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b
캐나다한인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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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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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역이 노량진이라고 지하철 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  수산시장. 벌써 오래 전부터 수산시장에 가고 싶었기에 얼른 내리기로 했다. 서울에 오면 먼저 가는 곳이 수산시장인데 이번엔 통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마침 노량진이라니 잘 되었다 싶어 곧바로 내려서 조금 걸어가다가 굴다리를 지나 어시장으로 간다. 


 굴다리 입구엔 노점상들이 채소를 놓고 팔고 있었다. 재래시장엘 가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언제나 생기가 난다. 어렸을 때는 엄마 손잡고 남대문 시장에 따라간 적이 많았다. 그 때는 슈퍼마켓이 없었고 동네에 구멍가게도 별로 없어서 시청 가까이에 살았던 우리는 남대문 시장까지 찬거리를 사러가야 했나 보다. 


 입구에 나물들을 좌판에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며 잠시 후 나올 때 사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시장에 들어서니 낮 시간이라 한가해서인지 호객하는 상인들이 많다. 생선 골목의 비릿한 내음이 풍겨온다. 바닥에 질척이는 물이 튈새라 조심스레 밟고 지나가며 매대에 무더기로 놓여있는 가자미, 홍어, 갈치, 고등어, 조기 등을 눈여겨보며 걷는다. 낯익은 생선들이 눈에 뜨이자 왈칵 반가움에 정다움까지 밀려온다. 


 활어는 비싸기도 하려니와 또 회를 좋아하지 않으니 해물탕이나 생선찌게를 할 요량으로 이것저것 사서 담는다. 마침 저며놓은 찜꺼리 아구도 한 소쿠리 사고 보니 제법 묵직해졌다. 적당한 크기의 알밴 조기도 착한 가격이라 사고 나니 한껏 부자가 된 듯 흐뭇한 마음이 되어 발길을 돌린다.


 굴다리 안에도 야채상인들이 주욱 좌판을 벌이고 앉아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도라지를 다듬거나 더덕을 까거나 실파를 다듬고 있다. 아까 맨 처음 봐두었던 초입의 할머니 앞으로 간다. 두릅과 깻잎나물을 사고, 이왕이면 하고 고추조림용 꽈리고추도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2천 원어치 사는데도 푸짐하게 넉넉히 주면서 더 달라지도 않았는데 덤까지 얹어준다.


 아주 작은 몸집을 한 할머니는 쉴새 없이 다듬던 손길로 검은 비닐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주고는 까맣게 갈라진 그 손끝으로 거스름돈도 세어서 내어준다. 부지런한 손이다. 그제서야 주름지고 둥그스름한 할머니 얼굴로 시선이 옮겨졌다. 초로의 할머니, 아니 이 여인은 이 시장, 목 좋은 여기에서 몇 십 년을 지냈을 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옆의 다른 이들과 둘러앉아 장바닥에서 점심밥을 먹으며 때로는 웃기도 하고 잡담도 하였으리라. 자식 학교 가는 얘기도 하고 고장 난 연탄보일러 얘기를 했을 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아 이 여인은 나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춥던 일사후퇴 때 화물기차 통나무 위에 올라가 한강을 건너던 그때 함께 있었을 지도 모르고, 같은 해에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함께 한글을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시루라 불렸던 교실은 한 반에 학생이 7십 명도 넘었고 책걸상이 모자라서 둘이 앉는 걸상에 셋이 앉았다가 밀려 떨어지기도 했었다. 시험 봐서 중학교엘 가야 했으니 6학년 어린 나이에 잠 안자고 입시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 모의고사 보다가 책상 위에 엎드려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던 반 친구를 보고 담임 선생님이 너 그러다간 X여중이나 Y여중에 가야 한다고 야단치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빨간 색연필로 서로 바꿔 채점하며 날마다 시험 또 시험이었다. 어쩜 덕수궁에서 열린 미술대회에 나갈 때 크레용이 없어서 못 갔던 애가 그 친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럴 때 왜 드는 것일까. 미니 스커트가 한창일 때 그 애도 함께 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녔을 거야. 요즈음 유행하는 핫 팬티처럼 모두들 미끈한 무우 다리를 내놓고 다녔었지. 그러다가 판탈롱 수우트라고 나팔 바지도 입었고…  아마 그 애도 그랬을 거야. 그때 여자애들은 다 그랬으니까. 모노톤의 빛 바랜 흑백사진 몇 장이 휙 지나가는 듯 하다. 


 갑자기 얘, 영자야, 하고 부르고 싶어졌다. 아마도 순이 아니면 옥자, 아니면 영희, 그럴지도 몰라. 갑자기 반가움에 와락 안아 주고픈 충동을 느낀다. 작고 동그스름한 그 얼굴이 어린 시절의 얼굴로 돌아가서 오버랩 되어 아주 귀여운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내 얼굴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개장을 만든다며 동네 인부를 불러 일을 시키고는 앞마당 한 켠에 벽돌로 쌓아서 기와 지붕까지 얹어 아주 튼튼하게 만들고 마루까지 놓아주었다. 그 일은 하루에 끝나지 않고 아마도 사흘은 걸린 것 같았다.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시킨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품삯을 아주 후하게 치러주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저 할아버지가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구나.” 라고 하셨다. 그때 내겐 그게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개장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거며 단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그 말에 품삯을 지나치게 많이 주시는 게 아닐까 왜 그러셨을까 의아했었다. 그러나 나도 그 때의 아버지 나이 만큼이나 할머니가 된 이제서야 그 맘을 이해할 것만 같다.


 다시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돌아온다. 지하로 내려서자 마자 손 전화로 슬라이딩 도어에 써 있는 싯귀를 찍고 있는 중년여인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늦가을 청량리/할머니 둘/버스를 기다리며 속삭인다/"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유자효(1947-) ‘인생’)(2011)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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