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카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카나다사장, 전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카나다문협회원.현 GTA한가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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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의 역사 500년-신탁통치와 남-북에 다른 이념국가 건국
samkang39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일본이 패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한반도는 38선으로 남북이 갈리어 두 쪽이 났다. 미국과 소련 양대 강국이 한반도를 반쪽으로 나누어 각각 3년간 신탁통치 군정을 실시하였다. 


통일이냐 분단이냐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남과 북을 오가며 안간힘을 다 하였으나, 강대국들의 언덕을 넘을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 – 공산주의 각각 다른 이념의 나라가 한반도에 건국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는 세계 역사의 이념전쟁 격전지로 변모하였다. 


 미국은 1945년 8월 13일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소련군의 한반도 전역 점령을 막기 위하여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고 이를 소련에 통고하였다. 소련군은 동년 8월 21일 원산에 상륙, 평양에 소련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미군은 9월 8일에 인천항을 경유, 서울에 진주하였다. 1945년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개국 외상회의가 개최되었으며 미국의 제안으로 한반도에서 신탁통치 실시를 결정하였고,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합의문 <한국 문제에 관한 4개항의 결의서>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미•소 공동위원회는 신탁통치를 포함한 한국문제 토의를 위한 1946년 1월 16일부터 2월 5일까지 예비회의, 3월 20일 덕수궁에서 본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진전 없이 5월 6일 무기한 휴회를 선언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 5월 21일 공동위원회가 재개되었으나 협의대상 단체 선정문제를 놓고 양측의 의견이 맞서고 2차에 걸친 공동위원회는 결국 1947년 8월 12일 결렬되었다.


유엔 정치위원회에서 선(先) 정부 수립•후(後) 외국군 철수를 주장한 미국과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한 소련이 날카롭게 대립하였으며,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양 결의안을 놓고 토의한 결과 소련의 반대결의안을 부결시키는 대신 미국 측의 제안을 찬성 43표, 반대 6표, 기권 4표로 채택하였다.


결국 1947년 10월14일 제2차 112번째 국제연합 총회에서 찬성 43표, 기권 6표로 결의안이 가결됨으로써, 1948년 3월 31일 안에 UN한국임시위원단(UNTCOK;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의 감시하에 한국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호주•캐나다•중화민국•엘살바도르•프랑스•인도•필리핀•시리아•우크라이나 공화국 등 9개국 대표로 구성된 'UN한국임시위원단'을 발족시켰다. 


1948년 1월 12일 서울 덕수궁에서 첫 총회를 가지고 그들의 임무에 착수 하였으나, 1월24일 동 위원단의 북한 입장이 소련군정당국에 의해서 거부되자 소총회에 이를 보고하였다. 소총회는 2월 26일 동 위원단이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해서 그 과업을 계속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북의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민주국가 수립을 위해 대책을 논의한 회담을 말한다. 1948년 4월 19일부터 시작된 이 회의는, 김구, 김규식 및 김일성, 김두봉과 같은 남북의 명망가들이 다수 참석하여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듯하였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대한민국 건국

 


UN한국임시위원단(UNTCOK)의 감시 아래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남한에서 실시되었다. 제헌국회 총선거: 총 의석수 198석. 1948년 5월 31일 월요일 아침 열시가 조금 지난 때, 국회의사당(중앙청 홀)에 모인 198명의 제헌의원들은 제1차 회의에 들어갔다. 국회선거위원회 사무총장 전규홍(뒤에 국회사무총장)의 성원 보고에 이어 노진설 국회선거위원장(뒤에 심계원장)이 최고연장자인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자 의원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이승만은 "나는 먼저 우리가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제헌국회는 5월 31일 이승만을 초대 국회의장으로, 신익희를 부의장으로 선출하였다.


 6월 초, 국회헌법기초위원회에 헌법 초안이 제출되었다. 헌법 초안은 이승만도 포함한 모든 정파들이 동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는데, 6월 15일 이승만이 돌연 기초위원회에 나타나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으며 7월 20일 제헌국회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에 의한 제1대 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초대 대통령으로, 이시영 후보를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에 반대한 김구, 김규식은 불참했다.


 대통령 이승만은 8월 15일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이와 함께, 이승만은 제1공화국 제1대 대통령 취임식을 치렀다. 이로써 미군으로부터 권력을, 임시정부로부터 한국인의 법률상 주권(主權)을 넘겨 받았다.

 


북한에 인민공화국 건국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반도(조선반도)는 북위 38도를 경계로 이북 지역을 소련군이 맡아 군정을 실시하였으며, 1946년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여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48년에는 조선반도 총선거에 기초하여 김일성을 수상,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조선로동당, 천도교청우당, 조선사회민주당이 있는 형식상의 다당제 체제이지만, 사실상 조선로동당의 1당 체제이며, 특히 국가주석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 그리고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이 차례로 세습 집권했다. 


현재 내세우는 정치이념은 주체사상과 선군정치(先軍政治•군이 앞장서는 정치)이다. 주체사상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 개정에서 최초로 등장하였고, 1992년 4월 헌법 개정 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체계를 마련했다. 


1998년 사회주의헌법 개정 때 공산주의 문구를 전부 삭제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국방위원장이 자국의 실권자임을 명시하였다. 2013년 6월에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하면서 공산주의 강령을 삭제하고 주체사상으로 대체하였으며, 김일성 가문의 '백두 혈통' 계승을 명문화하였다.


설마 한반도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이렇게 꼬여갈 줄을 누가 알았으랴! 남북에 세워진 두 국가가 서로 한 피의 형제국이 아니라, 철천의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는 비극의 역경이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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