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kim3000
김영수

부동산캐나다 칼럼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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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만난 젊은 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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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가 돌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술렁거림을 지켜보고 있다. 젖은 옷들이 서로 붙어 엉긴 채 소용돌이친다.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날 듯 두 팔로 바지를 부둥켜 안고 뿌연 구정물 속에서 안간 힘을 쓰는 것이 보인다. 빙빙 도는 공간에서 함께 휘둘리던 바지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풍선처럼 부풀리더니 잔뜩 들러붙어 있던 셔츠의 가슴팍을 한쪽 바짓부리로 한 방 걷어찬다. 


 “저런!” 나는 깜짝 놀라 빨래들을 의인화시키며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생각지 못한 급습에 목 부분이 뒤로 꺾어질 듯 젖혀졌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셔츠의 모습이 느린 영상으로 전개된다. 젖어서 더 길어진 티셔츠의 팔이 매달릴 곳이라곤 바지자락밖에 없나 보다. 권투경기에서 몸이 휠 만큼 충격적인 강타를 당하고 나서 상대방 선수의 몸을 부둥켜 안는 것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장면을 닮았다. 폭력이나 피를 부르는 행동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졸였던 가슴을 풀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아예 세탁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다란 괴물의 눈알 같아 보이는 세탁기의 둥근 유리창 바깥에서 지켜보던 나는 마치 누군가의 팔이 내 다리를 꽉 끌어안고 있는 느낌에 불편해졌다. 내게까지 전염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끈적끈적함을 털어내려고 진저리를 치면서, 세탁기 속의 바지를 흉내 내어 한쪽 다리를 오므렸다 힘차게 뻗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 몸을 빼내지 못했다. 자유롭기에는, 내가 세탁기 세상에 너무 깊숙이 관여했나 보다.


‘세탁’에서 ‘헹굼’으로 바뀌면서 빨래들 사이에도 조금 여유가 생긴다. 탁한 구정물에서 맑은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악스럽게 무엇엔가 매달려야 했던 셔츠의 팔들이 넉넉한 물 흐름을 따라 제풀에 풀어져 흐늘흐늘 자유롭게 유영한다. 나의 호흡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지 한결 느리고 깊어진다. 소용돌이 후의 기진맥진함으로 빨래들은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있다.  

 
‘헹굼’에서 ‘탈수’로 이어진다. 헹굼보다 몇 배로 가속이 붙은 세탁기는 세상을 뒤집을 기세로 몸통을 요란스럽게 흔든다. 원심력에 몸을 내맡기고 현기증으로 의식을 놓은 듯한 건, 빨래나 지켜보는 나나 마찬가지다. 세탁기라는 세계의 중앙을 차지하고 유유자적하던 몸들이 탈수를 거치자 숨을 쉴 틈조차 없이 서로 밀착되어 가장자리로 밀려가 납작 엎드려있다. 비록 몸피를 줄여 왜소해 보이기는 해도 홀가분해진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빤 것 같아 상쾌해진 기분에 얼른 빨래들을 세탁기에서 꺼냈다. 요즈음은 해가 좋아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지 않고 빨래대에 널어서 말린다. 하나씩 집어서 털어 너는 과정에서 나는 좋든 싫든 빨래들과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서로 뒤엉켜 들러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며 때로는 묘한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남자 팬티가 보인다. 남편 것이다. 처음 세탁기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큰 소리치며 한껏 부풀어 있던 것이 탈수를 마치고 나오자 어린아이의 것처럼 쪼그라든 채 내 손바닥도 넓다는 듯 오롯이 앉아있다. 나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도 그 왜소함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무력함마저 읽은 것 같아 가슴이 짠해온다. 어쩌면 그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세탁’에서 ‘헹굼’을 지나 ‘탈수’를 거치는 삶과의 투쟁에서 그의 몸 속에 지녔던 기(氣)를 죄다 빼앗겨 저리 조그맣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러 팽팽하게 부풀리고 싶었을 자존감이, 세월이 들이댄 바늘 끝에 흐들흐들 무너져 작아진 것을 보고 나는 어쩌자고 순간적으로라도 간지러운 희열을 느꼈던가. 지칠 줄 모르고 언제까지라도 뿜어낼 것 같던 마력이 쇠진해버린 텅 빈 공허를 목격한 느낌, 아내인 내 마음인들 편할까마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쪼그라든 팬티를 탁탁 소리가 나게 털어 허겁지겁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려 놓는다. 두 손으로 양쪽 끝을 붙잡고 펼쳐보니 생각보다 커진다. 나는 몇 번 더 털어서 바람을 넣어 한껏 부풀린 채로 조심스럽게 널어놓는다. 빨래대 위에서 아직도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는 그것은, 본래보다 더 싱싱하고 튼실한 빛을 띠고 있다. 삶의 꿈결 같던 젊은 봄빛을 잠시 만나고 나니 비로소 마음 놓고 느긋한 웃음을 내놓게 된다.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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