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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II)-‘바람의 신부’(Bride of the Win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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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아내 
알마의 생애를 그린 작품 

 

 

 (지난 호에 이어)
다시 '바람의 신부'로 돌아가자. 1911년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피델리오' '돈 조반니' 등 오페라 공연을 지휘하는 말러. 지휘는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작곡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평이었다. 

 

 

 


 한편 뉴욕에 있는 동안에도 그로피우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며 그리움과 사랑을 호소하는 알마. 어쩌면 말러의 사후를 대비하여 그와의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사전 포석을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일설에는 이러한 알마의 태도와 애정 행각이 말러의 명을 단축시켰다고 보는 관점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녀는 남자의 혼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릴 만큼 속정 깊은 매력이 넘치는 영악스런 요부였던 것 같다. 

 

 

 


 같은 해 5월12일 뉴욕에서 병이 악화돼 말러는 비엔나로 돌아온다. 병상에서 알마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즐기라"고 유언하고 말러는 마지막 교향곡 제10번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1911년 5월18일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말러는 그의 유언에 따라, 5월22일 비엔나 외곽의 그린칭(Grinzing) 공동묘지에 5살에 죽은 사랑하는 맏딸 마리아 옆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장인이 되는 카를 몰이 그의 데드 마스크를 만들었다. [註: Death Mask는 사람이 죽은 직후에 밀랍이나 석고로 그 얼굴을 본떠서 만든 안면상으로, 죽은 사람의 생전 모습을 남기거나 초상화를 만들기 위해 쓰인다.]


 조촐한 장례식에는 12음 기법으로 유명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 [註: 그의 헌화에는 신에 비견하는 뜻인 '거룩한 구스타프 말러'라고 씌어 있었다.], 독일 베를린 출신 유태인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 구스타프 클림트 등을 비롯하여 유럽 유명 오페라 하우스의 대표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알마는 주치의의 명령으로 장례식에는 참석이 금지되었다. 

 

 

 

 


 장례식 때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하관 후에야 비가 그치고 영롱한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그의 묘비에는 달랑 그의 이름 'Gustav Mahler'만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내가 누구였는지를 아는 사람만 올 터이니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는 평소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말러의 사망까지가 '바람의 신부'의 전반부 이야기로 러닝타임 99분 중 절반을 차지한다. 이 전반부를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가 '구스타프 말러의 황혼'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는 계속된다. 알마는 말러 사후 남편의 속박에서 벗어나자 자유를 만끽하며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비엔나 사교계의 여왕벌로 등극한다. 1912~1914년 사이 적어도 4명의 유명 인사들과 애정행각을 벌였는데, 그 중 7살 연하의 오스카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코코슈카는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이후 진정한 표현주의 화가 및 시인, 극작가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와 함께 벨 에포크 시대를 이끌던 비엔나 3대 천재화가 중 한 명이다.

 

 

 

 


 1912년 4월12일 저녁 만찬자리에서 카를 몰이 알마의 초상화를 코코슈카에게 의뢰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당장 그 다음날 알마는 그의 첫 연애편지를 받게 된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동안 400통의 편지를 받게 되지만, 그의 맹렬한 열정과 질투심 때문에 알마는 "사랑의 전쟁터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보았다"고 술회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알마가 비엔나로 간 사이, 걸작을 바치면 결혼하겠다는 그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코슈카(빈센트 페레즈)가 그린 그림이 유명한 '바람의 신부'이다. 

 

 

 

 


 이때 알마가 비엔나로 간 이유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아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알마는 이 젊은 화가에게 뜨거운 영감을 불어놓는 뮤즈의 역할을 하고, 자신도 그로부터 새로운 의욕과 열정을 수혈받는 것으로 만족할 뿐, 결혼만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명성과 품격을 지닌 남자를 선택하려 했다. 두려울 정도로 열정을 보이는 코코슈카에게서 독점욕과 질투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말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아무튼 코코슈카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시인인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이 거의 매일 방문하면서 '밤(Die Nacht)'이라는 시를 지어 이 그림에 '바람의 신부(Die Windsbraut)'라는 제목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바람의 신부'에서, 비록 그림에서나마 자신의 신부가 된 그녀가 그의 품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하지만 알마의 손을 꽉 쥔 힘줄 선 코코슈카의 두 손은 왠지 불안하다. 온 근육이 뒤틀어진 채 시선은 허공을 맴돈다. 곧 폭풍이라도 몰아치면 그녀는 바람처럼 날아가 사라져버릴 허상임을, 바람만이 알 것이다. 아울러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어두운 주변의 공포감은 당시 진행되고 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암울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일명 '폭풍우(The Tempest)'라고도 불린다.

 


 한편 실연의 충격을 억누를 길 없었던 코코슈카는 이 그림을 그의 친구 닥터 로스에게 거금에 팔아서, 그 돈으로 말과 필요한 장비들을 사서 1915년 오스트리아 엘리트 기병연대에 자원 입대하여 동부 전선인 러시아로 출병한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그가 전사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알마. 오스카르의 어머니가 권총을 지니고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며 알마를 만나겠다고 찾아오지만 순찰 돌던 경찰에 의해 저지된다. 


 알마는 영리한 여자다. 오스카르의 화실을 찾아가서 그가 모아놓은 그녀의 편지와 그의 스케치, 그림들을 챙긴다.


 그런데 1년 여 지난 어느 날 죽었다던 오스카르가 나타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에서 머리 총상과 폐를 총검에 찔리는 심한 중상을 입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채로 돌아왔던 것이다. 사실 오스카르가 병원에 있을 때 그녀의 병문안을 요청했다는데 그녀는 몰랐는지 묵살했는지 알 순 없지만 이때 그로피우스와 재혼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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