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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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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방문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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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지나가는 길이라 잠간 귀를 기울였더니 관광안내원 중 한 여성이 우리 곁에 나타나 왜 남의 관광안내를 듣느냐고 짜증을 낸다. 대꾸할 가치가 없어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생각했다. 참 우리민족은 얄궂은 민족이라고, 만리타향 타국에서 같은 동족을 만나면 반가웠으리라는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점에 환멸을 느끼며 돌아섰다.


 어디에서나 조그마한 감투를 과시하려는 것은 캐나다 동포사회에나 어디에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참 초라하고 불쌍한 민족의 한사람이라는 상념을 씹어 보았다.


 이 거리에는 옛날 조국의 방산시장에 전시했던 헌책방이 즐비하며 없는 것이 없는 거리와 같다. 상가에는 세계적 유명 브랜드의 점포에서부터 러시아의 토산품 등 무엇이던 살수있는 곳이다. 곳곳에서 바이올린도 켜고, 노래도 하고, 그러면 지나는 행인들이 관람도 하고, 찬조금을 주기도 한다. 


 스타박스 커피점에서 커피도 마셨다. 북미에서 마시는 커피보다 더 맛이 있는 것은 어쩐 일일까. 아마 커피 값이 북미보다 조금 비싼 탓이리라. 이 유명 거리의 길이는 2킬로미터 운동하기에 딱 좋은 거리였다.


 밤에는 이 거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메트로풀 호텔을 찾아가 식당에서 웨이트레스 야니의 설명을 들으며 맛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일찍 숙박집으로 들어와서 오늘 일정을 마쳤다. 

 

 러시아 여행 15일째

 

(사진) 10월 9일 오늘은 우리의 한글날,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신 엄 넬리 박사님과 이곳 학생들이 준비한 52개국의 음식을 시식했다. 엄 교장 선생님의 민족 사랑과 남을 배려하시는 깊은 정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각국에서 이 학교로 유학을 온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의 고유 음식문화를 소개하게 하고 우리에게 시식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민박집에서 나와 조국의 명동거리 아바트 길을 산책했다. 맥도날드에 들어가 커피 한잔으로 여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3일간의 즐거웠던 순간들을 상상하며 러시아 여행을 매일매일 작성해서 글로 남기리라는 생각을 한다. 선상에서 만나 즐거움을 같이 나누었던 짧은 기간의 친구들 무사히 집으로 안착하였기를 기원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제7회 민초해외문학상 수상자 엄 넬리 교장 선생님을 상견례 하러 가는 날이다. 내가 감히 엄 박사의 수상 내용을 평할 수 없기에 여기 심사평을 쓰신 심사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예술원 회원이신 유안진 시인님의 심사평을 옮겨본다.


 
 제7회 민초해외문학상 심사평

 


*러시아의 심장부에 한글교육을 꽃 피우다"

 
 깊은 산 속 작은 옹달샘도 대양을 꿈꾸며 흐른다는 말을 이번 민초문학상 심사를 하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민초문학상과 금년도 수상자 엄 넬리 교장이 바로 너무도 짝이 맞는 옹달샘이고 이 두 분의 꿈이 바로 대양을 향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전원의 이런 생각이 금년도 민초문학상을 엄 넬리 니콜라예브나 교장의 자서전 <러시아 심장부에 활짝 핀 무궁화>로 결정하게 했을 것이다.


