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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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만 있다면…
ywlee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 중-

 

 

 

 

 지난 주일 미사 때 보좌신부님께서 들려주신 위의 시는 새삼 나의 요즘 삶을 뒤돌아 보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나이토록 크게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족한 것도 없는데 언제나 부족한 듯 허기지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나의 일상을 준엄하게 꾸짖는 듯했다. 


0…위의 시를 남기신 언더우드 목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1884년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돼 이듬해부터 30여년 이상을 한국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선교 뿐 아니라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지내는 등 한국의 교육,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 기여했다. 원두우(元杜尤) 라는 한국 이름까지 가지셨던 그 분은 일제에 의해 반일인사로 낙인찍힐 정도로 한국민의 편에 섰다가 건강 악화로 미국으로 돌아간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옮겨져 양화진 외인묘지에 안장됐고, 그 후에도 언더우드가문은 조선에 남아 3대에 걸쳐 의료선교와 학교 설립 등으로 선교와 교육 발전에 헌신했다.


 언더우드 목사는 당시 암울하기만 한 조선의 척박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0…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정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도 해보고, 예쁘고 이지적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그렇게 바라던 이민도 오고, 아이들이 영육간에 건강히 자라주고, 자그나마 집 한 칸도 있고… 그런데도 늘 무언가 모자란 듯 끝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나.   


 남과 비교되지 않는 삶을 찾아 이민까지 왔으면서도 남과 같지 못한, 남보다 못한 나의 생활에 불만과 짜증을 토로하는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병만 나으면, 이 고비만 넘기면 , 이번 딜(deal)만 잘 성사되면, 주위에 베풀면서 살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그런 소망이 이루어지고 나면 철석같은 다짐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또 다시 다른 먹잇감을 잡으려 속을 끓이며 사는 나.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설 수 없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가. 날마다 이런 기적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그런데 무엇이 모자라 자꾸만 허기져 하는지.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 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사회시설 ‘꽃동네’는 이렇게 태동했다. 


 세월은 시위를 벗어난 화살같이 빠르기만 한데, 연말이 되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현재 생활에 얼마나 행복해하며 사는가. 바로 곁에 있는 그것을 외면한 채 왜 애써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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