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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맞이 하면서
leeseungo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추념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이 끝나면 바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서의 중추적인 원리이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수난을 묵상하고자 한다.


세상을 지으신 주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백성들은 그를 배척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사악한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십자가에 처형함으로써 인간은 최악의 일을 저질렀다. 처참하게 처형 당하면서도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여기서 인간들도 원수를 위해 기도 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본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하시더라”(눅 23:24).


또한 찬양을 받으실 주님께서 죽으실 때마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주께서 낮아지신 헤아릴 수 없는 수치이다. 강도일망정 주님의 대속적 희생을 믿고 회개한 강도를 구원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관한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차별 없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마리아는 아들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배척을 당하며 심지어 동족에게 미움을 받아 처형 당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볼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비애를 느꼈겠는가? 이를 아신 주님께서는 극형을 당하시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장래를 생각하고 믿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한 것은 얼마나 큰 효도이며 애정의 표현인가 생각해본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다 하시고 또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 27)


주가 우리 대신 죽음은 육신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까지 하신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한 주님은 이것이야말로 모든 일 중에 가장 끔찍한 일이며 종말이기에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도록 얼마나 고뇌에 잠길 것인가 생각해 본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천지를 창조하신 이가 십자가상에서 목이 말라 입술이 타며 목마르다 외치다니! 이 무슨 역설적인가? 이는 그의 인성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극렬한 열기 속에서 당하신 영혼의 고뇌라고도 할 수 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셔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상에서 육신과 영혼의 고뇌를 받으셨으니, 이는 우리들이 받을 고뇌를 대신 받음으로써 고통 중에 있는 우리들을 얼마나 동정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성육신을 통해서 친히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담당하셨기에 우리의 비참함과 고뇌를 모른체 하시지 않음을 보여주므로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 본다.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28).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의 고난을 통해 하늘로서 땅에 이루고자 하신 모든 일이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나타내었으며, 죄인들이 구원받기에 필수적인 율법의 요구가 다 이행되었으며, 구속의 온전한 값이 다 지불되었다. 따라서 주님은 사람의 손과 사단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서 고통이 다 끝나고 성육신의 목적이 달성되어 구속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당당한 선언을 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으므로 구속사건은 드디어 완성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지어주신 것이다(슥 12:1). 따라서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은 하나님께로, 육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전 12:7).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드린 것은 당초 원수들이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 곤고한 자로 판단한 것에만 반하여 아직도 그의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아들이심을 증거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아버지와 다시 회복되신 구주로서 영원히 거할 피난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결론적으로 갈보리 십자가의 수난은 표면적으로는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십자가에서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하는 사단의 사악한 증오와 우리를 위한 주님의 대속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죄의 진노를 발하심으로써 신성과 공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으로는 죄 많은 인간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대신 죽게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로 우리들에게 영생의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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