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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leehyungin

 

 신정도, 구정 연하장도 새해 축하연 초대장마저도 기대치보다 많지 않은 황금빛 개띠 새해다. 과학이란 초현대적 문명의 침략이 정겨운 가슴속 사연들을 나태함으로 묶어 버렸다. 인터넷의 불도저식 지적 개발이 옛것을 모조리 밀어내 버린 것이다. 세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화의 물결로 주체없이 출렁인다.


머지않아 자율자동차까지 길거리를 달린다니, 밀려드는 이 변화가 어디까지 이 시대를 요동칠까? 이 시대의 약탈자, 아니 지적 폭군들이 성난 파도를 타고 모래사장을 휩쓸듯이 뺏고 밀어내며 잃어간 삶의 추억들을 얼마나 쓸어내 버릴까?


그 중에 손꼽으라면 단연 편지, 감미롭고 애절함이 절절히 엮어진 편지다. 수많은 종류의 편지들, 그 편지 중에 으뜸인 것은 단연 사랑의 편지리라. 애끓는 사연을 밤새워 써서 띄워주고 기다리던 청춘 교향곡 같은 편지.


편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편의 마음을 울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요술이 사랑의 편지다. 순정을 불태우는 씨앗이 사랑의 편지다.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함이 편지다. 불타오른 내 가슴속 열기를 식혀 달라고 애원하는 글이 사랑의 편지다. 펜도 종이도 봉투도 각별히 선택하여 고이 써낸 정서가 무지개 빛깔처럼 고상하고 품위 있게 담겨져야 한다.


쓰긴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쓰고 쓰다 구겨버린 쓰레기들, 아깝던 귀한 종이는 애태움에 눈물을 적시었다. 우린 그런 편지를 잃어간다. 그런 오밀조밀한 사연들이 손바닥 인터넷 위로 떠버렸다. 손글씨도 잉크 배인 종이 한장 없이 시대는 이렇게 변하고 있다. 밤낮도 구분 없이…


카톡이나 이메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 동영상에 입력된 새해 인사를 받았다. 반가움보다는 뭔가 아리송한 찜찜함과 허탈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맛깔스런 스테이크를 자르고 싶었는데, 햄버거로 허기를 달래는 기분이다.


그런대로 새해 인사를 메시지로 띄웠음이 틀림없는 사실인데, 뭐가 못마땅할까? 화려하게 온갖 테크닉을 다하여 편집과정을 엮은 동영상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욱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새해를 맞이하세요" 확실하고 깍듯한, 분명히 새해인사다. 


그런데 향기로움이 없다. 정겨움이 숨어 버렸다. 기쁨이 실종된 것이다. 고맙다고 답장을 띄워야 하는데, 썩 마음을 열수가 없다. 나 역시 손가락으로 남의 동영상을 도용하려니,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내 영혼이 뭔가에 홀려 먼데서 흔들거린 손짓만의 인사를 받는 기분이다.


전혀 아는 척도 안하고, 모르는 척, 없는 척, 카톡이나 이메일마저 묵살해버린, 친구들, 이웃들, 친척들, 가족들이 있었다면, 그보다는 그래도 손가락 끝에 묻혀 띄워준 동영상 연하장에 정이 담겨 있었을 텐데…


그런데 반갑다고 미소를 띄울 수가 없다. 정겨움 역시 억지다. 그래서 평안 역시 아리송하다. 인사로 받으면서도 그와의 인연에 그림자가 덮힌다. 씁쓸하게 개운치 않은 입맛이, 마치 외상값 덜 받고 신경 쓰이는 소갈머리가 나를 쓸쓸하게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SNS에 적응하며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핫바지 세대라서 인가? 우체통을 없애간다는 정책의 변화가 세상을 변질시키는 첨병인데, 메마른 정서가 회복되질 않는다.


내가 변해야지, 변해야 하리라, 적응한다는 순리에 순응하며 극복해야 하리라. 뒤틀린 심사가 변화하는 이 세대를 아우르지 못하면, 누가 날 위로해줄까? 조바심에 안절부절 우체부만 기다리던 전설같은 옛일은 구태요, 고전이다.


떠도는 동영상일지라도 손길로 띄워준 우리 삶의 아기자기하고, 향기로운 서정적 메아리, 나를 그 속에 안기리라. 맺어진 인연들과 포근함에 함께 취하리라. 잃은 것이 아니다. 새로움이 변화의 물결로 철저히 변질되어가는 문화의 파도에, 내 가슴속 의미로운 삶의 흔적들 씻기리라.


 추억의 멜로디처럼 지나간다 할지라도, 감미로움이 달콤하게 짙은 여운을 남겨주지 않는가. 꿈속에서 첫사랑의 편지를 받은 듯이…

 

‘말 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 간/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정말 울어버렸네/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편지(노래: 어니언스)

 

 감미롭고 새콤한 사랑으로 포근함이 통기타의 음률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이런 사랑노래를 가슴에 품고 소년시절 첫사랑의 편지를 써서 담 너머로 던졌다. 첫 사랑을 짝사랑으로 애태웠다. 낭만이 풋사랑으로 주체할 수 없이 꿈틀거리던 시절이었다.


서로 눈길 한번 맞추지 못하고 발길마저 비틀거린 부끄러움에 몸을 빌빌 꽈야 했던12살 소년 소녀 시절이었다.

 

 

편지

                     - 이형인 

 


담 넘어 던져주고 기다린 내 편지들
가슴속 쿵쾅대며 애태우던 편지
하얀 종이 속에 사랑 꽉 엮어서
너의 눈길 생각하며 난 정말 행복했었네
속 터진 내 숨결에 그리움이 멍들어서
생각마다 네 모습 사랑노래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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