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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멋진 드라마
yeodongwon

  


 "독일에 있을 때 재미 본 이야기 하나 없어?" 약간 끼가 있어 보이는 젊은 내가 개방적이고 예쁜 독일 아가씨들 속에서 3년을 소리소문 없이 얌전히 독수공방했다는 게 아무래도 냄새가 수상쩍다는 것이다.


 60년대 당시 길거리에서 연인들끼리 감히 함부로 뽀뽀를 못하던 우리의 고리짝 시절과는 달리 길거리 아무 데서나 끌어안고 빠는 광경을 민망한 듯 옆눈질로 훔쳐보던, 애정 표현이 개방적인 서양에서 20대 청춘인데 사단이 없을 수 없다는 순 짐작으로 묻는 농담에 할 이야깃거리 하나 만들지 못한 독일 3년을 솔직히 나 자신 아쉬워하고 있는 터다.


 중세 십자군의 젊은 용사들이 한창 나이 발랄한 아름다운 아내가 못 미더워 선물(?)로 주고 간 것이 그 유명한 정조대라고 한다. 공-맹자의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윤리의 올가미가 없는 유럽 여성들의 정조관념이 영 희박하다는 것을 3자인 내가 느낄 정도이니 정조대를 고안해서 아내들에게 무겁게 착용케 한 젊은 십자군 용사들의 고충을 백번 이해가 간다. 


 인간본능 중에 으뜸인 식욕이요, 다음이 성욕인데 진작 먹을 걱정을 졸업한 서양은 그 서열이 뒤바뀐 감이 없지 않다.


 한날 독일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그의 아내가 "3년의 긴 세월 동안 당신 같은 한창 나이에 어떻게 독수공방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상상도 못하겠다는 듯 묻기에 
 "할 수 없죠. 두고 온 약혼자도 같은 사정인걸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끼리 약속이니까요."


 "그런 엄청난 약속이 어디 있어요. 당장 이곳으로 데려 오세요, 저희 힘이 필요하다면 협조해 드리겠어요."


 섹스! 그것이 생의 전부이다시피 되어 있는 사회인의 눈으로는 독수공방하는 내 모습이 불가사의한 의문이었나 보다. 마치 자신이 당하고 있는 듯 흥분이 대단하다.


 "우리는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외롭긴 해도 못 견디리만큼은 아닙니다. 매일 사랑의 편지로 서로 위로를 하니까요."


 "야! 멋지다." 


 열을 올리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아내와는 달리 되레 감동을 한다. 


 그리고 덧붙여 "여보 본인이 견딘다는데 당신이 왜 흥분이야, 하긴 3년은 길지. 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다면 한평생을 위해 그만한 각오야 감수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런 소리 말아요. 나는 못해요. 3년, 아니 3개월도 길어요."


 "아니 여보! 3개월이야 어쩌다 회사 일로 나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안 돼요, 못해요, 저는 따라가요." 주장은 단호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판을 치던 괴테의 시대는 분명히 아닌 것이다. 한 끼는 굶을 수 있어도 성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하다.


 60년대 당시 교복 입은 남녀 고등학생이 손잡고 나란히 종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치자. 주위의 눈초리를 우선은 견딜 수 없을 것이요, 당장 다음날로 교무실로 끌려가 수위 높은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독신 생활을 강요하는 수도원도 아니면서 19세 이상만 다니게 되어 있는 20세기의 여자대학에 금남의 집이 의젓하게 있고 그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는 그런 성의 폐쇄사회에서 갑자기 성의 개방사회에 온 젊은 우리는 처음으로 솔직히 많이 어리둥절한 촌티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 젊은 우리가 도인처럼 고고하게 지날 수 있었을까?


 유학의 길도 아닌 그것도 광부라는 막노동판에서 수입도 어느 정도 되는 여유 속에서 성의 문을 꼭꼭 잠그고만 살았다는 게 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나도 남자고 청춘인데 아름다운 파란 눈 노랑머리 아가씨의 상냥한 노골적인 미소를 대하면 간장이 녹아내릴 듯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들은 대체로 깨끗한(?) 3년을 지냈다 자부한다.


 그런데 여기에 우연치고는 너무도 우연인 구세주 같은 멋진 드라마가 등장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계획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환상적 절묘한 타이밍은 광부 간호사 각각 2천 명씩을 같은 시기에 보냈다는 드라마 같은 현실이다. 그래서도 박정희 당시 정부가 한,일,중 중매쟁이 역할로서도 으뜸이라, 이 분들 짝으로부터 술 석 잔이 아니라 쌀 서말씩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만약 이 드라마 같은 절묘한 타이밍이 없었다고 가상해보자. 성의 개방사회라는 분위기에서 말이다. 내가 듣기로는 따로 추진된 것인데 우연치고는 너무도 운명적이라는 것이다. 궁합은 천생연분이라는 말대로라면 하늘의 뜻이 된다. 


 각각 2천 명이라는 숫자도 그랬지만 나이, 학력 또한 기막힌 연분이다. 광부 평균나이 25~27세요, 간호사 평균나이 21~23세에 평균 학력 또한 고졸이라는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만나면 짝이 되어 주말이면 라인강 로렐라이 언덕이 시끄러웠다.


 그렇게 맺어진 부부들 대부분이 미국, 캐나다로 이민 와 살고 있는데 캐나다에만 300쌍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모범적 시민가정으로도 소문 나 있다. 하늘이 쓴 너무도 멋진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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