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kim3000
김영수

부동산캐나다 칼럼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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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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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각기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특별히 맛있게 먹던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엄마의 손맛’ 하면 우거지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엄마는 요리가 아닌 늘 먹는 평범한 ‘반찬’을 만드셨고 ‘별미 요리’는 손수 요리하기를 좋아하신 아버지가 만드셨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어 내 차례가 올까 봐 마음을 졸였다. 


 기다리던 외식나들이가 엄마의 완강한 고집에 부딪히는 건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엄마는 내 반찬은 있으니 걱정 말고 나가서 맛있게 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반찬이란 별 것도 아닌, 별 것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모를,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는 우거지 찌개였다. 

 ‘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그렇게 좋았을까?’ 문득 의문이 생긴 건 결혼을 하고도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였다. 그날은 어쩌다 신 김치가 남아있어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가며 우거지 찌개를 만든 날이었다. 코를 틀어막고 이게 무슨 냄새냐며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찌개그릇을 밀쳐놓는데 문득, 어릴 적 밥상에서 천대받던 엄마의 우거지가 환영(幻影)처럼 떠오른 것이다.


 우거지는, 버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가난한 시대를 살며 어쩔 수 없이 터득하게 된 조리법일지 모른다. 요즈음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지만 우거지를 떠올리면 우중충한 색깔만큼이나 서글퍼지는 이유는 궁핍과 결핍의 소산물 같아서다. 그런데도 그 맛이 우물 속처럼 깊은 것은 아마 시린 추억과 곰삭은 세월의 맛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를 먹다먹다 시어터져 허연 골마지가 앉을 때쯤 며칠간 찬물에 우려낸 후 된장과 멸치가루를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끓이면 묘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웅숭깊은 맛을 내는 토속적인 우거지 찌개가 된다. 그 냄새 때문에 서로들 밥상에서 가장 먼 구석자리로 밀쳐놓으면 엄마는 말없이 가만히 당겨다 놓곤 하셨다. 그렇게 길들여진 식성 덕에 엄마의 솜씨 중에서도 가장 촌스럽고 냄새 나던 그것이 때로는 그렇게 그리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거지를 내 반찬이라며 외식나들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고등어를 구웠다. 세 식구가 먹기에는 한 마리면 충분했다. 삼등분한 고등어 토막을 앞에 놓고, 주저하며 선뜻 젓가락을 옮기지 못하고 망설였다. 남편과 아들 접시를 번갈아 보며 살이 가장 많은 가운데 토막을 어디에 놓을까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을 들여다보기나 한 듯 남편이 슬그머니 꼬리 쪽을 집어갔다. 아들 표정을 흘깃 바라다보았다. 의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니 뭐 그런 사소한 것에 그리 마음을 쓰냐는 듯한 무심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아들이 내 나이쯤 되어 누군가의 아비 자격으로 식탁에 앉은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가 그랬듯이, 제 아이의 숟가락에 토실한 살점을 얹어주고 저는 말없이 꽁지 부분을 집어가는 아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사랑은 그렇게 대물림 되어갈 것이다. 


 “엄마는 머리부분이 정말 맛있어요?” 하고 묻는 아들의 말에 나는 어릴 적 엄마와 앉았던 밥상머리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굴비를 구우면 대가리는 늘 엄마 차지였고 우리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굴비가 귀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밥상에 여러 마리가 놓여 있어 다음 끼니까지 먹게 되는 한이 있어도 엄마는 한사코 살점에는 손을 대지 않으셨다. 뼈까지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한 단물이 나온다며 살이라고는 없는 머리부분을 처량하리만치 알뜰히 드시던 기억에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놓고 만다.


 내가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온 가슴을 송두리째 내주던 우리 어머니 세대만큼 치열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 어머니의 흉내를 내보기는 해도 나는 입술로 사랑을 주는 ‘요즈음’ 엄마이고, 내 몸의 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받기만 하는 자식들에게 이유도 없이 고마워하고, 잘못한 것도 없이 다 ‘에미 탓’이라며 미안해 하는 그런 사랑을 요즈음 세상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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