등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정치인으로 꼽혔다. 그런 그에게 예인(藝人)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JP와 대화를 하던 기자들이 그의 말을 나름대로 유추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말을 운치있게 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JP의 멋진 휘호(揮毫)와 예술에 대한 안목으로 인해 중국언론이나 정가에서 줄곧 호의적인 시선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중화권 외교에도 도움이 되었다. 


0…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킬 당시 JP는 예비역 육군 중령으로 정변에 참여했다. 그 후의 이력은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최다선(9선) 국회의원, 최장수(6년 반) 국무총리, 여당 총재… 한국 현대사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박정희에게 김종필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견제당하기도 한 미묘한 관계이기도 했다.


 풍운의 정치인, 처세술의 달인, 5.16군사쿠데타의 핵심, 유신체제의 부역자, 3당 합당으로 상징되는 권력욕의 화신, DJP 연합으로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주역 등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JP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표현이 바로 ‘영원한 2인자’였다.


 ‘2인자’의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1인자 바로 밑에 있으니 힘이 세다. 특히 권력세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1인자보다 2인자가 오히려 신비감과 카리스마가 가미돼 영향력이 더 커 보일 때가 있다. 1인자는 머지않아 물러갈 처지인 반면, 장차 1인자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큰 2인자는 1인자보다 더 많은 잠재적 추종세력을 거느릴 수가 있다. 


 그러나 ‘영원한 2인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별 힘이 없다는 뜻이며 때로는 인간적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JP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누렸으나 정상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3김’으로 불린 그는 다른 두 김씨와는 달리 끝내 1인자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1인자는 곧 수명이 다할 것을 걱정하지만 2인자는 마음먹기 따라서는 얼마든지 권세를 연장할 수가 있다. 자신을 낮추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 순탄한 삶을 살 수 있다. JP가 다른 두 김씨에 비해 비단길 같은 정치인생을 걸었던 것은 왕(王)보다는 영의정 수준으로 자신을 낮췄기 때문이다. 2인자 위치 이상은 넘보지 않았기에 비교적 평탄한 권세를 누렸다. 


0…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 JP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3김 시대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JP의 예우를 놓고 현 정부는 꽤 고심한 모양이다.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사람이라는 여론이 많지만 관례에 따라 국민훈장을 추서했다. 다만 대통령의 직접 조문은 없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김종필, 그는 죽어서도 이런저런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듯하다. 나도 젊은 시절엔 그를 미워했지만 나이를 먹으니 애증은 어디로 가고 향수만 남는다. 나와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고 친구들은 내가 당연히 JP를 지지하는 줄 알았다. 그와 인터뷰도 몇 번 가졌다. 이제는 그의 노련한 얼굴 모습만 인상에 남아 있다.  


 “미운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있다가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다. 대통령 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거지…”,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 선문답 같은 삶을 살다간 JP, 미운 사람 다 보내고 떠났으니 그는 과연 인생의 승자일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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