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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해병대, 호남향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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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緣故)에 유난히 애착심이 강한 한국인의 인맥 중에서도 가장 잘 뭉치기로 유명한 3대 집단이 있으니 바로 고려대 교우회, 해병대 전우회, 호남향우회가 그것이다. 이들의 동류(同類)의식은 아주 끈끈해서 세계 어딜 가나 커넥션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한국의 3대 마피아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 중에 두 집단(학연, 군대)에 속해 있다. 혹자는 충청도 출신인 나의 말씨가 꼭 호남 같다고 3개 집단에 다 속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단체장 정도는 쉽게 꿰찰 수 있겠다고. 결속력 강한 이들 집단에서 강력히 밀어주면 되니까.   


 이들 집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꾸밈없이 소탈하고 단순 소박하면서도 자기 색깔과 주관이 비교적 뚜렷하고 의협심도 강한 편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이들 출신 사람을 보면 대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들 세 조직 가운데서도 특히 고대 교우회는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하다. 언젠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각각 동문회보를 발송한 적이 있는데, 동문회비 납부율이 서울대 동창회는 23%, 연세대 는 19%였다. 그런데 고대 교우회는 납부율이 93%에 달했다. 고대는 동창회 이름도 흔히 쓰는 동문회가 아닌 ‘교우회’라 부른다. 토론토에도 예외없이 고대 교우회가 ‘득세’하고 있다. 고대 교우회는 송년행사도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부부 합해 150불짜리 뱅큇홀에서 송년행사를 하는 동창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0…지난주 고대 송년행사에서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80대 후반의 노 선배님이 벌써 수년째 사재(私財)를 들여 교우 자녀들에게 수천 달러의 장학금을 희사하고 계신다. 선배님은 “저는 오직 후배와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바랄 뿐”이라며 겸손해 하셨다. 이런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으면 이렇게 하실까. 선배님의 뒤를 이어 앞으로는 후배 교우가 이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비즈니스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자 후배인데, 아무리 사업이 잘 된다 해도 역시 교우회 사랑이 깊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은 특히 병석에 계신 80객의 여자 선배님이 휠체어에 의지하신 채 행사에 참석하셨다. 선배님께서는 “후배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화목하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먼저 자리를 뜨셨다.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의 부부교우이신데, 아내의 휠체어를 미시는 남자 선배님은 수년 전의 당당했던 풍채가 어디 가고 허약하신 모습이 뚜렷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무튼, 이런 끈끈한 모습은 고대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요즘 세상에 이처럼 순수한 단체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며, 이런 단체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에 새삼 긍지와 자부심이 솟아 오른다.


0…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행사에서는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참석자 수도 전보다 많이 줄었고 분위기도 크게 흥겹지가 않았다. 특히 연세 드신 선배님들과 젊은 교우들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내가 어느새 중간 학번 이상의 시니어 그룹에 들어가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제까지는 송년파티 전에 이미 차기회장을 선임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엔 차기회장이 정해지지 않아 현장에서 인물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에 한 선배님은 혀를 차며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大) 고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런 현상은 이민사회 어딜 가나 흔히 보는 모습들이다. 특히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한 집단에서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동안 고대, 해병대, 향우회 등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며 철통같은 단결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젠 많이 달라졌다. 정서도 전 같이 끈끈하지가 않다. 그것은 대(代)를 이을 젊은이들 참가가 저조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젊은층 중에는 기성세대들과 어울리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번 모임에 참석해보고선 다음부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한인단체 모임이 노년층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층은 한창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나의 경우 2년 전 선배님들의 강권으로 어쩔수 없이 맡았던 향우회장 자리를 지금쯤은 누군가가 이어서 맡아줘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전에 회장을 했던 분들 가운데 다시 물색을 해야 할 판이다. 대개 은퇴한 어르신들이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다시 전면에 나서면 젊은층은 또 외면을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다른 한인단체 중에도 순수한 봉사나 친목단체의 경우 회장 자리를 서로 고사하는 바람에 리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중에는 대(代)가 끊길 상황에 이른 단체도 있다. 캐나다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파독동우회 같은 단체는 회원들의 고령화로 회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더 이상 젊은피 수혈도 안돼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서로 밀고 당겨주며 발전해온 한인사회가 갈수록 시드는 느낌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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