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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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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예술의 전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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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자 이유식 시인(왼쪽)과 김영식 작곡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리를 같이 했다. (2012. 10. 13)

 

 

 


사랑

(작사 이유식, 작곡 김영식, 임청화 백석대학교 교수의

데뷔 30주년 기념 독창회. 2015년 5월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IBK 체임버 홀)

 

 


너를 알았기에 먼 하늘을 보았어
하늘은 맑고 푸르다가
뭉게구름과 먹구름을 안고
흘러가더니 가끔은 폭풍우도 안고 와
내 심장을 자맥질 했었지

 

땅 속 깊은 곳에는 늪이 있었어
수렁에 빠진 가슴 속
물안개가 피어나더니
늪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송이들
그 꽃송이가 병이 들었었지

 

칼바람이 불어 주던 날
나는 바람결에 너를 내 가슴에
깊이 묻어 두고자 눈물을 흘렸었지
그리고 하늘을 보았지만
하늘은 언제나 멀고 먼 곳에 있었어

 

 

 

사랑, 그 사랑이란 두 글자의 추상명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할까. 사랑 없이 못 살아가는 우리 인생살이를 생각하며 써본 사랑이란 시가 너무 좋다면서 독일거주 유명 한인 작곡가가 나의 시를 가곡으로 작곡하였다. 조수미 다음으로 명성을 날린다는 백석대학교 임청하 교수 뮤직 데뷰 30주년 행사에 나의 시가 대한민국 예술의 전당에서 가곡으로 작곡되어 불려지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1천여 관객이 꽉 메운 예술의 전당에서 KBS 인기 아나운서 손범수님이 사랑의 시 작사자 이유식이 멀리 캐나다 캘거리에서 찾았다고 소개를 했다. 그가 일어서라는 명령에 나는 어쩔 줄 모르는 홍당무가 된 얼굴로 일어섰고 당황함과 놀라움 속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서 방청석에 머리 숙여 예의를 표했었다. 어쨌던 임청하 교수의 초청을 받아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 내가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2015년 5월 30일 예술의 전당의 IBK의 체임버 홀에는 관객 1천 여명이 꽉 메운 익을대로 익은 봄의 꽃 그늘 밑에서 나의 시가 명성을 날리는 임청하 교수의 청아한 목소리로 홀 내를 울려 퍼질 때 이민생활 40여 년의 결실이 여기에 있다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한편으로는 그 사랑이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정의 반대를 물리치고 24살에 2살의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하고 그 후 94세로 생을 마감을 할 때까지 여섯 번의 이혼과 결혼을 반복했던 버트란트 럿셀 경의 생애도 나의 뇌를 스친다.


뿐만 아니라 하이델베이그가 좋아 두 번을 찾은 18세의 마리안네 본 밀레미어가 68세의 연상의 시인 괴테와 사랑을 속삭이며 네카르 강가를 걸었다는 이야기. 마리안네는 그의 양친이 그토록 반대를 하는 괴테와의 사랑을 극복하면서 양친에게 한말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도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 마리안네는 영원히 인류 역사에 남는다”며 부모를 설득한 사랑. 나는 그 사랑을 찾아 하이델베이그의 괴테의 거리를 무작정 걸어 본 기억이 있다. 


이 뿐이랴 세계적인 유명 시인이며 바람둥이로 인기 절정에 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프랑스 사교계 미녀의 화신 평론가 ‘루 살로메’에게 반해서 내가 루 살로메를 정복하기 전에는 어느 여인도 탐하지 않는다는 결기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루 살로메를 정복한 후 다른 수 많은 여성들과의 편력을 이룬 바람둥이 시인으로 명성을 날렸다는 일화도 있다. 이 뿐이랴 세계적 염세주의 철학의 선구자 독일의 ‘쇼팬 하우워’는 여자를 증오하고 여자가 있기에 사랑이란 것을 해야 하는 남자들의 입장이 초라하다면서 철이든 후에는 자기 어머니도 만나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이 무슨 괴변인가. 그가 죽은 후 그의 서재와 책장서랍 곳곳에서는 성병을 치유코자 하는 각종 약이 나왔다 하니 참으로 사랑이란 무엇이고, 남과 여의 성이란 무엇일까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조국의 경우 ‘이광수’를 사랑했다는 수덕사의 여승 ‘김일엽’ 스님이 있는가 하면 현해탄에서 돈도 사랑도 명예도 싫다며 몸을 던진 ‘윤심덕’도 있지 않는가. 이뿐이랴 작가이자 기생이었던 김영환, 그는 ‘백석’ 시인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안고 사원 ‘길상사’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고 떠났다.


이 길상사라는 사원의 이름을 지어준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다가 떠난 법정스님은 어떤 사랑을 하였을까 하는 것이 나의 관심이다. 법정 스님도 누구와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여인과의 사랑이 아니라면 형제 자매와의 사랑, 벗들과 사랑 그 어떤 사랑인들 분명한 사랑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정말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듯 피 토하는 사랑의 절규도 세월 따라 묻히어 가고 이제 이방의 변두리의 사나이가 사랑타령을 하며 황혼 빛에 물들어가는 주름살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나 언젠가 엉터리로 읽고 기억하는 이 분들의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긴 밤을 지새워 보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웃음이 나온다. 아마 늙어가는 뒷방노인의 절규가 아니런가. 웃자. 하지만 나대로의 지혜로운 사랑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자연을 벗하며 겸손과 희생과 배려를 벗하며 즐거워도 넘쳐나는 행복감이 있다 해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간직한 생존을 영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이에 더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멋진 인간관계로 맺어진 벗들이 있어 서로 인생사를 논하고 진심으로 고독을 소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여기에는 남과 녀의 불문의 벗이 있다면? 아 숨이 막힌다. 75세에 은퇴는 죽음이란 명 칼럼을 남기고 떠난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윌리엄 스파스’를 생각한다. 은퇴는 죽음이란 말이 두려워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직도 호구지책에 연연하며 일거리를 찾아 이방의 뒤안길을 헤맨다. 참 한심하다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나 같은 생을 영위코자 노력함도 진실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독자님들 우리 다같이 웃으면서 한 세상 살아가자고 제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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