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9 전체: 98,493 )
곰, 마늘 그리고 이민 문학(1)
yeodongwon

 

 '이민 문학', 이민을 살며 문학을 한다 해선데, 기차나 연락선 타고 "볼둥 말둥 하노라" 눈물 짜며 떠난 시절도 아닌,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좁혀져 서울 안방에서 보는 TV 드라마를 토론토 우리집 안방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감상하고 있는 문화의 이질 현상이 엷어진 마당에 '이민 문학'이라는 장르가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입고, 먹고, 자고, 말하는 기본생활은 물론 정치, 경제, 교육, 심지어 사고(思考) 유추방식까지 닮아버린 오늘의 지구촌 개념에서 외롭다, 멀다, 향수 어쩌고 하는 말들이 되레 유년적 엄살로 들린다.


 이처럼 1세들에게서조차 의미가 약화 돼버린 '이민'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땅에서 태어난 2세들에 이르면 영 생소해져 민족, 국가, 고향 같은 단어가 풍기는 뿌리의식, 그런 무리 정서는 국가대항 운동시합 때나 약간 쓸모를 찾을 정도로 희박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민 문학'도 애석하지만, 이민 1세대에서 판을 접어야 할 운명인데 해외로 흘러나와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전체 해외 한민족의 문학을 굳이 분류한다면 '동포 문학'이라 칭하는 편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이 '동포 문학'이 그나마 모국어로 쓰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백 년, 천 년 단위 멀리보면 애통하게도 거의 소멸하리라는 예측이 우리 2세들의 서툰 우리말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되니, 언어와 관계없이 '동포 문학'을 지속해서 제구실을 감당케 하자면 거기에는 신앙에 버금가는 '민족정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볼 때, 과연 우리 민족에게도 유대인의 시오니즘에 버금갈만한 정기(사상)가 있는가 반문해 보는 것이다. 있다면 무엇일까?


 한민족이라는 꼬리표에 연결된 고삐가 모국땅 백두산 성지에 박힌 말뚝에 매어져 있음이 인식되는 신앙심과도 같은 구심력, 그 뿌리 의식을 말한다. 혹자는 '얼'이라 말할 것이고 어떤 이는 '홍익인간'을 내세울 것이다. 거기에 "아니오"라고 부정은 못하나 세월에 퇴색되지 않는 정신으로는 아무래도 약하다. 


 그리고 1세들이 이민 올 때 마음의 봇짐에 자동으로 담겨온 조국에 대한 향수나 정을 민족정신으로 착각할 수 있겠으나 그것들은 1세들의 감상(정서)이지 대를 이어 흔들리지 않는 민족정기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민족 단위 특성을 쉽게 구분하자면 언어, 용모, 음식, 그리고 의식(종교풍습)을 들 수 있는데, 언어는 소수민족일수록 몇 세대 못 가서 현지어에 의해 소멸하고 용모 또한 오랜 피 섞인 과정에 의해 현지인에 닮아 갈 수밖에 없고, 고유음식은 그나마 오래 지속할 것 같으나 이 또한 퇴화의 길을 밟거나 변형될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힘만은 유대인의 2천 년 유랑 역사가 말하듯 막강하다. 아프리카 유대인은 완벽하게 흑인 용모가 되었고, 소련 유대인은 소련인을 닮아 버렸으나 "시온이즘"이라는 한 정점에서 그들은 하나로 뭉쳐져 있는 것이다. 언어도 용모도 음식도 동화되어 버렸지만, 그 의식(종교)만은 기적처럼 단단히 지켜져 온 것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섭씨 100도 물 반 컵에 0도 물 반 컵을 타면 어김없이 50도 물 한 컵이 된다. 강한 자와 순한 자가 만나면 강과 순이 조화스러움으로 나타난다. 소수는 다수에 흡수 동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이 자연의 이치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도 자연의 산술적 배합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세월의 흐름까지도 무용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 한방울 1g도 안 되는 소수로 물 1t도 넘는 넓은 세계에 없는 듯 버려진 신세로 흩어져 살았어도 시대의 흐름에 아랑곳없이 제 색깔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물 색깔에 오히려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고 세계인들은 지독하다(고) 혀를 두른다. 이 형상이 지구촌 안녕에 도움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는 별도 문제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천년, 만 년이 흘러도 버틸 수 있는 기둥 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것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우리의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온이즘이 그들의 역사(구약)에서 나왔듯이 우리의 버팀목 정신 또한 우리의 역사 안에 있을 것 같아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