 엄 넬리 교장은 카레이스키 4세대로서,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글로벌 코리언이다. 그는 한국문학의 절대기초이자 기본인 한글의 글쓰기와 한글 교육의 성공사를 일궈낸 자서전을 썼다. 현역의 한글문인이자 한글교육자 한민족교육자의 웅대한 목적과 기적적 성과를 이룩하기까지의 피맺힌 실천인 그의 실화에서, 우리는 무수한 의미와 의의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문학성과 실화성을 가늠하게 된다. 따라서 몽골 인문대학교의 강외산 교수의 훌륭한 수필작품이 다음 기회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유보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따라서 심사평은 저절로 엄 넬리 교장의 자서전에 담긴 동토에서 생존해낸 디아스포라들의 실화성과 엄 교장 개인의 오십 넘은 나이의 한글배움과 그의 한글글쓰기의 문학성과 후세 한글보급교육의 공로 등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한글>은 한글문학상인 민초문학상의 절대조건이라는 대전제에서 이 자서전은 한글로 된 글모음과 교육적 실화성으로 그 당위성이 부각되었다. 더구나 엄 넬리 교장이 오십 넘은 나이에 몸소 한글을 배워 한글글쓰기로 모은 글모음이 자서전에 상당부분으로 포함되었기로, 그 글모음에서 문학성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잘 쓴 작품이라도 한글로 쓰이지 않았으면 민초문학상의 심사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은 러시아 현실에서 소수중의 소수민족 언어인 한글의 보급을 위한 제도적 동포학교건립과 성공적인 한글교육의 업적 평가는, 이미 다면적으로 현지와 한국에서 높이 평가되어왔다. 해외동포 2, 3, 4세대에게 한민족의 혼이고 정신인 한글을 제도적으로 교육하여 온 실화를 자술한 이 자서전은, 그의 글모음의 문학성보다 더 뛰어난 실화적 공로로 국내에는 물론 러시아 현지에서도 무수한 상과 훈장을 받았다. 엄 넬리 교장이 세운 한민족학교와 교육프로그램은 물론, 기숙사 등 학교생활에서의 한국어사용과 한글과목 교육은 더욱 미래의 한글보급의 양양한 전망을 약속해 주었다. 가히 러시아동포사회에서 한글로 된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와 노벨문학상까지 기대될 수가 있다는 희망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의 수상은 엄 넬리 교장의 글모음에서의 문학성에 주목하였다. 이분의 글모음은 늦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한글을 배운 피눈물의 과정이자, 그 과정 속에서 통감했던 해외동포의 어린 세대의 한글교육의 필요성과 몸부림자체였다. 구 소련연방에서 극소수 소수민족으로 생존해낸 그 자체만도 기적이었다. 우리는 그 기적에 대해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갈채를 보내야 하는데, 혹한의 동토 황무지에 너무 밤중 갑자기 짐짝처럼 실려져 짐짝처럼 내팽개쳐진 우리 동포들은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후세대를 낳았고, 그렇게 태어난 엄 넬리 니콜라예브나는 우리민족의 딸이었다. 


 일제의 강압과 식민지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독립운동에 생사를 걸며 북으로 북으로 떠돌았던 독립운동가의 후예였을 것이다. 한글의 모음과 자음으로 첫울음을 터뜨린 엄 넬리는 우리자신을 그대로 닮은 우리 얼굴모습이었다. 그녀가 알지도 알 필요도 없는 이념싸움인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기적과, 더욱 기적일 수밖에 없는 학대받던 그 심장에다 한민족 학교를 세워 한글교육을 외치며 보급해온 것은, 기역 니은이라는 한글자음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동포4세대로서, 이 엄청난 대업을 그것도 맨주먹의 여성으로서 혼자서 다 해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디아스포라문학 연구에서 주요한 자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십을 넘은 늦은 나이에 한글이라는 문자와 언어를 배웠지만 한글로 글을 써 모았다. 한글은 어느 연령의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쉽고 재미있게 배워 무슨 생각이든지 글로서 쓸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그는 자기가 배웠고, 같은 동포의 후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절체절명에 생애를 바쳤다. 이 내린 사명의 실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가르치기 쉽게 한글교과서를 손수 만들어 사용했다. 두발로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온몸으로 설득하여 어린 세대를 모았고, 국내문제에 골몰하여 동포들은 돌아볼 겨를도 없는 한국정부를 설득했다.


 6.25 전쟁 때의 적성국가 구 소련을 이은 러시아의 카레이스키 후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며, 한글 교육 기적을 이루어서, 현지의 타민족들에게 한국인과 한글의 우수성을 일상으로 증명해주는 최선 최대 최고의 표본이 되어온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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