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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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신화의 주역인 박정희와 박태준....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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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신화의 주역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포철신화의 주역인 박정희와 박태준....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박정희와 경남 양산이 고향인 박태준은 박태준의 육사 생도 시절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가 수학을 잘하던 박태준을 예뻐하며 인연이 시작된다.시간이 지나 박정희가 5.16을 준비하던 중박태준을 부른다.

 

"임자는 일에서 빠지지잘못 되었을 때 내 가족들이나 돌봐줘"

 

박정희에게는 박종규김종필김재규차지철이후락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하가 많았다.그러나이 대목에서 박정희에게 박태준이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답이 나온다.

 

박종규와 차지철....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의 양 옆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던.... 후에 각각 집권 전후반기 경호실장을 맡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보다도 박정희에게 박태준이란제자이기에 앞서 가족들을 돌봐달라고 할만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박태준은 박정희의 말을 어긴다5.16 당일박태준은 자신의 스승이자 주군이 있는 5.16 상황실로 향한다항명은 항명이지만 스승 박정희를 생각하는 박태준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박종규부터 김종필까지 모든 측근이 정치로 들어간데 반해 박태준은 기업체로 나가있었다.

 

그것을 박정희가 명령했는지 박태준의 선택이었는지는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박정희는 얼마 안되어 '종합제철소'라는 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은 사람도 들어야하지만 나라의 산업을 일으키는 필수 산업이다.또한 어떤 분야에도 연관되는 기반 산업이다.

 

그러나당시 한국이 종합제철소를 만든다 했을 때....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거나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나라도,사람도 하나 없었다.경제지표니 뭐를 봐도 도대체 비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꿈의 실천은 시작되었다.원래 제철소는 1차 후보 지역은 포항이 아니었다.울산에 제철소를 만드려던 계획은 '부적합'하다는 보고가 올라오면서 수포로 돌아간다.그러나 박정희에게 아니 대한민국에 '제철산업'은 반드시 필요했다.

 

백방으로 뛰었다.드디어 미국에서 신호가 왔다.

 

먼저 공장부터 지으면 해외 철강 차관단이 돈과 기술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한다박정희는 이 때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떠올린다.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가진젊은 그를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삼은 것이다.

 

장소는 포항그것도 모래밭으로 유명한 영일만.박태준은 회상하기를 저녁까지 작업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 작업한 것들이 모래바람 때문에 사라져버리거나 엉망이 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가 브리핑을 받기 위해 앉아있으면 눈과 코그리고 목에 모래가 들어가 재채기를 하지 않고는 못 버티는 곳이 바로 지금의 포항 영일만이었다고 회상한다.그렇게 장소는 마련이 된다이제 기술이전과 돈이 남았다.

 

그런데 약속을 했던 철강 차관단에서는 한국에서의 종합제철사업에 회의를 느꼈던지 돈을 못 꿔주겠다고 약속을 뒤집어 버린다.

 

얼마나 국력이 약했으면 그제와서 약속을 뒤집었을까.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박태준은 망연자실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박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느냐고 핀잔 듣는게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박정희 못지 않게 신경을 쓰며 대통령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아 추진한 사업이 자기 손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태준은 귀국 전에 머리를 식힐 겸지인이 소개해준 하와이의 휴양지에 들린다.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박태준이 불현듯 생각해 낸 것이....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이 남아있었다.이 중에는 농업 분야에만 쓰기로 약속한 돈이 있었는데,희망은 그 돈이었다. 

천재적 사업가 박태준은 '종합제철소'가 없으면 대한민국 산업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서울로 날아온 박태준은 박대통령에게 자신이 설득하겠다며 일본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박정희는 박태준을 신뢰했고 그는 일본으로 날아간다.이곳에서 박태준은 대일청구권자금 중 농업에만 쓰기로 했던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술이전이었다.장소가 마련되고 돈이 있어도 기술이 없으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기 때문이었다.박태준은 일본의3대 철강회사 오너를 쫓아다닌다.

