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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코카의 9월
leesangmook

 

 지체할 수가 없었다. 친구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


 “최 장로, 10시쯤 떠날거야. 점심은 거기 도착해서 간단히 먹고 집으로 찾아갈게. 아마 1시 반쯤 될거야.” 


 Bracebridge는 토론토에서 운전시간만 2시간 거리. 점심을 사 먹고 가겠다고 한 건 친구의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불편할 정도가 아니라 온몸이 류마티즘의 공격을 받고 혼자서는 서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Bracebridge는 HW11으로 북상해서 오릴리아를 지나 40분 정도 더 달려야 한다. 


 보름 쯤 지나면 단풍시즌이어서 안성마춤인데 아픈 사람이 먼저라는 아내의 채근을 받게 된 것이다.


 큰 플라자에 주차했을 때 마침 일식집이 눈에 뜨였다. 헌데 상호가 생뚱맞다. 퓨전 일식 스테이크하우스라고 써 붙였는데 상호는 ‘와보라(Wabora)’라고 돼 있지 않은가. ‘모모야마’니 ‘도쿄스시’니 ‘마사무네’니 하는 통상의 일본 이름이 아니지 않는가. “한국 분이세요?” 입구의 여인이 대뜸 묻는다.


 상호는 그럼 ‘와서 보라’라는 한국말을 줄여서 붙였다는 겐가. 친구는 한 10년 근처의 외딴 곳에서 주유소를 경영해왔다. 실은 아들의 비즈니스인데 형편상 돕다 보니 토론토로 내려와 은퇴생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는 중이다.

 

 

▲최종근 장로의 주유소                                            ▲한인이 경영하는 일식집 ‘와보라’

 

 

 류마티즘이 그렇게 무서운 병이라는 것은 등의자에 누워 있는 친구를 보자마자였다. 손을 어깨에 대려고 했더니 질겁하지 않는가. 온몸이 대기만 해도 아프다는 거였다. 수프도 숟가락으로 떠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인도로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렀다. 아내는 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를 선창했고, 최 장로는 힘없는 목소리로 ‘예수는 나의 힘이요’를 같이 부르자고 했다.


 그게 언제였던가. 무릎에 좋다면서 약재를 사다 준 것은. 그 의사의 주장은 무릎이 건강하려면 켄터키프라이드 치킨 식당에서 버리는 닭의 물렁뼈만 주워다가 갈아먹어도 OK 라는 거였다. 대신 그의 처방은 젤라틴을 미니트메이드 오렌지주스에 타고 야생초의 추출물과 섞어서 마시면 튼튼한 무릎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야생초 추출물이 좀 비싼 편인데 일부러 사다가 몇 번 공급해준 게 최 장로였다. 그렇게 남까지 챙겼던 친구가 자신은 저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됐으니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일식집 ‘와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부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치고 이처럼 큰 규모는 토론토에서도 보지 못했다. 좌석이 250석이고 비한인 종업원이 15명, 한인 종업원이 15명이라고 한다. 인구 고작 1만6천의 시골에 어떻게 이런 큰 식당이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하긴 Bracebridge며 Huntsville은 여름철이면 몰려드는 휴가객들의 메카인 무스코카 관광지다.


 고급 맛집을 찾는 풍속이 번졌기 때문일까. 우리 말고는 점심을 드는 사람들은 모두 백인손님들 뿐이었다.

멀리 Barrie며 Huntsville 같은 소도시의 손님들도 찾아오기 때문에 계절의 구애 없이 10년 동안 짭짤하게 운영해 왔다는 거였다. 


 최 장로의 주유소에는 General Store가 달려 있어 5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름 대목을 치르면 겨울에는 한 달이고 문을 닫고 플로리다에 놀러갔다 올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한인들이 주저하는 것은 애들 교육 때문인데 그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와서 손해 보지 않는 비즈니스라는 거다.


 문병을 갔다가 시골 타운에 자리 잡은 삶의 현장 두 곳을 목격했다.


식당 ‘와보라’는 계속 번창하기를 바라고, 친구의 주유소도 누군가 인수를 했으면 좋겠다. 친구가 하루라도 빨리 큰 병원이 있는 토론토에 내려올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9월의 여전히 따끈한 햇살 속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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