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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Wild Strawberr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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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III)
젊어 보고 늙어 보니 청춘은 꿈결 같더라

 

 

 우리는 이 꿈을 통해 이삭이 '세상 최고의 의사'라는 찬사를 받으면서도 시큰둥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생에서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삭 보리는 전문의(미생물학) 시험을 볼 때 채점관의 실수에 의해 혹시 떨어질까봐 두렵고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하던 자신의 옛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재판관이 서류에 판결문을 쓰고 있다. 무엇이냐고 묻는 이삭에게 죄목은 "무능력자"란다. 그리고 추가하여 냉정함, 이기주의, 무정함 등의 심각한 혐의가 있다며 "박사님의 부인께서 고소하신 사건"이라고 말한다.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 하자 농담하는 게 아니라며 어차피 다른 선택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재판관. 


 여기서 '무능력자'는 진정한 사랑과 배려에 대한 무능력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추가 혐의들은 바로 화해·상생(相生)의 걸림돌로서 자신이 깊이 반성해야 할 요소들임을 암시한다.

 

 

 


 꿈은 계속된다. 따라오라는 재판관을 뒤쫓아 가니 어느 숲속에서 아내 카린(게툴드 프리드히)과 정부(情夫·오케 프리델)와의 불륜 장면을 보게 된다. 재판관이 "죽은 여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소수만이 그 희미한 그림을 채색합니다.

 

박사님은 언제나 이 장면을 회상해요. 이상하죠? 1917년 5월 1일 화요일. 이 자리에 서서 이 장면을 빠짐없이 보고 들었습니다."하고 말한다. [註: 그러니까 40년 전, 이삭의 나이 38세 때의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카린은 이삭의 냉담과 무관심, 그리고 그 메스꺼운 위장된 아량 때문에 외도를 했을 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는 사라진다. 


 이삭이 재판관에게 어디로 갔냐고 묻는다. 그는 "잘 아시잖아요.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침묵이 안 들려요? 모든 게 사라집니다. 고통도 없고 출혈과 경련까지요. 내과의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삭은 그제야 침묵을 깨닫곤 "처벌이 뭐냐?"고 묻는다. 이삭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재판관의 죄목 '무능력'에 대한 벌칙은 "일상적인 외로움"이었다. 그 단죄에 대한 선처는 없다. 


 이삭은 재판관에 의해 자신이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으로 찍혔다. '잃어버린 세대'란, 말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사소한 자신의 비밀을 들추어내지 않고 숨기고 사는 구시대를 의미하였던 것이다. 


 이해와 용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음을 얼마 안 남긴, 인생 막바지에 이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노년 일상의 허무감과 고독감의 근원을 이해하게 된다. 

 

 11. 아들 부부의 삶과 며느리의 시각


 꿈을 깨자 마리안느가 잘 주무셨냐고 묻는다. 애들은 산책 나갔고 차 안에는 둘만 남았다. 그는 뒤숭숭한 꿈을 꿨다며 "깨어있을 때 듣기 싫은 소릴 나 자신한테 중얼거리니 우습지?" 하며 씰쭉 웃는다. 마리안느가 "그게 뭔데요?"하고 묻자 "나는 죽었다. 산송장이다."고 대답하는 이삭. 


 마리안느가 "그이하고 똑같아요. 겨우 38살인 남편도 똑같은 말을 해요."하고 놀란다. 이삭은 "부전자전이니까."하며 씩 웃는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리안느가 수줍은 듯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녀가 몇 달 전 할 얘기가 있어 남편과 함께 비오는 날 해변으로 갔단다. 임신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에발드는 "나는 지옥같은 결혼에서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어. 내 아버지가 누군지 잊었어?"하며 아이 낳기를 원치 않고 차라리 죽고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삭이 마리안느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태우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삭의 심경(心境)의 변화를 나타내는 첫 번째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그 말 때문에 마리안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시 용기를 얻고 대화를 계속한다.


 "아까 어머님을 뵙고 공포감을 느끼시더군요. 그 분은 고대의 여인이죠. 시간 속에 꽁꽁 얼어붙은 여인. 죽음보다 더한 공포일 거예요. 그녀의 아들, 두 사람 사이에는 영겁의 시간이 존재하죠. 그는 자신이 산송장이라고 말하죠. 에발드도 추위와 고독 속에서 죽어가요. 뱃속의 아이를 생각했죠."


 이삭이 그의 노모를 만나는 광경에서 비로소 그녀는 시아버지의 성격과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스스로 산송장이라 표현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어머니의 존재가 이삭의 성격을 태동시켰고, 남편 에발드의 냉담하고 이기적인 성격도 바로 아버지인 이삭으로부터 대물림 받은 것이었다. 

 

 

 


 이삭이 왜 에발드에게 가는지 묻는다. 그녀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며 아무도 이를 저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내가 도와주련?"하고 묻지만 "아무도 돕지 못해요. 이미 선을 넘어버렸어요."하고 말하는 그녀. 


 부부 싸움 후 다음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까 중년 부부의 싸움을 통해 자기도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 말한다. 며느리의 고백은 다시금 놀라움이었고, 그것은 시아버지인 이삭 자신의 부부 생활과도 판박이였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성공한 삶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진정한 가족 간의 정도 나누지 못했고, 어느 누구와도 따뜻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외로운 삶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아들 에발드에게까지 대물림되고 그로 인해 아들은 물론 며느리까지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오래 전 죽은 자신의 아내 카린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고, 그 원인은 바로 '남편들'의 무정함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와 남편 모두 스스로에 의해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가여운 희생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때 세 젊은이가 열린 차창 밖에서 "의사 생활 50년을 기념하여 인생의 대선배이시자 박식한 학자님께 축하를 드린다."며 한아름 따온 야생화를 들이민다. 

 

 

 12. 사랑과 배려

 

 

 


 4시 10분, 룬드의 에발드 집에 도착한다. 미리 도착해 있던 아그다 부인이 마중 나와 짐을 챙긴다. 에발드가 아내 마리안느를 보고, 와줘서 고맙다며 만찬에 부부동반으로 예약을 바꿔야겠다고 하고, 이에 화답하여 마리안느는 따로 방 잡지 않고 같이 자겠다고 말한다.

 

 

 


 박사 학위 50주년 기념식 행사가 엄숙히 거행된다. 박사모를 씌워주고 반지를 끼워주고 학위증이 수여된다. 그러나 명예상을 받는 노박사의 표정은 밝지 않고 오히려 굳어있다. 


 이삭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하루동안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 모든 일을 기록에 남기기로. 우연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놀라운 인과관계를 도출해 낼 수도 있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이 기념식은 이삭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공허한 의식(儀式)'에 불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마리안느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간과했던 이삭의 성취, 자기 일에 치열하게 매진했던 그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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