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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집
leesangmook

 
 
분계선 북쪽에서

 

 

남쪽에 살 때 구경을 왔던 곳
30여 년 후
분계선 북쪽에 서 있는 나를
열심히 구경하는 사람들 있네
남쪽 병사들이 저 쌍안경으로
비디오를 찍고 있다고 하네

 

저기 ‘평화의 집’ 너머
산들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서울
손자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형은
내가 여기 왜 서있는 지를 알지 못할 거네

 

“통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확성기는 힘주어 소리치고 있지만
광복 50년, 여전히 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검은 쌍안경 속 저 눈초리들.

 

- 1995년 8월


 
 

 

 

 

 

남북정상회담이 며칠 남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도착하는 북측 구역 ‘판문각’까지 남한 생중계팀의 진입이 허용됐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판문각’에서 회담장소인 남한의 ‘평화의 집’으로 그는 걸어서 이동할 거란다.


내겐 ‘판문각’이나 ‘평화의 집’이 낯설지 않다. 23년 전이지만 추억은 풍화를 거부한다. ‘판문각’에서 열린 통일 심포지움에도 방청객으로 참석했고,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평화의 집’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때 느낀 감회를 적은 게 인용된 시다. 시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나 분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작년 11월 북한병사가 분계선을 넘다가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분계선 북쪽에서 경축행사가 열렸는데 전면에 건장한 청년들이 열 지어 서있는 것은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남쪽으로의 이탈을 예방하기 위한 거였다. 분계선 남쪽 병사들 역시 이쪽의 동향을 주시하고 또 어떤 인물들이 나타났는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이어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경축행사를 크게 벌였다. 분단의 실체 파악은 다수 민족 구성원의 화두가 아닌가. 글을 조금 쓰는 사람으로서 그 책무는 북한 방문을 주저치 않게 했다. 비교적 편향이 심하지 않은 통일운동 단체의 일원으로 방북을 하게 된 것은 민족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핑계가 될 수도 있겠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어쩐지 피날레가 괜찮을 거 같다. 배우들의 캐릭터들이 상식파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문대통령은 굴신(屈身)이 자유로운 성격이다.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장애인 선수를 격려하기 위해 얼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다. 독재자로 알려진 김위원장 역시 정의용 특사가 대통령 친서를 건네려 하자 마주 걸어나와 접수를 했다. 역시 굴신(屈身)의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두 정상 간에 코드가 잘 맞아 남북이 같이 살 길을 찾았으면 한다. 


가장 큰 고비는 북미정상회담이다. 트럼프의 한 마디가 역사를 뒤바꾼다. 그는 뻥을 쏟아내는 캐릭터다. 북핵문제 해법을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한다. 상대방에게 충격적인 공갈을 한 방 먹인 다음 협상의 고지를 차지하는 식이다. 대북제재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건 그래서다. 그게 먹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협상의 결과물에 연연할 수밖에 없을 게다.


이번에 북미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요동칠 것이다. 남한의 경제도 활로를 찾을 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도 기사회생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두려워하는 시점에 와 있다. 앞으로 점점 견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더 이상 매달릴 여유가 없는 장애물일 수도 있지 않은가. 평화협정을 맺고 상호 경제교류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베트남처럼 자유시장경제로 바뀌지 않겠는가. 미국과 전쟁을 벌인 베트남은 현재 중국에 등을 돌리고 미국을 수용하는 자세다. 


북한 역시 개방이 되면 장차 어떤 관계로 돌아설지 어떻게 알겠는가. 미국이 속으로 노리는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장차 어떻게 갈등할지 다만 우리는 남북이 서로 평화스럽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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