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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이모사면 족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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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정책이 해마다 바뀌곤 하다 보니 한자교육에 대한 정책도 수없이 많이 오락가락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행히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때까지 한자를 계속 배웠고, 고등학교때는 한문과목도 있었다. 아마 제1과 새옹지마, 2과 조삼모사…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인생의 교훈과 지혜가 담긴 고사성어들을 말하자면 원어로 배웠던 셈이다. 


 고사성어들을 한문으로 배우면서 중국에는 이렇게 수많은 고사성어들이 전해 내려오고, 유대인들에겐 탈무드가 있어서 그 걸 통해 값진 삶의 교훈을 후세에 물려주는데 우리는 수천년의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이런 지혜를 체계적으로 전승해 주는 수단이 없음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시간에 배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 중국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狙)는 원숭이를 뜻하는 말이니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원숭이를 무척 좋아해서 많은 원숭이를 길렀다. 원숭이를 너무 좋아해서 많이 기르다 보니 그 먹이도 여간 드는 게 아니어서 살림이 점점 어려워져 갔고, 급기야 먹이를 줄여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렇다고 원숭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우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줄 도토리를 이제부터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로 하면 좋겠느냐?” 이 말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저공은 다시 이렇게 고쳐 물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로 하면 좋겠느냐?” 원숭이들은 모두 흡족해 했다.


 오래전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이 고사를 배울 때는 저 원숭이들의 단순하고 어리석음을 비웃었었다. 그런데, 이 고사를 배운 후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보면 사람들도 저 원숭이들과 다름없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몇 해 전에 한국에서 ‘연말세금폭탄’ 소동으로 정부가 많은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봉급생활자들의 경우 전 연도 수입을 기준으로 하여 매월 일정액의 세금을 원천징수한 후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의 실제수입을 바탕으로 정확한 세금을 계산하여 정산을 하게 된다. 이 때 미리 뗀 세금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환급을 받게 되고, 너무 적게 떼었을 경우에는 그 차액을 한꺼번에 내야 하므로, 그 때까지 매월 내왔던 금액보다 다소 많은 금액을 연말에 내게 된다. 


 이성적 계산으로 따지자면, 세금을 미리 너무 많이 냈다가 나중에 돌려받는 것보다는 처음에 조금씩만 내고 나중에 정산해서 모자란 부분만큼 더 내는 게 당연히 이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과 언론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공의 원숭이들이 떠올라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을 넘어가면서부터 선거철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쟁점이 복지이다. 흔히들 많이 하는 얘기가 “우리나라도 이제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으니 복지수준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이런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찬성하는 듯하다. 문제는 복지의 범위를 어느 선으로 할 것인가하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하다. 온갖 논리와 외국의 사례를 들어 저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며 쉽사리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복지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복지란 한마디로 ‘국가가 개인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이다. 근대민주국가가 성립되기 이전 왕조국가에서처럼 지배계급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백성들은 어차피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정의 세금을 뜯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국가에서 뭐든지 많이 해줄수록 좋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국가운영의 주체로서 국가의 영역과 개인의 영역을 정하고, 그에 따라 국가운영을 위한 비용으로서 세금을 낸다. 이런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철저하다면 복지정책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캐나다에서 의료비가 공짜라고 하는 건 잘못된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평소에 가게에서 껌을 하나 살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나중에 아플 때를 대비해서 미리 의료비를 내고 있고, 봉급을 받을 때도 미리 병원비를 내놓고 나중에 타먹고 있는 것이다. 


 쿠바나 북한에서는 의료비나 교육비를 모두 국가에서 부담해 주니 의료와 교육이 공짜라고 하는 건 주공의 원숭이들과 같은 바보들의 계산법이다. 그들은 모든 걸 미리 국가에 다 바쳐 놓고 조금씩 타먹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상교육’, ‘무상급식’이란 말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잘못된 용어들이다. ‘국가교육’, ‘국가급식’이라고 해야 맞다. 


 한국에 새 대통령이 들어선지 석달도 되지 않아 11조300억원의 추경예산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 돈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국가에서 뭔가를 많이 해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민주국가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는 전제군주국가의 백성과 같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거나 노예근성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주인의식이 확실한 사람은 누구의 간섭을 받기를 싫어하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기를 원하지만, 노예근성에 젖어 있는 사람은 모든 걸 누군가에게 맡기고 모든 일을 누군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 민주국가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뭔가를 해주는 복지란 ‘개인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뭔가를 개인차원에서 각자 해결하지 않고, 국가차원에서 공동으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따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민 각자의 주머니에서 미리 국가에 더 내놓은 돈을 나중에 타먹는 것이거나 미리 빚을 내서 쓴 뒤 후손들이 부담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국가에서 공짜로 해주는 걸로 착각하는 건 저공의 원숭이들보다 더 어리석은 계산법이다. 원숭이들은 세금을 부담할 필요없이 주인이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입장이니 저녁에 하나 더 받는 것보다 몇 시간이라도 빨리 아침에 미리 하나 더 챙기는 게 이익이다. 하지만, 국가재정을 자기 주머니에서 낸 세금으로 채워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민주국가의 시민이 주인의 재정에 기여할 필요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는 원숭이들과 같은 계산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원숭이처럼 취급당해도 할 말이 없다. 조삼이모사면 족호아? (朝三而暮四足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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