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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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해설(19)-우회로(迂廻路)가 지름길이다
samkang39

 

손자병법 일곱 번째 과목이 군쟁편(軍爭篇)이다. 군쟁이란 무엇인가? 군사들이 유리한 위치를 재빠르게 점령하도록 움직이는 기동성(機動性)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우회기동(迂廻機動) 및 최종적 전투배치(戰鬪配置)를 위하여 움직이는 일체의 과정을, 옛날의 전법에서는 군쟁(軍爭) 이라고 정의하였다. 영어로는 Armed Movement & Contest 라고 번역할까?  


손자는 군쟁이 가장 어려운 작전 중의 작전이라고 했다. 군쟁은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도록 군부대를 움직이고 배치하는 것이기에, 사전에 지세나 방향이나 여건 등을 잘 파악해야 한다. 


말을 강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했다. 하물며 죽을지 살지를 모르는 전쟁터로 병사들을 끌고 간다는 것은 말에게 물을 먹이는 것보다 열 배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지휘관은 서둘러서도 안 되고 강제로 해서도 안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바람처럼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숲처럼 조용히 있어야 하고, 또 횃불 같은 기세로 달려들어야 하지만 태산처럼 꿈적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기동을 함에는 번개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신속성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려면 평시에 계속적으로 그러한 훈련을 실시하여, 기민하고 민첩한 병사들로 키워야 한다. 특별히 적군에게 아군의 기동성을 내보이지 않게 우회기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작전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왜군함 700척이 나타나 동래 쪽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봉화가 들어왔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일(李鎰)이 순변사로 임명을 받아 상주로 가게 됐다. 직속 부대 무사 300명을 뽑아서 별정 특공대를 편성하려고 했는데, 막상 명단을 보니 모두가 칼이라고는 잡아본 적도 없는 서생(書生)들이었다. 이일은 출동명령을 받고서도 3일이나 머뭇거리며 출발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핫바지들을 데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 순변사로 임명을 받은 신립(申砬)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쓸만한 병사를 모집했으나 따라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책을 논의하려 유성룡(柳成龍)의 집을 찾아 가니 건장한 무사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신립은 기분이 좀 나빴지만 유성룡이 내주는 무사들을 이끌고 상주로 내려왔다. 결국 이일과 신립 장군은, 조총을 앞세우고 물밀 듯이 진격해 들어 오는 왜군들에게,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당파싸움에 눈이 어두웠던 조선 조정은 그렇게 무능했고 그렇게 썩어 있었다. 


 당시, 조선사회의 병역비리는 말할 수 없이 뿌리가 깊어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만연해 있었기에 우리 군대는 실로 군대도 아니었다. 왜군이 23일만에 서울을 완전히 점령할 때까지, 우리 군대는 전투 한 번 제대로 못하였던 것이다. 


군복을 입었다고 군인이 아니다. 군쟁(軍爭) 훈련을 통해서 군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조선 군대는 왜군에게 대적할 만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못했다. 


필자가 군대생활을 할 때에 CPX(Command Post Exercise)라는 훈련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공군에 입대를 하여 기본과정을 마치고 평택 비행장 305부대에 배치되었다. 그 부대에 배속을 받은 지 며칠 만에 갑자기 CPX가 걸렸다. 모든 장병들은 전원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부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부대장 왈, “지금 수송기 한 대가 우리 비행장에 도착할 것이다. 나의 (대대장) 사무실 책상 4개와 모든 의자들을 30분 이내에 그 비행기에 실어야 한다. 알겠나? 즉시 실시!”


그 때에 나는 속으로 대대장님이 미쳤나? 왜 갑자기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인가? 저녁때가 되었다. 또 집합이었다. “아까 그 비행기가 30분 이내에 도착한다. 활주로에 나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 책상과 의자들을 원상 복귀한다. 실시!” 또 미친 짓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이 CPX란다. Command Post Exercise다. 지휘관의 명령을 어떻게 빨리 확실하게 수행하느냐 하는 훈련이란다. 군대란 그런 것 아닌가? 그래도 그런 훈련은 현대식 군대의 훈련이다


 옛날 전투부대는 거의 모두가 보병이 아니면 기마병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1:1로 백병전을 하여 적을 많이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병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기동과 전투배치는 승리를 이끄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 ‘우회로가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다. 적군이 빤히 알고 있는 길로 부대를 이동하거나 배치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적에게 바치는 일이다. 그렇기에 부대장이나 지휘관은 항시 우회적으로 부대를 이동시켜야 한다. 돌아가는 그 길이 먼 길 같지만 전투를 위하여는 곧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평양으로 오는 가장 빠른 길은, 영주에서 요하 하류를 거처 요동성이나 안시성을 거쳐 고구려로 들어와 오골성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는 것이다. 이 길은 수양제와 당태종의 공격로 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고종의 명령을 받고 출동한 이세적은 요하 중류를 건너 신성으로 들어갔다. 행군 거리로 따져보면 꽤 멀리 돌아가는 거리다. 신성을 통과한 다음에도 오골성을 지나는 빠른 길 대신 국내성을 지나는 우회로를 통해서 남하하였던 것이다.


지금같이 무전기나 전화 시스템이 없던 때라 그 큰 부대가 그렇게 우회로를 이용하여 이동을 하였지만 아무도 이러한 정보를 평양성에 알릴 길이 없었던 것이다. 


과거 수양제나 당태종은 모두 요동성에서 오골성, 압록강을 잇는 경로로 이뤄졌기 때문에, 고구려의 수비도 그 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세적의 군대는, 이번에는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고구려 군을 피해서, 국내성으로 돌아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동 서쪽에 집중 배치된 고구려 군은 요동 동쪽의 빈 틈을 이세적 군에게 내준 것이다. 우회로를 이용해서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는 파죽지세로 함락을 당한 것이다. “늦게 출발을 해도 먼저 도착한다”는 말이 있다. 고구려는 그렇게 망한 것이다. 


6.25전쟁에서도 인천상륙 작전은 우회로를 이용한 작전이었다. 인민군의 전 병력이 낙동강 전투에 집결되어 있을 때에, 맥아더 장군은 엉뚱하게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 인민군의 낙동강 집결이 포위를 당하게 하는, 인천상륙 우회작전을 펼친 것이다. 실로 인천상륙 작전에서 아군과 UN군이 서울로 진격해 들어올 때에 인민군들의 큰 저항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인민군들이 맥아더 장군의 우회로 작전을 얼른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 작전 때에 맥아더 장군은 우회로 전법으로 북한군을 홀려 놓았다. 처음에는 원산항으로 상륙을 할 듯이 하여 인민군들이 원산 쪽으로 몰려 갔는데, 다음은 아산만으로 제스처를 썼다. 인민군들이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천으로 상륙을 한 것이다. 3회에 걸친 우회로 제스처에 북한군은 완전히 맥아더 상륙군에게 대적할 수가 없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다.


고구려가 망하게 된 이세적의 작전이나, 서울을 재탈환한 인천상륙 작전은 모두가 우회로를 잘 이용한 명장들의 지혜로운 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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