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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disposable) 시대
yeodongwon

 

 

그저 바쁘기만 한 시대, 느긋함의 여유가 뒤처짐 되는 시대, 그래서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남용되는 시대, 일명 소모품시대라고도 한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위생적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일회용 물품들이 널리 각광을 받으며 쓰이고 있다. 대신 쓰레기가 산을 이루어, 결국 지구촌이 대책 없는 공해로 찌들고 있다.


기저귀, 면도칼, 볼펜, 손수건, 병원주사기 등등 생활용품은 그렇다 치자. 진열해 두고 여러 사람이 열람해서 보고, 물려서 보고, 돌려가며 보고, 선물해서 보고, 빌려서 보는 책마저 뒷전으로 밀려, 읽는 둥 마는 둥 쓰레기로 직행하는 일회용 읽을 거리, 일러 신문 잡지시대.


아니다. 그것도 이제는 흘러간 유행가다. 이제 인터넷 컴퓨터가 판을 벌이니 미래가 심상치 않다. 아니 신문은 그래도 하루는 가고, 잡지는 한 달은 두고 읽는데, 이놈의 컴퓨터는 순간 읽기다. 그러니 순간 다음을 점칠 수가 없다. 가늠되지가 않는다. 


그냥 그저 바쁘다. 갈아 끼울, 닦고 청소할, 아끼고 보관할 짬이 없다. 한번 쓰고 버리자. 버리기 위해 사고, 버리기 위해 사용하고, 버리기 위해 만든다. 버리자는 물건이니 애착이 있을 리 없고, 애착이 없으니 귀함을 모른다. 귀함을 모르는 세대, 참으로 막가자 식 비극이다.


버리기가 습관화가 돼버린, 버리는 것이 목적이 돼버린, 버리자 가 경제를 살린다 가 돼버린, 잃어버려도 그만, 망가져도 그만, 쓰임이라는 편리만이 관심의 전부일 뿐인, 이것이 미래 지구촌에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외면하는, 아니 모르는 세대, 짠돌이 내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이해도 풀 수도 없다. 그저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내가 손수 공들여 만든 자식 같은 애정이 묻어있는 가구, 선물 받은 것이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릴 때 손에 묻어나는 따스함, 일회용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물건+a(알파)가 있다. 


현대인은 그저 편리하고 합리적이면 된다. 애정이라는 감정은 거추장스럽다. 닦고, 기름치고, 광내고, 망가지면 고쳐 쓰고, 안보이면 찾는, 고운정 미운정 들며 함께하는 세월이 만드는 애증의 맛을 모른다. 아니 그런 여유를 즐길 짬이 없다. 


현대의 부부개념도 소모품시대를 닮아 단순 명료하다. 백년가약 이니, 파뿌리니 하는 ‘결혼계명’은 웃기지 말란다. 타닥타닥 몇 번에 앞길이 구 만린데 허다한 세월 인상 구기며 왜 사냐? 도장 찍자. 


인내하고, 이해하고, 고민하는 절차는 헌 옷처럼 거추장스럽다. 새 옷 갈아입듯 산듯하게 새 출발해버리자. 본능적 열정이 지탱할 때까지만 사용하고 열이 식으면 일회용 면도칼을 버리듯, 그렇게 쉽게 고민 없이 갈라서버린다.


내 인생, 이 존재란 건 어떨까? 혹 일회용 소모품은 아닐지 종교 쪽에 물어 보자. 물론 유교에서는 대를 이어 내려간다 하고, 기독교에선 부활이라는 구원의 은총이 있다 하고. 불교에서도 돌고 돈다는 윤회설을 설파하고 있다. 이 어찌 다행스럽지 아니한가? 


나는 늘 우주만상에서 a(알파)를 느끼며 산다. 사랑이라 해도 좋고, 아름다움이라 해도 좋고, 질서라 해도 좋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거기엔 엄숙한 무엇(a)이 있다.


바닷가 모래톱에서 3살 밖이 한 계집 아이가 아까부터 뭔가를 찾으며 줍고 있다. 조가비나 조약돌일 게다. 이는 물질숭배가 아니라, 귀하고 예쁜 ‘a’를 만나고 싶은 갈망이다. 분명 일회용을 만지는 손길과는 다르다. 


이 지구 덩어리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덩어리를 인간들은 그 죄 값을 어쩌려고 마치 일회용 물품 다루듯 겁 없이 함부로 다루고 있는가.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결단코 아닌데, 영원한 시간 동안 인간이, 아니 만물이 살아가야 할 안식처이며 사랑의 대상이어야 할 지고(至高)의 땅인데.


함에도 사정은 불행하게도 정반대다. 이제 언제 어느 때 가공할 무기로 박살이 나고, 오염으로 썩어 문드러질지 불안한 막다른 처지에 와버렸는데도 질주를 멈추기는커녕 속도 붙은 과속질주는 제어장치가 속수무책이다. 분명 지구는 영원한 날까지 생물이 의지해야 할, 하늘만큼 땅만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종교보다도 숭고한 대상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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