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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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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 조윤하 시인의 <늦은 집을 지으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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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목연 시인과의 인연 근 2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상재한 첫 시집 <늦은 집을 지으며>를 접하고 반갑고 기쁜 소식의 축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나 같이 다작을 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한 사람으로서는 독일 최고의 시인 마리아 라이나 릴케의 영향이라 할까? 그의 시집 <소유하지 않는 사랑>은 시인의 다작 속에서 좋은 명시 한편을 출산한다는 지론이었다. 


다작을 해왔던 나는 목연 시인께 한 권의 문집이라도 출간하여 문단에 소개하고 우리가 살아온 생존의 발자취를 후학에게 남기는 것이 뜻이 있지 않느냐고 몇 번의 의견을 피력한 바도 있다. <오늘 2018년 겨울 아침에 시의 빛을 가꾸시는 이유식 시인님>께 라는 마음의 사인을 담은 첫 문집을 받았다. 정말 진심으로 축하에 축하를 드린다. 


 현재의 한국문단은 언제부터인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란 쌍두마차의 틀을 형성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즉 한국문인협회는 100여 년 전통을 가진 순수문학을 주로 하는 작가들의 모임으로 현재 등단작가 1만2천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한국작가회의라는 단체는 참여문학을 좋아하는 작가들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에 목연 시인은 한국문단에서 원로 중에서도 원로임에 한국 문단과 캐나다 후학들에게도 목연 시인의 첫 문집의 출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 캘거리에서 둥지를 틀고 나 같은 후학과 교류를 하고 있음은 나의 자랑이고 캘거리 동포사회의 자랑이라는 생각이다.


1959년도에 자유문학으로 등단을 한 목연 시인의 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상상함은 당연하다. 그 시절은 순수문학이 문단의 선비정신을 고양하는 틀에서 등단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을 따듯이 어려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등단이 얼마나 산고를 치르고 어려움에서 이루어지는가는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보다 어려웠다는 것을 선배 문사님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해마다 고등고시 합격자 수보다 문단 등단하는 선비들의 숫자가 더 적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근래와 같이 한두 번 발간되다가 없어지는 문예지에 시 한편 수필 한편을 발표했다고 시인이네 수필가네 하는 소리는 있을 수도 없었고 있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기라성 같은 선배 문인들이 한국문단에 우뚝 서있기에 그 족보를 잘못 내어 밀었다가는 문단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몇 권의 시집을 상재했음에도 내가 시인이란 말을 할 때는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목연 시인이야말로 한국문단의 원로 중에 원로 여류 시인임에 토를 달 사람은 한 분도 없으리라. 시평에서 김창한 박사의 서평은 목연 시인의 시는 아름다운 진실과 정의로운 올바른 사회의 나아갈 길에 주춧돌을 쌓은 주옥같은 시라는 말에 나 역시 동참하며 박수를 보낸다.


나대로의 생각은 문학은 인생이고 그 인생 길에 시, 소설, 수필 등 문학 장르가 있고, 그 중 특히 시는 문학 중에서도 문학의 깊이를 은유하고 있기에 각 장르 중에서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즉 한 사람의 생존에서 스스로의 기쁨과 눈물을 체험하며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 참다운 생존의 값어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부언을 해본다.


 시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철학이 아닌 철학의 개념을 내포하며 인간의 생존과 사회의 정의 및 정치 경제 문화에 깊숙한 성찰의 메시지를 은유로 인간이 나갈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에 문학 장르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첨언한다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간절함은 작가의 입장에서 기준에 따라 다른 해답이 도출됨을 알 수 있기에 더욱 성숙되고 형이상학적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말은 문학은 곧 인생이 살아가는 과정의 노래로 집약해봄은 나의 짧은 견해일까.


문단 후학인 내가 감히 목연 시인의 시평을 함은 큰 결례이기에 여기서 내가 즐겨 읽은 목연 시인의 시 한편을 우리 다 같이 음미하자는 제의를 해본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언제 다시 2집 문집이 나올까 기대한다. 또한 나대로의 생각은 문단의 대선배 원로 시인을 제대로 잘 모시지 못한 후학의 무지를 양찰해 달라는 말씀을 전한다.

 

 

찔레꽃 /조윤하


내겐/ 아직 다 잊지 못한 향기로 살아있는/ 그대 있네/ 자작 나무 숲길 너머/ 푸른 바람 일면/ 얕은 산 타고 넘어오던// 슬픈 새의 일정한 목울음을/ 일찍 느껴야 했던/ 어린 날의 봄/ 너무 이른 작별의 손을 흔들어 준/ 찔레의 꽃잎처럼// 하얀 옥양목 적삼 밑에 묻어둔/ 내 손을 조용히 밀어 낸/ 그대의 찬 손/ 창백한 땀 냄새가/ 꽃 향기에 묻혀버린 슬픔이 되어// 한평생 가시되어/ 나를 찔러온 꽃//  

 


어쩐일인가 이 작품을 음미하면서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를 상상함일까. 우리네 이방인의 생존의 인연의 고리 사람냄새가 찔레꽃으로 승화됨일까? 인생의 선배, 이민의 선배, 문단의 선배도 없는 21세기의 인생사가 서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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