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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용/포…’
leehyungin

 

 이삿짐에 무슨 포를 싣고 다니는가? 별안간 어디에 전쟁이라도? 글 제목이 뚱딴지같이 무슨 포 소리야? 방탄소년단의 열광적 무대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총소리와 어찌 비교를 할까만, 화약이 터지는 것 같은 폭발적인 인기가 가히 지구촌을 환상적인 이변으로 달구고 있잖은가. 


 폭탄 터지는 한맺힌 전쟁의 참상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옛 세월이라서, 불안과 공포 속에 가슴조리던 그때 그시절, 끔찍이도 절박하고 험했던 세상을 증거하는 우리 세대들 어찌 잊으리. 그 포성들을 “이해하니까, 사랑이 움터, 용서하게 되니까, 포용할 수 있다”는 순우리말 사자성어라고 독자들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싶어 억지로 지어낸 글자다.


 글뜻이야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가슴을 활짝 열지 않는 한 실행할 수 없는 말임에 틀림없겠다. 어렵고 까다로운 세상만사에, 먹고 마시는 것처럼 빼놓을 수 없는 매우 귀한 성경의 핵이며 불전의 자비와 영적인 비타민이기도 하다.


다스리고 추스르며 고운 맘씨로 백번씩 양보해야 빚어내는 혼의 찬가 중에 불멸의 명곡이랄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사용포’의 고운 성품으로 갖추어져 있다면 만사가 행복과 평안일 터이다.


 땀흘려 노동으로 얻을 수도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악을 써서라도 달성 하겠지만 얄궂은 행동거지나 번민의 골짜기를 헤매며 살아갈 때, 스스로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한 이룰 수 없는 특수한 인성의 생태다. 


어느 누가 감히 쉽고도 어려운 ‘이사용포’에 자신할 자 있으랴. 성직자들, 교직자들, 자칭 인격의 첨병이라 할지라도 떳떳하게 이 낱말에 스스로 자만으로 자유스러울 자 아무도 없다. 성직자들이 이 말을 유도하지 않고선 강론도 설교도 성립될 수 없다. 설교와 강론의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인 것이다.


 필자가 참석했던 주일예배에 설교 목사님의 용서하라는 말씀 속에 바로 이, 이사용포의 단어가 삼십 번 이상씩 동원되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이 순간도 주장하며 설교를 담당해야 했기에 어느 누가 뒤질세라, 아무나 다 말만으로야 마음대로 털어낼 수 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순수한 우리말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네 글귀의 의미야 얼마나 쉬운가. 드러내기야 식은죽 먹기로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말이다. 그런데 실행하고 보여주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에 글 속에 불가항력적 고충을 털어내련다.


그 좋은 이웃들도 좋은 친구였기에 서로 반목하는 일이 행여 언제 있으리요. 부담없이 자유하며 덤덤하게 살다가도, 삐그덕거린 한순간의 상상할 수 없는 불화가 틈새를 파고드는 세상살이다.


깨알 같은 하찮은 인간사 툴툴대며 남이 돼버린 일들, 우리 곁에서 날마다 겪고 살아간다.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지 않는가. 수십 년을 함께 사는 부모형제, 일가친척들, 오순도순 살아도 짧은 인생인 걸 별일도 아닌 사소한 삶의 한마디에 뒤틀려 담을 쌓고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인 그 자리에 눈물과 설움들, 우리민족만이 터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견뎌내야 하는 역사의 상처가 아니던가. 인륜이 끊긴 그 사연들이 누구 탓인가? 대국들의 정치싸움에 말려들어 핏줄이 끊겨 살아야 하는 변란을 우리는 겪어야 했다.


그렇게 흩어진 인연들과 다시 만남들 얼마나 한이 맺히고 서럽던가. 언제 또 만날 거냐고 피눈물을 쏟아내며 다시 헤어짐의 통곡들을, 민족의 그 한 많은 역사를 과연 언제 끝장을 볼 것인가. 


그런 일을 바로 발 밑에서 겪고 보면서도, 함께 하는 부모형제들인 우리들 주변엔 갈라서지 못해 서로를 질시하고 응얼거리며 온갖 심통을 부리며 살아야 되느냐 말이다. 


잘 살아 보자고 구슬려 얼리고 달래고 두 손 싹싹 비벼도 보지만, 웬걸 몇날 지나면 또다시 개미 쳇바퀴 돌듯 반복의 삶이다. 투덜대며 눈길로 쥐어박고 악을 쓰고 입에 거품까지 마치 칼끝이라도 번득거려야 해결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 으르렁거린다. 일가친척, 부모형제들과 오순도순 정답게 사이 좋은 가정들이 어찌 없을까만, 부자연스런 삶의 모습들에 얽힌 부모형제들과 이웃 친구들, 아낌없이 모두들에게 퍼부어 버리자. 


‘이사용포’ 그 넉자가 꽈리를 틀듯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말이다. 그 포는 품어낼수록 끝없는 환상의 기쁨을 토해내는 인성의 소염제가 아닌가. 퍼내고 또 퍼내도 영원히 말라비틀어지지 않는 콸콸 쏟아지는 폭포처럼 그 말뜻에 넘치도록 담겨 있잖은가. 


순수한 한국적 사자성어 이사용포란, 아끼고 인색할 때 참으로 불편함이 우리 삶을 너무 심란하게 묶혀 썩어드는 곰팡이 같은 것을 암덩이란 심적 화약가루가 가슴을 태우고 있을걸, 이 하루도 눈 지긋이 감고 터트려 내버리자. 그 포성으로 내 주위를 마구 흔들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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