 

그들은 박태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휴가까지 떠나지만 박태준은 휴가지로 쫓아가는걸 마다하지 않았다.결국 일본인들은 집요한 박태준에게 기술 이전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후에 일본의 한 정치인은 잠재적으로 경쟁국을 키우는 리스크 보다 가까운 나라에서 철강 산업과 경제가 일어났을 때 인접국으로써 얻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한다.그렇게 박태준은 외부 환경을 '제철 사업소 성공'으로 한발짝 다가서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안에 있었다.하나는 허허벌판인 영일만에 기술자들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는 것,하나는 제철소 기반을 다 마련해놓으니 정치하는 사람들 중 떡고물을 바라고 얼굴 디미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숙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제철소 부지를 마련할 때부터 언론 등의 공격을 받은 것은 공장이 돌아가기도 전에 "근처에 아파트부터 짓느냐"는 것이었다.결과적으로 이것은 타지역 출신의 유능한 엔지니어사원들의 처우 문제에 있어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얼굴을 디미는 정치인 문제였다이는 사업가 박태준을 괴롭게 했다.박태준은 박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사업을 추진했던 인물이었음에도 정보기관으로부터 여러번의 가택 수색을 받았다고 말한다.

 

괴로워하던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너무 괴로우니 사표를 내겠다는 말을 건네고 이에 박정희는 "종이 마패"를 써주게 된다.

 

대통령 박정희가 "박태준을 건들면 누구든 가만히 안 두겠다"는 뜻을 종이에 또렷이 적어준 것이다이와 함께 포항제철의 인사 및 경영에 대한 전권을 박태준에게 준다이 때부터 박태준의 철강 신화는 시작된다.

 

우선 박태준은 사원 채용에 있어 철저한 공개 채용과 투명화를 추진한다그에게 포철은 산고를 거쳐 직접 태줄을 끊어 키운 자식과 같은 사업체였다.

 

그런 사업체에 더러운 청탁이 묻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박정희가 써준 종이 마패는 박태준에게 가장 탁월한 무기이자 박대통령에게 진 빚이었다지금 포스코 회장은 바로 박태준이 실시한 포철 공개채용 1기다.

 

그런 박태준 회장은 포철에서 첫 쇳물이 나올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그리고,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에 돈을 꿔주는 것은 헛 짓'이라는 보고서를 냈던 미국의 박사는 "내 보고서는 틀린게 없다지금 쓰라고 그래도 똑같은 내용이다그런데 내 보고서는 박태준이라는 인물이 틀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운영 교수가 진행하던 '호외'라는 프로그램의 '박정희와 박태준편을 회상하며 썼습니다>

 

스승 박정희 제자 박태준이 아니라 박정희 경제개발의 선봉장에 선택되고 그 역할을 한 사람이 박태준이었다.박정희는 군인 박태준을 군이 아니라경호실이 아니라공화당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체에 두었다.

 

박태준이라는 떡잎을 알아본 박정희의 안목과 종이 마패를 써줄 정도의 신뢰감 그리고 자신이 모시던 상관의 야망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무조건 적인 충성이 아닌 자기 일에 자신감을 더 크게 생각하고 일했던 박태준.박정희는 자신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포항제철맨 박태준최연소 도지사 고건 같은 인재를 발굴해낸 사람이라 유능하다.

 

박태준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박정희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의정이 죽으면 손님이 없고 영의정 집 개가 죽으면 손님이 바글바글 하다는 속담처럼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박정희에게서 덕을 보고 출세했음에도 어린 박근혜 남매를 모른척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소문에 의하면 박태준은 자신이 모신 상관의 자녀들을 마음으로 돌봐주었던 몇 안되는 사람이라 전해진다.

 

5.16이 있기 직전

"임자는 일에 참여하지 말고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라고 했던 스승 박정희의 말을 수십년이 지나 잊지 않고 실천한 사람이 바로 철강왕 '박태준 회장'이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196,70년대 우리 대한민국의 실화이다. -

 

[출처] http://blog.naver.com/greenmou/100005166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