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lee

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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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를 좋아하던 나의 연상의 여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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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가을비가 바람을 휘몰아치고 있는 저녁 석양노을은 찾아왔었지, 덕수궁에서 불어주는 하늬바람을 따라 휘날리는 노오란 은행 나뭇잎이 북창동 소공동 명동으로 불어와 내 어깨를 두들겼었어, 퇴근 시간이 되었건만 오늘따라 소주 한잔 하자는 친구가 없어서 쓸쓸하게 혼자서 소공동 뒷길을 걸었었지.

 

 

 


 행여 이곳에는 누군가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아 ‘일품향’이란 중국집에 들어갔었어,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있는 탓일까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던 이 중국집도 오늘은 텅 비어있었지, 한쪽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언제나 즐겨마시던 오향장육 중국집 특유의 술안주와 ‘빼갈’ 한도꾸리를 시켰었어, 독한 고량주지만 이날은 한도꾸리로 양이 차지 않아서 한도꾸리를 더 마시니 온통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것 같았었지.


 총각이란 고유명사가 좋기는 좋다는 생각을 하며 언제까지 이 총각이란 명예를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얼큰한 몸을 이끌고 일품향을 나와서 언제나 찾던 바로 옆 건물의 ‘가화다방’으로 들어갔었지, 이상하게 조용한 다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야상곡’이 은은하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어, 쓸쓸한 마음은 가중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상대할 사람이 없어 나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지,


 그런데 외로움은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일까 한 여인이 우산을 털고 다방으로 들어왔었어, 첫 인상에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 어이 혼자 왔을까를 생각하며 나의 눈은 이 여인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나 자신이 알았었지, 


 용기를 낸 나는 이 여인의 옆 의자에 가서 앉으며 주접을 떨었지, “안녕하십니까, 혼자입니까,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옆 좌석에 앉아도 되겠습니까”하며 온갖 예의를 갖추어 영국신사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을 하며 이 여인의 반응을 보았지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더니 혼자이니 옆에 앉아도 좋다는 허락이었어, 이로서 나의 연상의 여인과의 교제는 시작이 되었것다.


 (독자님들 총각시절을 그려 보시고, 젊은 친구들은 60, 70년대의 낭만을 음미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픽션을 쓰고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나의 연상의 여인과 나와의 만남은 잦아졌어, 일주일에 한번꼴로 가화다방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멋쟁이들과 미인들만 나온다는 소공동의 티파니 다방에서 명동의 청자 다방으로 고전 음악만 들려주는 설파와 훈목 다방으로 때로는 사보이 호텔 지하 구디구디에서 양주잔을 들기도 하고 때로는 코스모스 백화점 앞 샛길에 은성이라는 동동주 집과 명동 성당 앞의 동동주 막걸리 집에서 마른 생김과 오뎅국물에 우그러진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토종 막걸리를 즐겨 마셨지.


 은성이라는 동동주 집은 지금도 그 유명한 탤런트 최#암이란 분의 어머님이 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가끔 이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지, 어머니 아드님이 훌륭한 탤런트로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짱인데 왜 이런 막걸리 집을 경영하느냐고, 그러면 이 어머님 왈, 아들은 아들의 삶이 있고 나는 나대로의 삶의 가치가 있지 않느냐며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지,


 북쪽에서 월남을 한 동포들의 생활력과 남쪽 사람들의 생활관 차이가 있음을 지금에야 느끼고 있는데, 이는 북쪽에서 남으로 온 사암들이 잘살고 성공한 것을 엿볼 수 있었어.


 그런데 세월은 흘러 다시 일년이 지나고 겨울눈이 펄펄 휘날리는 날 우리는 가화 다방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었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결혼은 하셨습니까.” 묵묵부담, 다시 물었지 “왜 가화다방을 좋아하느냐”, 그때 들려오는 대답 “19세기의 독일이 나은 미인 작가 ‘루 살로메’를 아느냐?”고, 나 천장을 쳐다보면서 멘붕이 되었는데 루 살로메에 관한 일장연설이 시작되었어, 


 독일 출신 작가라 하지만 그녀는 불란서 출신이 맞는다는 말과 17살에 25세 연상인 ‘길로트’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목사와 소련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2년여 간 교제를 했었는데 길로트 목사는 가정을 가진 유부남으로 살로메에게 청혼을 함으로서 이들의 인연은 끝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 가화다방에 자주 나오는 이유는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이 즐겨찾는 곳이기에 자기도 이 다방을 찾는다는 대답이었어,


 나는 이 연상의 여인의 나이를 알고 싶었지만 물을 수는 없어 애를 태웠었는데 길로트 목사가 가정을 가졌는데 어이 25세 연하의 여인에게 청혼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이었어, 한편으로는 이 여인의 나이를 알고자 유도를 했었지, 행여 젊은 남성이 청혼을 한다면 어떠냐고 물었지, 


 그런데 대답은 자기의 나이는 나보다 십수년이 위인 것 같다며 그저 씁쓸한 미소를 남기며 먹을 수 없는 감나무에 달린 감은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남겼어, 이때부터 내 나이보다 십수년 연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5, 6년만 위라면 나도 총각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하는 상념을 씹으며 혼자서 웃었지,


 이어 살로메는 소련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출생했으며 훌륭한 작가이고 평론가였으나 그녀 자신이 저술한 책은 없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개척자 중 한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강조했었어, 또한 뚜렷한 학문적 업적은 없어도 당대의 독일 제일의 철학자로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나 ‘말테의 수기’, ‘비가’ 등을 저술한 천재시인 마리아 라이나 릴케 같은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한 장본인으로 더욱 유명하다는 것을 강조했지,


 이후 덕수궁 돌담길을 아무말없이 무작정 한 바뀌를 걸었지, “내 마음에는 무작정 당신이 좋아졌습니다”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고 걸어서 광화문 쪽을 향하다가 초원 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쓸쓸히 헤어졌어, 나에게 루 살로메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으나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고차원의 작가세계를 알 길이 없어 그냥 잊어버리고 한 달여 지나갔지,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살로메에 대하여 좀더 진지하게 물어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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