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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생각(思友)
yoobyungyong

 

 

옛친구 00兄 前,


벗이여 나를 기억하겠소? 유병용(劉秉鎔)이라고, 아주 먼 옛날 65~67년여 간에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잠깐 살았고, 학교는 감곡중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칠 즈음 그만두고 집안 사정상 서울로 이주하였던… 그때 나의 부친이 감곡 지서에 근무하시어 지서 근처에 살았었고, 친구도 근처에 살았던 걸로 기억되기도 하고.


 한가지 확실히 추억되는 것은 친구가, 그때는 해마다 실시되는 교내 ‘반공(反共)’ 웅변대회에 나아가 ‘육이오’를 주제로 웅변을 하였던(외쳤던) 사건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오. 그 내용이 이렇게 시작되었던 같으오. ‘. 잔잔한 호숫가에 집어던진 하나의 돌이 온 호수를 메아리 쳐나가듯 청천벽력과도 같은 삼팔선 전역에 걸친 육이오 불법 남침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후 몇 수년이 지나, 서울에서 친구가 OO대학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잠깐 재회하였던 기억이 지금 가물가물 하기도 하다오. 그러고서는 지금까지, 근 사십 수년을 서로의 소식(생사)을 모른 채 긴 세월 동안 단절이 되었으니. 국토분단의 비극도 아니고, 이 무슨 인생의 장난이란 말이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나는 가끔은 옛 시절을 떠올리며 아울러 친구 그대의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오. 얼마 전 어린 그 시절이 그리워 옛 정취와 옛 친구들을 더듬어보던 중 친구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인터넷 인물검색 창에 OOO 세 글자를 쳤더니, 아아 반갑게도 OOO란 인물이 뜨는데 너무 오랜 세월 격세지감 탓인지, 처음엔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친구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오.


 그래 몇 번을 더 확인해보니 친구의 얼굴이 40~50년의 시간을 유추해 보아도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더 검색해보니 친구의 블로그에 옛 시절 감곡, 매괴성당 사진과 그 시절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여러 차례 뒤져본 다음 친구의 전화번호나 아니면 이멜 주소라도 찾으려 했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오. 인내 끝에 친구의 옛 친구와의 서신교환을 찾아 간신히 이멜주소를 알게 되고, 오늘은 마침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오.


 블로그를 보니 친구는 과천에 살고, 지금은 부동산 감정평가사란 사업을 펼치며 열심히 살아 그 분야의 큰 역할을 하는 귀한 자리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소. 나도 실은 친구를 생각하며, 비록 긴 세월을 함께 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린 시절에도 친구의 모습에서 가볍지 않은 어떤 저력과 진지하고 결연한 생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예견해 보았었소. 그러한 나의 기대가 이렇게 현실로 입증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기쁘고 대견한 일이오.


나는 지난 97년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후 2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오. 그곳을 떠날 땐 사십 중반이었는데 지금은 시니어로 불려지는 네 손주들을 본 할아비가 되었구려.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둘 다 결혼하여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미국계 금융회사 한국지사에 근무하며 그곳에 십년 째 살고 있고, 딸도 한국에 나가 십 년을 살다 그곳에서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약 한달 전쯤 사위와 함께 네 식구가 이곳으로 막돌아 왔다오.


둘 다 이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아들은 유학생 며느리를 맞아 그곳으로 갔고, 딸도 한국생활을 하고 싶어해 그곳에서 십년을 살다 이제야 회귀하게 되었소.


나는 한국에서 어쩌면 내 인생 사업적인 면에서는 가장 정점인 사십 중반에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오. 이곳의 삶은 고국에서와 같이 왕성한 사업과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지는 못하나 그저, 조용히 자유롭게(?) 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소박한 삶을 누리는 그러한 생활이라오. 지금 거주하는 곳은(Toronto G.T.A) Richmond Hill이라는 곳이고…


나도 이곳에 오기 전 과천 4단지에서 6~7년을 살다 일산 신도시에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5년을 살고 그 다음 이곳으로 오게 되었소. 과천은 나도 좋아하고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오.


 거의 반세기만에 이렇게 그대 앞에 나오니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수월하지가 않구려, 오늘은 예서 줄이고 우리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오. 이곳 우리 집엔 한국 070 전화가 있어 통화가 부담이 없으니 가능하면 내가 보내는 이 번호(000-0000-0000)로 전화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오. 친구의 전화번호를 보내주면 나도 전화로 통화할 수 있을 것이오.


 두서없이 횡설수설한 것을 양해해주기 바라며, 친구와 가족 모두의 평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난필을 줄이오. -유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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