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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옹의 감회
yeodongwon

 

 그날도 가게 문을 닫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버릇대로 TV 채널을 아무 데나 누르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미국 방송국의 낡은 흑백 기록물이었다. 히틀러가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고자 화려하게 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였다.


 그 특유의 몽땅 콧수염 밑 엷은 입술을 한일자로 다물고 세계를 비웃듯 거만한 미소를 짓고 본부석에 버티고 앉아 있는 히틀러의 모습이 보였고, 곧이어 발목에 각반을 두르고 그 볼품없는 센도모(일본군대 전투모)를 쓴 군국주의 일본 선수들이 일장기를 앞세워 군대 사열하듯 히틀러의 앞을 지나는 장면도 나왔다.


 오웬스를 비롯한 미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히틀러의 코가 납작해진 장면들, 나는 피곤함에 지친 눈으로 건성 보고 있었고, 화면이 몇 번인가 바뀌는가 하더니, 


 "지금 막 미국 선수와 나란히 일본 선수가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앗 손기정이가." 나는 튕기듯 몸을 소파에서 일으키며 꽥 소리를 질렀다.


 "데딘 저펜 안좋아 하잖아? 제는 저페니스인데 뭐" 나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영문을 모르는 이곳 캐나다 중학생인 딸애가 아버지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그러냐며 묻는다.


 교과서에서 배우고 사진으로 수없이 본 낯익은 얼굴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 분이 뛰고 있는 모습의 다큐멘터리 화면을 보기는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흥분했나 보다. 다행히 아나운서가 당시 우리의 억울했던 입장까지를 영어로 설명해 주고 있으니 딸애들도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


 계속 화면은 선두를 유지하며 여유롭게 한 발 한 발 달리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고, 나는 피가 솟구치는 흥분으로 주먹 진 손에 땀이 젖는다.


 드디어 메인스타디움에 손기정 선수가 모습을 나타내었고, 히틀러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우승 테이프를 끊는 손 선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 계속해서 2등으로 미국선수, 3등으로 우리의 남승룡 선수가 역시 일장기를 앞가슴에 붙이고 들어오고 아나운서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 이름으로 기다이 손, KOREAN 손기정 선수입니다. 당시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한국 이름도 한국 국기도 달지 못하고 일장기를 가슴에 멍에처럼 붙이고 기다이 손이란 일본 이름으로 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TV 화면과 나를 번갈아 주시하고 있던 딸애가 그때야 “NO! NO! KOREA가 왜 JAPAN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어, 말이 안 돼, 억울해!” 아비인 나보다 더 분을 참지 못한다.


 화면은 바뀌고 시상식 장면, 중앙 상단에 손기정 선수 좌우편에 미국 선수와 우리 남승룡 선수가 섰다. 기미가요 일본 국가의 연주에 일장기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데 피눈물을 품어낼 듯 한일자로 굳게 다문 손기정 선수의 눈길은 땅을 향해 있었다.


 그때 당시 반환점을 함께 돌던, 지금은 노인이 된 미국 선수와 아나운서와의 대담이 나왔다. “그때 한참 동안 함께 나란히 뛰었는데 ‘하이, 저패니스!’하고 인사를 건네니까 무뚝뚝하게 ‘No, Japanese, I am Korean” 하더군요”


 “나는 한국인이다” 입으로는 울부짖듯 말했겠지만, 가슴에 달린 히노마루 일장기는 내장 깊숙이 피멍으로 엉키어 일생 각인처럼 붙어 다녔을 그 아픔이 어떠했을까?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메인스타디움에 한 백발의 노인이 성화 주자로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성화봉을 높이 치켜들고 왼팔을 휘저으며 운동장을 너울너울 춤을 추며 뛰고 있었다. 백 년 올림픽 역사에서 성화 주자가 그 얼마였겠냐만 그 이전에도 그 후에도 이런 기이한 성화 주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조국땅에서 살아생전에 올림픽 성화 주자로나마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뛸 수 있는 영광에 어찌 어린애마냥 껑충껑충 너울너울 신명을 어찌 주체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는 자기의 한을 말끔히 씻어줄 후배가 나타나 주길 얼마나 기다렸겠는가! 그 한은 56년을 기다려 199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 선수가 보답하듯 풀어주고 있었다.


 살아생전에 맛본 그 감격이 어떠셨을까? 아! 이날의 감격, 더욱이 일본 선수와의 막판 승부에서 혼신의 힘으로 따돌리고 골인하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 황영조 당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함이 없었을 것이다.


 태극기를 가슴에 붙인 키 작은 선수가 7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황 선수는 여유 있게 운동장을 한 바퀴 돈 다음 양손을 입에 갖다 대고 관중을 향하여 손 키스의 답례를 보낸 후 주먹 쥔 두 손을 번쩍 들고 골인 라인을 밟고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쓰러졌다. 마치 2400년 전 그리스 올림피아드의 병사처럼.


 스타디움 한 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손기정옹의 감회는 남달랐으리라. 나는 TV를 보다 말고 방을 빙글빙글 돌며 소리소리 질렀고, 한국이라면 콧방귀만 튕기던 서양 아기 같은 대학생인 딸애도 “YES! YES!” 주먹을 휘두르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아내는 아예 통곡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황영조 선수는 목에 걸린 금메달을 벗어 스타디움 객석으로 뛰어 올라가 손기정옹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둘은 엉키어 포옹하고.


 우리의 황영조 선수는 42km를 2시간 13분에 달린 것이 아니라 56년을 걸려 달려온 것이다. 더욱이 손기정 옹의 기다림은 그렇게 멀고 길었고 그만큼 감격은 컸으리라. 손기정 옹의 주름진 얼굴에 한의 기미가 벗기고 가슴은 후련히 텅 비어버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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