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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상
leesangmook

 

 

 나비의 날개는 연약하다. 하지만 태풍을 불러일으킨다. 익히 알려진 ‘나비 효과’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태풍도 연약한 여자들이 기폭제였다. 


 발단을 말하자면 이화여대다. 게이트가 활짝 열린 것은 JTBC 뉴스룸에서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 PC를 폭로하고서부터다. 그게 작년 10월 24일. 그보다 선발대가 이화여대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특혜를 줬으니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게 10월 7일이었다. 


 지난 3월 8일은 ‘국제여성의날(International Women's Day)’. 달력엔 나와 있지 않다. 연중무휴 남성의 날만 있는 줄 착각하기 쉽다. 헌데 이 역시 ‘나비 효과’의 산물이 아닌가. 러시아 혁명에 불을 붙인 것도 여자들이다. 1917년 3월 8일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방직여공들의 대규모시위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황제가 물러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마침내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러시아에선 이 날이 국경일이고 UN은 1975년 이 날을 ‘국제여성의날’로 선포했다.


 뉴욕에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지난 3월 8일 바로 여성의 날에 맞춰서다. 한국의 소녀상을 벤치마킹한 혐의는 같은 또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녀상은 단발머리로 슬픈 표정이다. 뉴욕의 소녀상은 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이다. 턱을 쳐들고 부릅뜬 눈으로 쏘아본다. 이름도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상’이란다. 


 여성은 특히 처녀일 때가 고비가 아닌가. 잘 풀리면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고 잘못 되면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한국의 소녀상은 처녀 때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 비참한 역사를 고발한다. 뉴욕의 소녀상은 재벌회사의 경영에 더 많은 여성들을 영입하라고 소리친다. 돈이 넘쳐나는 뉴욕주식거래소 인근에 세워진 것은 그래서다. 


 ‘겁 없는 소녀상’을 세운 회사는 State Street Global Advisors 라는 투자회사다. 미국의 대기업 3천 개 중 여성이사가 한 사람도 없는 회사는 25%에 달한단다. 이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소녀상 밑에 “지도자로서 여성의 능력을 아는가. 여성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문장도 새겨 놓았다.


 ‘겁 없는 소녀상’은 거대한 황소상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내닫는 황소(Charging Bull)상'이다. 황소를 길들이라고 투우사로 투입된 게 아니다. 황소처럼 전투적인 기업 마인드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


 하루에 1천7백억 달러 이상이 거래되는 거래소는 1987년 주식붕괴의 대참사가 있었다. 역사상 두 번째 큰 주가폭락으로 미국의 자본주의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해 한 조각가가 35만 불의 사비를 들여 황소상을 세웠다. 자본주의의 자존심을 살리라는 거였다. 황소상은 즉각 인기를 탔다. 자유의 여신상 다음으로 관광거리가 된 것이다. 행운을 원하면 황소의 묵직한 정낭을 만지라는 귓속말도 번졌다. 


 하지만 한국의 소녀상은 어떤가. 빈 의자만 놓여 있는 처량한 신세가 아닌가. 황소상과 같은 파트너나 천적이 있어야 존재감이 더 드러날 수 있는 건 아닐까. 빈 의자 위에 하다못해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라도 올려놓으면 어떨까. 이름도 ‘평화의 소녀상’ 대신 ‘말을 잃은 소녀(Speechless Girl)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은 그 침묵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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