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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십자가 사랑
leeseungo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대부분이 천국의 소망 갖기를 원하나 실제로 이 땅 위에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역경과 고난을 당할 때에 예수님의 위로 받기를 원하나 예수님과 같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 것이며 또한 항상 주님의 은혜 받기를 원하면서 주님과 같이 고난의 쓴 잔을 마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점의 죄도 없으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시고 죽게 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죽은 지 3일만에 부활 승천케 하셨으니 이 고난의 십자가 사랑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다. 


한 점의 죄도 없으시면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소유자이신 분이 죄인인 인간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 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목숨까지 내놓으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기적에 경탄은 하지만 자기의 목숨을 바쳐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할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고 항상 자기들의 세상 속에서의 유익과 소득만을 생각하는 육욕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을 사랑함으로써 세상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영적인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럼으로 만일 세상 속에서 훌륭한 덕과 열렬한 경건 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자기 사랑의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 24)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만이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고 또 묵상하여 하나님 사랑에 감사 하면서 오직 우리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무조건 믿고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복음을 깨닫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 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니라” (딤전2: 4). 하나님께서는 감람산의 한곳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죽음은 자신의 죄 값으로 받게 되는 형벌 임에도 자신은 어떤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죽을 이유가 전혀 없음을 아시면서도 하나님 명령에 따라 십자가 상에서 죽음으로 순종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갖고 계시므로 인성적인 면에서 생각하면 십자가 상에서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시겠는가? 오죽하면 이 고난의 쓴 잔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오소서, 라고 요구하셨을까?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대단한 순종임을 보여주고 있다. (눅22: 42 참고).


욥기에서도 욥 자신은 잘못이 없고 의롭다는 자신의 뜻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과의 변론을 요구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피조물인 네가 감히 창조주의 능력과 권능 그리고 세상 만물을 통치, 역사하시는 비밀을 알지도 못하면서 또한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론만을 요구하고 있느냐? 하시니 그제서야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흙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개개인에게 청결한 마음과 양심을 주셨다. 그리고는 각자 양심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영접하거나 아니하거나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시고 개인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셨다. 


예로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 옆에 두 강도가 각각 십자가에 달렸다. 한 강도는 주님을 영접하고 한 강도는 주님을 거절하였다. 이들은 악행만을 일삼아 살아왔기에 회개하기 이전 이후에도 선행의 실적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나는 즉각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을 믿고 받아드렸으며 다른 하나는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희생을 비방하고 거절하였다.


즉 우리구주의 대속적인 희생에 대한 강도들의 각각의 반응이다. 회개란 우리자신의 잃어버린 상태를 인정하고 깨닫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파멸 상태를 발견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바 양심적인 행위인 것으로 죄인 중의 죄인 강도도 순식간에 양심에 따라 구원도 받게 되는 것이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 42-43). 


반면에 끝까지 회개 않는 강도와 같이 청결한 양심에 화인을 맞은 모든 인간들은 도저히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이들을 고통의 처소인 불꽃 연못에서 영원히 살게끔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이 죽음의 문턱에 놓여있다면 당신의 영혼이 어느 곳에 가기를 원할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인정하고 인간은 죄성의 뿌리를 갖고 있어 언제든지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어있어 항상 기도와 간구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인간들의 영혼을 심판 하시는 공의로우시며 궁휼이 많으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무조건 순종함으로써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14: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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