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sunggi
미시사가 거주
TD Bank 전산직 근무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5 전체: 72,348 )
자식에 대한 사랑은 부모의 여유에서(상)
leesunggi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게 좀 슬퍼요. 오빠도 선생님이랑 똑같이 의지하지 말라 그랬어요. 근데 오빠한텐 진짜로 가까운 아빠랑 엄마가 있거든요. 남들은 의지할 부모나 가족이 있으니 보험처럼 든든한데 전 없잖아요. 있는데 의지하지 말아야지 하는 거랑 없어서 못하는 건 다른 거 같아요. 전 그냥 토닥토닥 부모의 이유불문 무한사랑이 받고 싶네요. 근데 이번 생에선 불가능한 거니 그냥 씁쓸해요. 지금 말하는 건 해결책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공감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풀이 정도인 것 같아요"


캐나다로 워홀을 온 29세 처자가 보낸 마음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고, 누구와 대화할 사람이 없을 때, 힘들고 지칠 때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안온한 가족이 주변에 없을 때, 혼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슬픔의 감정을 가져온다. 


- 왜 외로움이 슬픔으로 다가올까?


소극적인 의미로 외로움이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보면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조건에 대한 아쉬움이 만든 상태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있지만, 그가 자신모습을 그대로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상대에게 자신의 어린 모습을 드러내놓기 창피할 때 혼자 남아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어리광을 부려도 될 사람, 더 나아가서 의식주를 신세 져도 될 사람으로 진전하게 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엄마, 아빠다. 처자가 슬픈 것은 아빠 엄마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두 분 다 살아계시지만, 부모는 딸에게 큰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다고 해도 표현이 없거나, 와 닿지 않는 사랑만을 준다면, 부모가 없는 것과 같은 효과를 딸에게 남겨준다. 


부모가 줄 수 있는 부모성(Parenthood)은 아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소가 된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부모가 일찍 떠나셨다거나, 이혼이나 별거 등의 사유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이 세상에 없다면, 차라리 마음을 정리하기 쉽다. 하지만, 다른 곳에 살고 있으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마음 정리가 어렵다. 


같이 살 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 같이 가정을 이루고 살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모가 이혼으로 서로 헤어져서 산다면, 스무 살이 넘은 딸은 미련이 남는다. 재결합해서 딸에게 좋은 가정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하는 마음은 딸이 부모를 바라볼 때 애정과 증오의 감정이 생겨나게 한다. 


딸은 부모가 해주는 밥과 이부자리를 얻고 싶지만, 집에 가면 언제나 혼자이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더 복잡한 것은 부모와 한지붕 아래 살면서 딸이 느끼기에 부모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이다. 부모는 딸에게 의식주의 공간을 제공하지만, 정서적 유대는 없거나 왜곡되어 있다. 아버지 같지 않은 아버지, 어머니 같지 않은 어머니. 


자식에 대한 사랑도 부모의 여유에서 나온다. 과도한 사랑, 부족한 사랑은 둘 다 여유 없는 부모에서 기원한다. 여유는 부부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부가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한다면, 당연히 마음속에 여유가 생기고, 딸을 편안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배우자에게 불만을 가진 부부는 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지나치게 무관심한 부모가 되어버린다. 이때 딸은 혼란스럽게 된다. 딸로 살아야 할지 아빠의 아내로, 혹은 엄마의 남편으로 살아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린 딸은 판단력이 부족하다. 자신내부에 있는 아빠나 엄마를 차지하고 싶은 욕구에 이끌려서 딸로 살다가 부모의 잃어버린 배우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부모의 기대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는 진정한 이유는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역기능적인 부부관계는 딸에게 조건부 사랑을 먼저 가르치게 된다. 딸은 아빠나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가족해체를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자신이 빈 공간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다. 


딸의 행동은 지나치게 착하거나 지나치게 문제아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 결말은 허전하다. 딸이 효녀가 된다고 해도 가정은 화목해지지 않고, 문제아가 된다고 해서 부모가 경각심을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딸에게 화목한 가정은 도달할 수 없는 무지개다. 딸은 슬픔에 잠기게 되고 그것이 만성화되면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 가족이 얼마나 외로움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자신을 공감해주는 부모에 대한 기대는 외로움의 원인이 된다. 외로움이란 상대적이다. 딸은 자유롭게 지내고 싶을 때 부모의 잔소리를 간섭으로 여기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 부모의 무반응을 외로움으로 이해한다. 정서적으로 이해 받지 못하는 딸에게 물질적 혜택은 덜 중요하다. 


반대로 부모로서 자식에게 가장 미안해 하는 것은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물질적 부족을 크게 생각하는 부모는 생존 스트레스에 눌려서 부모의 정서적 기능을 소홀히 한다. 생존스트레스란 반드시 소득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소득이 많아도 일터에서 스트레스가 큰 경우가 있고, 소득이 적어도 한가한 경우가 있다. 


생계위협을 느끼지 않을 정도에서 일터 스트레스가 적은 부모는 자녀에게 정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생긴다. 부모란 노력하는 존재이자 철이 드는 존재이다. 부모의 본질은 나름 문제가 있는 인간이다. 가정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버거운 인간이 있는가 하면, 정서적 공감도가 떨어지는 인간도 있다. 


딸을 외롭게 하는 부모는 경제적 안정과 심적인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그의 생존조건에 기인한다. 부부간에도 공감도가 떨어질 때 딸은 자신을 공감해주는 부모성을 못 누리게 된다. 딸은 방문을 닫고 혼자서 답답해 하지만, 한편 거실에 있는 부모는 삶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부모가 딸의 외로움을 해소해주기에는 그들에게 삶은 힘든 과정이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고,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과제만 남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