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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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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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 ‘그 꽃’(2001)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2000년 이민 와서 그 이듬해 발표된 때였다. 열다섯 자에 불과한 짧은 행간에 어쩌면 그리도 내 마음을 쏙 빼다 놓았는지. 평소 존경하던 시인의 것이라 더 정감이 갔다. 그때 갓 도착한 낯선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 외에는) 많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창 물불 안 가리고 위만 향해 달릴 때는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시간을 갖고 천천히 주변과 내 자신을 돌아보니 보이는 것이 참 많았다. 이래서 사람은 가끔은 내려올 때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때달았다.    

    
0…“고은이 ‘그 꽃’을 낭독하자 “아하!” 하는 감탄사가 들렸다…” 2012년 6월 초, 노르웨이에서 열린 북유럽 최대의 연례 문학축제에서 고은 시인이 ‘그 꽃’을 낭독하자 무척 짧은 시에 연회장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곧 “아하!”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고 한 일간지는 전했다. 당시 행사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세계적 문인들이 대거 초청됐는데 고은 시인이 ‘모기’를 낭독하며 유머러스한 몸짓과 어조로 “긁적긁적” 하는 순간 객석에선 폭소가 터졌다. 반면 그가 ‘휴전선’을 읽어갈 때는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파옹(波翁) 고은(84) 처럼 해외에 널리 알려진 한국 문인도 드물 터이다.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국민시인’이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네차례나 투옥된 민주투사, 시대의 아픔을 민중과 함께 온몸으로 실천한 양심과 지성의 문인. 시집, 소설, 수필, 평론 등 저술만 150권이 넘는다. 


 고은은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했고, 배고픔을 면하려고 18세에 불가(佛家)에 들어가 10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그런 삶에서 그를 지켜 준 것은 시와 술이었다. 그를 만든 건 8할이 시와 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한마디로 기괴(奇怪)한 천재시인이다. 이 ‘국민시인’이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미투’ 한방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를 촉발시킨 여자 시인이란 사람도 인격은 영 아닌가 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절대로 용납을 안 한단다. 그가 쓴 무슨 ‘퍼스널 컴퓨터’ 인가 하는 야릇한 글은 이걸 시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과연 누가 누구를 욕하는지. 그런가 하면, 한때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던 젊은 도백(道伯)이 자신의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보도 후 모든 공직에서 내려올 것임을 밝혔다. 정의롭고 상식있는 정치인으로 인식되던 그가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0…대학교수가, 영화배우가, 예술감독이, 음악가가, 공직자가 대중 앞에서 공인으로서 보여준 그 모습대로 산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이다. 언제나 옳은 말만 하고, 모범적인 행동만 할 것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강의는 번지레하게 잘하는 교수가 자리가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저런 공직자나 배우, 예술가는 법 없이도 살겠다 싶은 사람도 사생활은 전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작품은 심금을 울리는데 막상 실물을 만나보면 그런 망나니가 없다. 인간은 대체로 이중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는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지만, 일단 어느 궤도에 오르면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판검사나 고위관료의 눈에 서민은 무식한 개.돼지로 보이고, 가난했던 문인이 유명해지면 아무 거나 써대도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니 자기가 제일인양 기고만장해지며, 배우는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그것이 마치 소탈한 면모인 냥 착각한다. 술자리에서 여성은 한갖 장난감 같은 희롱 대상일 뿐이고, 딴따라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나같은 감독에게 잘 보여야 한다.   


 이래서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을 그냥 직업인으로만 보면 된다. 교수는 강의실에서만, 배우는 무대에서만, 문인은 작품으로만, 정치인은 연설로만 판단하지 더 이상 인간적인 면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딱 알맞다. 종교도 마찬가지. 목사나 신부님의 감동적인 설교나 강론을 인격체와 연결시키지 말자. 


0…미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더 난리를 치고 있는 ‘미투’ 운동. 이런 식으로 번지다간 한국의 웬만한 남성 거의 전부가 이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여기저기서 지뢰밭처럼 터지는 고발과 폭로전으로 사회 전체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텔레비전을 켰다 하면 온갖 추잡한 장면들이 화면을 메우니 가족들 보기에 민망하기 짝없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한다. 도덕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예외 없다. 뛰어난 운동선수나 가수라 해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다. 이건 분명 위선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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