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4 전체: 114,245 )
“사랑은 아무나 하나?"
leehyungin

 
 
 2150이라면 무슨 의미야? 주한미군들이 수립한 작전계획도 아닐텐데. 6×49 숫자 역시 아닐 거고. 한국 다문화증진협회 카페지기 자유게시판에 퍼올리고 띄운 영혼의 양식들, 밥그릇들의 숫자다. 


 마리화나 같은 세뇌의 글들도 많다. 엉뚱한 가짜 뉴스들, 판을 치는 사회관계망들이 오염투성이다. 잎도 뿌리도 없는 정신병자들의 낙서들이 죽어 썩어가는 나무토막이 뒹굴듯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추려내고 골라내고 도려내고 파내고도 묵살해버릴 사연들이 판을 친다. 세심하게 유념해서 친구와 이웃들의 시야를 진취적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면서, 혼자 읽고 검지 끝으로 밀고 제껴버릴 글들 가운데서 엄선하여 나누며 베풀고 싶었던 사랑의 씨앗들, 만남의 활성제들, 고통과 번민의 치료제요, 그리움의 손짓은 물론, 혼을 다스리는 영적 소염제들로 나누어 가졌던 글들로 공유한 숫자다.


 구운김 한 장의 구수함만큼 만이라도, 어느 누구의 영혼을 기쁘게 맛을 더할 수 있었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그냥 조건 없이 글들을 주고받으며, 계약 없는 이메일들의 벗이었기에, 공짜로 퍼 넘겨준 글들이 엄청난 숫자로 펼쳐져 깨우칠 영혼에 양식들, 함께 나누어 챙긴 것이다.


5 천만의 인구 중에 몇 천 명의 숫자는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이라 비하할 사람들이 있다 한들 어쩌랴. ‘사랑은 아무나 하나!’ 컬컬한 목소리의 주인공 트로트 가수 태진아가 부른 유행가 제목이다. 내 곁에 다가온 글들 퍼 넘겨주는 것,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할일 없이 빈둥거리다 이런 글들 공유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읽고 넘치는 귀한 감동이 사무쳤기에 그 감동에 혼자 취할 수만 없었기에, 어른거린 추억에 매달린 그리운 이들께 퍼 넘겨주며 옛정에 웅크린 기억들을 되살려 내고 싶은 것이다. 몸소 사랑은 누가 하냐고…


물결이 파도처럼 떠밀려 온갖 찌꺼기들 다 밀어내 버리고 새롭게 채워진 깨끗하고 청결한 모래사장으로 다시 열리는 해수욕장처럼, 그곳을 즐기는 수많은 인파들의 환호성이 기쁨과 감사로 넘쳐날 것 아닌가!


오직 진리만이 우리의 캄캄한 지적 눈을 뜨게 할 것이며, 엉성하던 삶의 미로를 밝혀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삶의 지평이 내 곁을 지켜준다는 의미심장한 교훈들이 허수아비 같은 인간의 모습들 완전히 부숴버린 순간의 이정표. 바로 영적 소산이 풍성해지는 영역을 채워줄 것이라 믿으며...


언제 우리가 이토록 풍요로운 인터넷의 호황을 누렸나! 범람이 아니다. 풍성함의 극치요, 열매들의 산더미다. 이 시대를 풍미한 온갖 진리들 속에 허우적거리며 휘청대는 나의 영혼을 매달려본다.


 꽃과 향기가 벌 나비들의 온상으로 그들을 맞이하려 마련된 것이다. 가슴을 위로해주고 영혼을 평안과 자유 함으로 정서적 영역을 한없이 넓혀주는 영적 활성제요, 혼의 찬가들. 인체의 리듬이 꼬르륵 소리나게 허기진 배를 채우기란 햄버거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지만, 텅 비워져 메마른 생체리듬의 지적 효소들 뭐로 채워질 것인가. 


 소셜네트웍의 영적 세계사가 지배해버린 문학과 예술의 실체적 바탕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되돌려 버린 혁신적 역사의 현장이다. 요즈음 상처투성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망의 숨소리가 매스컴을 요란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내 곁에 이메일 친구인 2150 차례나 베풀고 나눔의 주인공인 그 넉넉한 손길과 함께 이 글을 공유하고 싶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