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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를 만들며
leedohoon

 

 

 아련히 들려오는 수탉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곤한 잠에서 깨었다.
 드리워진 커튼 뒤로 어두움이 채 가시기 전이라 창문 너머로 들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는 을씨년스럽게 스산하기만 하다.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는 농장의 하루 일과는 게으름을 떨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꾸짖기 충분하였다.

 

 며칠 전에 주문 받은 순대를 만들기 위해 오늘은 매우 바쁜 날이다.
 어제 저녁부터 담가놓은 찹쌀을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번 행구어 내고 베 보자기를 커다란 찜솥에 두르고 찹쌀 고두밥을 짓는다.


 무럭무럭 김이 나고 구수한 밥 내음이 날 때 쯤이면 불을 줄이고 잠시 동안 뜸을 들인다. 다 익은 찹쌀밥을 큰 대야에 부어 놓고  주걱으로 이리저리 저어주며 뜨거운 김을 날려 보내어 식힌다.


 이러한 과정에서 찹쌀밥의 구수한 내음이 잊고 있던 출출함을 자극하여 무의식적으로 밤톨 크기만한 주먹밥을 만들어 맛을 보고 있었다.


 야채를 다듬고 당면을 썰어 속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길다고 생각했던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재료 준비가 끝나게 되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여야만 한다.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집 사람이 타온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지난날을 기억해 본다.

 

 시골 장터 한켠에 연탄 화로를 피워 놓고 그 위에는 커다란 양은 대야에 가득히 쌓은 순대가 얹어져 있다. 빛바랜 면 보자기를 덮어 모락모락 김이 오를 때면 대충 수건을 감아 머리에 두른 순대 아주머니는 바빠지신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듯한 홈 파진 나무 도마와 망치로 마구 두드려 만든 듯한 시커먼 무쇠칼은 순대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벽돌 몇 장을 고여 그 위에 판자를 얹어 놓아 길다란 의자를 만들었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테이블을 만들어 놓아 순대 접시와 소주병을 놓기에 충분하였다. 아주머니는 동그란 모양의 조그만한 양은 접시에 방금 썰은 따끈한 순대를 듬뿍 얹고 꽃소금 한 스푼을 접시 한구석에 넣고 이쑤시개 몇개를 꽂아 주신다.


 " 총각, 소주는?"


 " 네, 한병 주세요!"


 짜르르 목젖을 간지르며 넘어가는 한잔의 소주에 소금을 살짝 묻힌 순대 한점을 입에 넣고 청명한 하늘을 보며 그 맛의 만족함을 흐믓한 미소로 표현한다.


 
 고기와 야채, 당면과 식은 고두밥...
 고루 버무려 섞고 잘 가공된 돼지곱창에 넣기 시작한다.
 자칫 잘못하여 곱창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속을 가득 채워서 끓는 가마솥으로 들어가 충분히 익힌 후 다시 증기로 쪄서 적당량의 기름을 빼내어 맛을 더한다.
 이러한 여러 공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포장에 들어가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예정한 생산량이 만들어지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잠시 동안 겨울이면 생각나는 우리들의 추억 속 것들을 기억해 본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대고 누워 간신히 채널을 고정시킨 고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장희의 그건 너"
 밤 새워 시험 공부를 한다고 불켜놓은 창문 밑에서는 "메밀~묵! 찹쌀~떡!"
 버스 정류장 근처 리어카에 대충 찢은 누런 종이 박스에 쓰여진 "군밤과 군고구마"


 따끈 따끈한 "찐빵과 만두" 등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방금 쪄낸 따끈한 순대 한점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기울이다 보니 힘들고 지친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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