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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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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봤어?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들은 저마다 다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저 그 날 그 날 닥치는 일들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서도 자기가 평생동안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정해 놓고 하나씩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버킷 리스트’라고 한다. 영어 표현중 죽음을 뜻하는 “Kick the bucket”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버킷리스트와 관련해서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21살의 간호학과 학생이었던 크리스티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한 동안 의식불명상태로 있었던 그녀는 평소 자기의 바람에 따라 심장, 콩팥, 간, 췌장 등 여러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고, 이 후 크리스티나의 부모는 딸의 화장품가방에서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사고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산호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람 얘기가 꼭 네 얘기 같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공교롭게도 바로 크리스티나의 심장을 이식받은 수잔이었다. 수잔은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크리스티나의 엄마를 찾아내서 연락을 했고 두 사람은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잔은 크리스티나가 평생직업으로 삼고자 했던 간호사였을 뿐 아니라 그녀가 버킷리스트에 적어놓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중에서 상당수를 이미 해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티나는 평생에 적어도 4개 대륙을 여행하고 싶어 했는데, 수잔은 평생 100개국을 여행하는 것이 목표였고 지금까지 67개국을 이미 여행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66번도로를 따라 하는 미국 대륙횡단여행, 열기구타기, 낙타타기, 일등석 탑승여행, 비행기조종술 배우기 등 크리스티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수잔은 이미 다 이룬 상태였다고 하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인연이라 하겠다.


 크리스티나의 버킷리스트 중 가장 엄마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것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죽은 뒤 장기기증을 통해 두 아이와 친지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이 외에도 그녀의 리스트에는 양귀비꽃이 만발한 벌판 걷기, 스미소니안 박물관 방문, 나이아가라폭포 구경, 체스를 배워서 그 게임에서 누군가를 이기기, 스카이다이빙, 결혼해서 아이 가지기, 졸업기념 모교방문에서 홈커밍 퀸 되기 등이 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심장을 이식받은 수잔은 이것들을 앞으로 하나씩 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그 중 한 가지는 이루기 곤란할 거라고 했는데, 그 건 ‘아이 가지기’라고 한다. 그녀는 64세이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의도적으로 하는 일보다는 그저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하고 힘든 일상을 탈피한 색다른 경험을 해 보길 원하지만 실제로 일생동안 어떤 일들을 해 보고 싶은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정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푹 쉬고 싶다거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어서 막상 여유가 생겼을 때는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어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야! 그거 해 봤어?” 호기심 많고 꿈도 많던 어린 시절 약간은 뻐기는 듯한 폼을 잡으면서 어느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거의 예외없이 뭔가 약간은 불량스럽고 그 또래에게는 금기시되는 일을 자기가 했다는 표시일 때가 많다. 어른들 몰래 숨어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봤다든가 아니면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봤다거나 하는 따위의 그 또래에게는 제법 모험적이고 색다른 경험을 해봤다는 자랑이요 으스댐이다. 


 사람들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특이하고 색다른 일을 경험할 때 왠지 모르게 묘한 성취감과 짜릿함을 맛보게 된다. 위험하고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극지탐험이나 에베레스트 등정과 같은 모험을 하는 이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해 봤어?”라는 질문이 어린시절 치기어린 친구가 묻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생을 마감한 후 저 세상입구에서 받는 질문이라면 그 의미와 무게감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살아오면서 늘 해보고 싶었던 일중 하나라면 이 물음이 얼마나 뼈아프게 다가오겠는가?  


 흔히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좋은 가죽을 남기기 위해서, 사람은 훌륭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죽은 호랑이나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뒤에 남은 ‘가죽’과 ‘이름’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 뒤에 남은 가죽이 죽은 호랑이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듯이 역사에 길이 남은 이름이 결코 그 사람의 일생이 행복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가죽’과 ‘훌륭한 이름’은 죽은 자의 가치기준과는 상관없는 ‘세상사람들’의 가치기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각자 자기가 해보고픈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기다운 삶이요, 자기에게 가장 의미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죽기전에 해보고픈 일들을 적은 버킷리스트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 자기 일생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해 봤어?”라는 질문에 대해 “난 해보고 싶은 건 거의 다 해 봤어” 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고, 또 자기 생에 대한 후회와 미련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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